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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un 09. 2016

호모루덴스들, 평화의 공원에서 놀다

평화의 공원 런닝맨 3 (16.04.22)

런닝맨 1차전에서 단재학교의 꾹이인 지훈이가 분발함으로 규빈팀은 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지고 말았다. 이렇게만 본다면, 2차전도 불을 보듯 결과가 뻔할 것만 같지만 사람이 하는 일엔 수만 가지 변수와 예측불허한 상황이 있으니 ‘무엇을 상상했든 그 이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뭐든지 해봐야 안다.               



▲ 1차전에서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지훈이가 분발함으로 밸런스는 붕괴됐다.




점심시간에 유용하게 쓰인 지훈이의 쓰레기봉투

     

런닝맨 1차전이 끝나며 배가 고파진 우리는 돗자리를 펴고 점심 먹을 준비를 했다. 점심을 싸온 지민이와 규빈이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아침에 홈플러스에서 간단하게 먹을 것들을 사왔기에 그걸 함께 먹으면 된다. 

함께 둘러앉아 먹는 점심은 배가 엄청 부를 정도로 많이 먹을 순 없지만, 그래도 부족하다고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다. 싸온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니 꼭 가족이 함께 나들이를 나와 점심을 먹는 기분이었다. 홈플러스에서 산 김밥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고 지민이가 싸온 볶음밥과 과일, 민석이가 사온 샌드위치, 지훈이가 사온 롤케잌을 조금씩 받아서 먹으니, 은근히 배가 불러 오더라. 



▲ 함께 밥을 먹는 시간. 넉넉하진 않아도 부족하지도 않다.



밥을 먹고 나니 쓰레기들이 잔뜩 생겼다. 음식의 포장지들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 때 지훈이가 사온 쓰레기봉투를 매우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쓰레기봉투의 운명도 기구했다. 아침에 지훈이가 홈플러스에 쓰레기봉투를 사서 나왔을 때만 해도 모두 비웃었다. 지훈인 그게 쓰레기봉투인 줄 모르고 있었고, 그렇기에 유료인 것을 알 리가 없었다. 봉투 가격은 20L에 440원이었고, 쓰레기봉투의 특성상 봉투를 구입한 지자체에서만 쓸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곧 그런 비웃음은 환호의 미소로 바뀌었다. 쓰레기봉투는 자기사명을 다하여, 우리에게서 나온 쓰레기를 깔끔히 치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지훈이가 산 봉투를 민석이가 들고 간다. 이 봉투가 요긴하게 쓰이게 될 줄은 이 때 몰랐다.




민석이가 치우는 것과 현세가 치우는 것의 차이

     

점심을 다 먹고 난 후엔 민석이가 솔선수범하여 지훈이가 사온 봉투에 쓰레기를 담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니 동섭쌤이 “이건 모두의 일이기에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른이고, ‘내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아이입니다.”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며, 민석이와 함께 한 4년의 시간이 나름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런 생각은 ‘교육의 목적은 사람을 성숙으로 이끄는 것’이란 우치다쌤의 말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은 사회든, 공동체든 개인을 뒷받침해주지 못한다. 그러니 ‘이건 모두의 일이기에 나는 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고, 그렇게 남들보다 앞서서 하려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받게 마련이다. 그런 상황이니 ‘나만 아니면 돼’라는 극도의 이기적인 생각이 팽배하게 되었고, ‘성공만이 살 길’이란 생각이 진리처럼 작용하게 되었다. 분명히 이때도 민석이가 하지 않았으면 누군가는 치웠을 것이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앞장서서 열심히 치우고 있으니, 그 모습이 어찌나 의젓해 보이고 듬직해 보이던지,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며 그 모습을 담고 싶을 정도였다. 



▲ 민석이의 솔선수범. 성숙한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현세도 무언가 번쩍했는지 한껏 카메라를 의식하며 도와주기 시작한다. 당연히 예전의 현세 같았으면 ‘치우든지 말든지’라는 생각으로 상관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현세는 달라진 것일까? 이 질문엔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이 순간만은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현세는 민석이가 치우는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며 카메라에 담고 있는 나를 보며,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니 말이다. 이를 테면 ‘정치인 코스프레’라고나 할까. 



