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Apr 27. 2016

배움이란 고통의 순간을 지나 기쁨의 순간으로 가는 것

6. 박동섭의 ‘트위스트 교육학’ - 신발 떨어뜨리는 사람, 첫 번째

‘하품 수련의 역설’이란 강의를 통해 드디어 동섭레스트(에베레스트는 산악인들만 오를 수 있지만, 동섭레스트는 ‘모르는 게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오를 수 있다)의 제1캠프에 이르렀다. 우린 갓 배낭을 메고 출발했을 때에 비하면, 드넓은 앎의 능선에 어느 정도 이르렀고 그에 따라 더 높은 시좌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래서 예전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예전엔 ‘뭔 풀 뜯어 먹는 소리야’라고 생각되던 말들이 들리게 되었다.                



▲ 힘들지만, 동섭레스트 정상을 향한 우리의 힘찬 발걸음은 오늘도 거침없이 시작되었다.




배운다는 건 고통의 순간을 지나 기쁨의 순간으로 나아가는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그 한 순간으로 180도 바뀌어 종이 신데렐라가 되고, 삶을 비관하던 사람이 낙관하는 사람이 될 거라 착각하진 말자. 높아진 시좌는 오히려 우리에게 무수히 많은 고민을 안겨 주며, 예전엔 아무렇지 않던 것을 이상하게 보도록 만들어 낯섦과 고뇌의 선물세트를 한 아름 안겨주니 말이다. 그러니 예전엔 드리워지지 않던 우수가 깃들기도 할 것이고, 자못 표정이 어두워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일시적인 과정일 뿐이다. 그런 숨찬 과정을 거치고 거쳐 정상에 이르면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것들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그 땐 엠마 골드만Emma Goldman(1869~1940)이 말한 ‘내가 춤출 수 없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If I can't dance it's not my revolution)’라는 말처럼 확 트인 시야가 주는 광활함과 피부로 느껴지는 청량감을 만끽하며 지금 이 순간이 ‘미래를 위한 제물’이 아닌, ‘삶이 주는 선물’로 받아들여져 춤추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힘들더라도, 지겹더라도,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 만족하더라도 제1캠프에서 쉬며 한 끼 식사를 든든히 먹은 다음에, 제2캠프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제2캠프에 올랐을 땐 더 높아진 시좌로, 더 달라진 생각으로 한 걸음 삶이 주는 여유를 즐길 수 있다. 그럼 이제부터 제2캠프를 향해 위대한 첫 걸음을 떼어보도록 하자.                



▲ 광화문엔 여전히 사람이 많다. 2강을 들으러 가는 길.




에듀니티로 가는 길엔 봄 향기 가득

     

1주일 만에 에듀니티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저번 주엔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에 사람들은 삼삼오오 우산을 눌러쓰고 거리를 쓸쓸히 지나쳐 갔지만, 오늘은 서서히 저무는 해를 뒤로 하고 봄바람 타고 유유히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이처럼 시간상으론 한주만 지난 것이지만, 날씨에 따라 느껴지는 분위기는 완벽하게 달라져 있었다. 

날씨야말로 사람 감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비가 내릴 땐 왠지 모르게 우울해지며 지나간 옛 사람이 생각나고, 해가 쨍쨍 비칠 땐 희망 찬 미래(때론 작렬하는 태양에 자신의 비참한 현실이 극대화되어 우울해지기도 한다)를 그리며 현재에 만족하기도 한다. 나야 워낙 비 오는 날의 운치를 좋아하는 터라 저번 주가 더 좋지만, 누군가는 오늘 같은 날씨를 더 좋아할 것이다.               



▲ 해가 에듀니티 건물을 비끼며 서서히 지고 있다.




동섭쌤의 강의 스타일방심하는 순간 치고 들어가기

     

학교가 끝나고 바로 와서인지 에듀니티에 도착한 시간은 6시 30분이었다. ‘설마 이렇게 이른 시간에 누가 강의실에 오겠어?’라는 생각으로 강의실에 들어서니, 세상에나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트위스트 교육학의 창시자이자, 이동연구소의 소장인 동섭쌤이었다. 오늘 오전에 내발산초등학교에서 학부모 대상의 특강이 있어서 3시간 강의를 하고 바로 온 것이라 하더라. 

7시엔 바로 강의가 시작되었다. “오늘 새벽 3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부산에서 KTX를 타고 서울역에서 내려 1호선을 타고 가다가 5호선으로 환승하여 초등학교에 도착하여 강연을 3시간동안 했습니다. 그 후 학교에서 주는 급식으로 점심을 먹고 마포에 있는 ‘경희 빛과 소금 한의원’에 들러 침을 맞고 한약을 받은 후 바로 이곳에 왔습니다”라고 말문을 여셨다. 

누가 보면 단순한 하루의 일과를 말하는 것 같지만, 깨알 같은 자기 자랑과 함께 동생이 운영하는 한의원에 대한 홍보가 섞여 있다. 초등학교에서 강연을 했다는 말을 통해 단위학교에서도 강연을 할 정도로 유명해졌다는 자기 자랑을 한 것이고,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왔다는 말을 통해 동생이 운영하는 병원을 홍보한 것이다. 