▲ 정치인 코스프레를 흉내내는 현세의 정신.



정치인이나 연예인이나 남의 이목에 신경을 써야 하는 사람은 자신을 담는 카메라 앞에 서면 평상시와는 다르게 행동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주로 시장을 찾아다니며 서민처럼 행동을 하고, 연예인들은 평소엔 욕도 하고 남들처럼 살지만 카메라 앞에선 순한 양처럼 행동을 한다. 그걸 나쁘다고 할 순 없다. 누구나 일상적인 모습과 일을 할 때의 모습엔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현세도 그와 같은 모습을 보여줌으로 ‘나도 열심히 치웠어요’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후기에 지금의 모습을 잘 기록해주세요’라는 말을 던져주고 있었다. 그런 현세의 마음을 알기에 현세가 치우는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고, 현세의 풍자정신을 그대로 담아 이처럼 후기에 담고 있는 것이다.                



▲ 현세는 민석이를 흉내냈다.




런닝맨 2차전자체 밸런스 패치의 결과?

     

밥을 먹고 한 시간 정도 소화도 시킬 겸 돗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여유롭게 활동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환경 속에 있다는 게 행운이라면 행운이라 할 수 있다. 

드디어 1시부터 런닝맨 2차전이 시작됐다. 태기는 1차전에서 시작과 동시에 아무런 수확도 없이 허무하게 이름표를 떼인 전적이 있기에, 이번엔 최대한 신중하게 상대팀에 접근했다. 이미 지훈이와는 힘으로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인지, 이번 타켓은 상현이로 정했다. 그래서 상현이에게 여러 번 달려들지만, 상현인 아주 날렵하게 위기상황을 벗어나 내달리기 시작한다. 이때 규빈이와 민석이는 협공작전을 펼쳐 태기의 빈틈을 파고들며 이름표를 떼어버렸다. 1차전엔 자신의 스피드만 믿다가 쓰러졌으며, 2차전엔 나름 상대방의 빈틈을 파고드는 노련함을 보였지만 협공에 맥없이 쓰러졌다. 이래저래 태기에게 두 번의 런닝맨은 뭘 제대로 하기도 전에 끝나버린 격이라 할 수 있다. 


▲ 태기는 상현이를 타켓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때도 먼저 죽었다.



여기까지 보면 1차전과 같은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지민팀 4: 규빈팀 3’의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결론도 뻔할 뻔자인가? 하지만 아까와 다른 변수가 생겼다. 2차전에선 지훈이가 1차전 때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게임을 하려 하진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훈이는 나름 밸런스 패치를 할 겸 거의 움직이지 않았으며(슬리퍼를 신어서 잘 뛰지 못했다는 사실은 안비밀), 그에 반해 규빈팀은 함께 몰려다니며 빈틈을 엿보고 있었다. 그 때 상현이가 ‘약한 고리’라고 생각한 규빈팀 아이들은 몇 번이고 상현이에게 달려들어 이름표를 떼려했으나, 상현이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유유히 아이들의 손을 빠져나와 도망갔다. 상현이의 이런 모습은 2014년 11월에 여의도 트래킹 이후 처음이라 할 정도였으니, 런닝맨 게임의 최대 수혜자는 상현이가 아닐까 싶다. 



▲ 2년 전에 상현이가 열심히 뛰던 이 때의 분위기를 이 날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력을 다해 도망가지만 3명이 달려드는 상황에서 오래 버티기는 힘들었다. 상현이까지 이름표가 떼어지고 나니, 지민팀의 의욕은 사그라들었다. 그런 상황이니 지훈이도 별로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 보다. 아이들이 성민이 이름표를 떼러 달려들 때 잘 방어해주며 역공을 하면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는데도, 거의 지켜보고만 있었으니 말이다. 성민이까지 이름표가 떼어지자 지훈인 거의 포기하며 세 명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지 얼마 되지 않아 게임은 끝났다. 이로써 규빈팀이 승리함으로 다시 게임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 열심히 뛰어다니는 상현이.




런닝맨 3차전치열함이 아닌 마지못함으로 마무리되다

     

마지막 3차전을 재개하려고 하자, 아이들은 난색을 표하며 그만하자고 하더라. 승부욕에 불타며 최선을 다해 경기를 하던 규빈이도 “너무 힘들어요. 옷도 다 늘어났구요”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더운 날 뛰어다녔다는 것, 그리고 선물도 없는데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으로도 잘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시간도 꽤 남았고, 무승부로 끝내기엔 아쉬움도 있었기에 3차전을 바로 속행했다. 



▲ 3차전을 시작하려 하니, 아이들은 오히려 쉬고 싶다고만 한다.



막상 시작하니 언제 하기 싫어했냐는 듯이, 아이들은 금세 똘똘 뭉쳐 작전 회의를 하더라. 지민팀은 잘 방어를 하자는 내용이었고, 규빈팀은 최대한 상대방을 자극하여 앞으로 튀어나오게 만들자는 내용이었다. 네 명이서 매우 독특하면서도 자극적인 포즈를 취하며 지민팀을 약 올리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패션쇼장에 온 것 같은 독특하면서도 귀여운 포즈에 약이 오른다기보다 웃음이 절로 날 정도였지만, 표정만은 한 대 때려주고 싶게 ‘재수 없어’ 보였다. 나름 연기도 잘하고, 잘 놀기도 하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호모루덴스’의 향연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 귀여운 포즈. 그렇지만 깊은 빡침이 느껴지는 포즈로 상대편을 꾀고 있다.



하지만 막상 육박전이 시작되자 오히려 싱겁게 끝났다. 2차전에서 승기를 거머쥐며 열정에 가득 차오른 규빈팀 아이들은 하나가 되어 지민팀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지훈이가 이럴 때 앞으로 나와서 한 번 기를 죽이면 다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 테지만, 지훈이는 뒤로 물러서 있기에 4:3의 싸움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니 얼마 지나지 않아 게임은 끝났고 규빈팀이 3차전에서 이김으로, 최후 승리는 규빈팀에게로 돌아갔다.  



▲ 3차전은 이렇게 시작됐지만, 오히려 쉽게 끝이 났다.



              

런닝맨으로 함께 어우러진 이 날 

    

그래도 이번 트래킹은 ‘런닝맨’이란 컨셉으로 나름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막상 시작해보면 아이들은 나름의 룰과 재미를 찾아서 함께 어우러지게 되어 있다. 어른들은 잃어버린 ‘함께 어울리며, 재미지게 놀 수 있는 모습’을 아이들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기에, 이번 트래킹은 그 자체로 재미있었다. 






과거 트래킹 기록보기        


14.03.21 서울 둘레길 트래킹

14.09.29 중랑천 트래킹

14.10.17 율동공원 트래킹   

14.11.14 여의도 트래킹

15.07.10 남산트래킹

16.03.11 통인시장 트래킹

16.03.25 롯데월드 트래킹

16.04.09 어린이대공원 트래킹






목차     


1. 여유를 누리러 평화의 공원으로 떠나다

여유는 찾아오는가?

여유는 찾아야 하는 것

이번 트래킹의 컨셉, 런닝맨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일 뿐’이라는 비겁한 변명     


2. 공원에서 런닝맨을 하다

상현이의 트래킹 합류,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도 충분하다

하늘공원에서 평화의 공원으로 장소가 변경된 사연

런닝맨의 시작, 과연 최선을 다하여 놀 것인가? 최선을 다하여 망칠 것인가?

런닝맨 1차전, 승부욕이 만든 밸런스 붕괴

   

3. 호모루덴스들평화의 공원에서 놀다

점심시간에 유용하게 쓰인 지훈이의 쓰레기봉투

민석이가 치우는 것과 현세가 치우는 것의 차이

런닝맨 2차전, 자체 밸런스 패치의 결과?

런닝맨 3차전, 치열함이 아닌 마지못함으로 마무리되다

런닝맨으로 함께 어우러진 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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