▲ 정신없이 이곳저곳 왔다갔다 하며 바빴던 하루의 끝에 '트위스트 교육학' 2강이 시작됐다.



이 말이 중요하게 생각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동섭쌤의 강의 스타일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홍길동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신출귀몰하여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기에 그와 같은 수식어를 붙인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동섭쌤의 강의는 ‘A로 번쩍, B로 번쩍’이라 할 수 있다. A를 말하는 듯하다가, 순식간에 B로 점프하고, B를 말하는 듯하다가, 다시 A로 돌아와 말을 이어가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익숙한 패턴, 반복된 양식에 따라 ‘A를 말하려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긴장의 끈을 놓으려는 순간, 순식간에 B로 말을 이어가며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 한껏 비웃어준다. 위의 이야기처럼 ‘일정을 얘기하시는 구나’하는 생각으로 듣고 있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깨알 같은 자랑이 나오고, 그냥 자랑이려니 맘을 놓으려는 순간, 그 안에서 전혀 생각지 못한 담론이 담겨있는 식이다. 그러니 한 순간이고 이야기의 흐름을 놓쳐선 안 되고, 귀를 기울이며 그 문맥을 판단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첫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이 들 때, 동섭쌤은 마지막 일격을 날리셨다. “오늘 이동연구소가 설립된 이래 가장 많은 이동을 한 날입니다”라는 말로, 좌중엔 웃음꽃이 만발했다. 애초에 이동연구소라는 말은 ‘학제의 단단한 벽을 허물고 학문과 학문을 이동하며 앎을 추구한다’는 뜻인데, 동섭쌤은 공간과 공간을 움직인다는 뜻으로 고쳐 말했기 때문이다.                



▲ 오늘 가장 많이 이동한 이동연구소장님~




자립은 일방적인 의존이 아닌상호부조여야 한다

     

이어서 동섭쌤은 1강을 들은 소감이 어떤지 물었다. 그랬더니 한참이나 침묵이 흘렀다. 그도 그럴 듯이 내용이 알쏭달쏭하다 보니, 바로 이해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모두 질문하자니, 2시간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그 때 한 분이 편안하게 “많은 얘길 들었기에,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너무 복잡해서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기가 힘듭니다.”라고 말했다. 아마도 대부분 그 분 말에 동의했을 것이다. 

그 때 다른 한분이 손을 드시더니, 자립의 조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자립이 의존이라는 사실엔 동의하지만, 어른 중엔 무작정 의존만 하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괜찮은 어른이 되는 조건으로 자립을 얘기했는데, 그런 경우 괜찮은 어른이라 하긴 그렇지 않나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동섭쌤은 의존만 하려는 어른들은 유아적인 어른이라고 규정한 후, 그런 경우 자립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자립의 기본 전제는 상호부조이며 내가 누군가를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남도 나를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다 보니 갑자기 전태일이 말한 ‘나를 아는 모든 이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라는 말이 생각났다. 어찌 보면 전태일이야말로 동섭쌤이 말하는 자립한 사람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섭쌤의 말을 듣고 무언가 정리가 되던지, 그 분은 “어른이 무엇인지에 대해 저번 강의를 통해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라고 끝을 맺었다.                



▲ 전태일의 유서에 나타난 생각들이, 동섭쌤이 말한 자립이란 것과 공명한다.




어른이 사라진 세상에서어른에 대해 생각해보기

     

작년에 우치다쌤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랐던 점은 한국 사회나 일본 사회나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교육의 가장 큰 목표인 ‘~~한 사람을 길러낸다’는 것인데, 거기에 ‘성숙한 사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사람’과 같은 말은 들어갈 수가 없다. 그저 출세(꼬우면 출세해), 남을 짓밟을 수 있는 권력,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교육을 받고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고민과 갈등이 필요한 것임에도 어떻게 성공하고 어떻게 남 앞에서 뻗대며 살 것인가만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 또한 동섭쌤의 강의를 듣기 전엔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살기에 바빴고,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기에 바빴다. 그 땐 당연히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된다’고만 생각했지, 다른 것을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막상 여러 어른들을 만나보니, ‘나이가 든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라는 것쯤은 알겠더라.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이와도, 권위와도, 돈과도 하등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섭쌤이 “‘이건 모두의 일이기에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른이고, ‘내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아이입니다.”, “‘~를 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이이고, ‘~를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른이다.” 등등의 ‘어른-아이 메타포’를 여러 번 말해줬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기존의 생각이 완전히 허물어졌고 ‘어른다운 어른이 뭘까?’를 비로소 생각하게 되었다.                



▲ 두 분의 강의 스타일은 다르다. 하지만 그 깊이는 같다.




두 번째 후기 예고 

    

다음 후기는 동섭쌤이 2강 제목을 바꾼 이유에 대해 청중의 입장에서 풀어보고, 동섭쌤의 입장에서 풀어볼 것이며,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그리고 아무리 알려고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감이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어찌 보면 이번 2강 첫 번째 후기는 제2캠프를 향해 첫 발을 내딛는 경이로움을 느껴보는 정도라 할 수 있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의 위대하고도 장엄한 느낌은 다음 후기부터 제대로 맛볼 수 있다. 



 ▲ 이제 우리 시작할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하품 수련의 역설과 배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