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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un 08. 2016

여유를 누리러 평화의 공원으로 떠나다

평화의 공원 런닝맨 1 (16.04.22)

4월은 나들이하기에 정말 좋은 날씨다. 저번에 어린이대공원에 트래킹을 갔을 때도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들이를 나와 벚꽃이 서서히 떨어지는 운치를 감상하는 모습을 봤다. 평일엔 아무래도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 입장으로선 그렇게 시간을 내는 게 쉽진 않을 테니 말이다.                



▲ 4월의 여유를 만끽하러 나온 사람들. 이 사람들에게서 삶에 대해 배운다.




여유는 찾아오는가?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쭉 쳐다봤다. 단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기에 평일임에도 나들이를 나올 수 있나 궁금했을 뿐이다. 그랬더니 나이대도 엄청 다양하고 가족부터 연인들, 그리고 학생들까지 다채로운 나들이객이 있더라. 

그건 곧 ‘직장이 없는 사람이나 학생들만 평일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버리기에 충분했다. 그건 ‘아까운 시간을 애써 쪼개어 이곳에 왔구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 열공을 해야 할 땐 모든 게 이루어진 순간에만, 여유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여유라는 관념 자체를 넓히는 일이라 해도 된다. 흔히 생각하듯 ‘여유란 삶의 무게가 가벼워진 후에 찾아온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티비를 보거나 공부를 하지 않고 자빠져 있으라 치면 “지금은 헛생각하지 말고,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만 해. 나중에 대학에 가면 니가 하고 싶은 것 맘껏 할 수 있어”라고 핀잔을 놓으며, 취준생이 여행을 갈라 치면 “팔자 좋다. 지금이 아니어도 나중에 맘껏 할 텐데 뭐시 그리 급하다고.”라고 못마땅해 한다. 

나 또한 몇 번의 실패 후에 또 다시 도전하겠다며 임용고시 공부를 하던 때엔, 위에서 말하던 사람들처럼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공부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일분일초가 아깝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여행이나 나들이, 심지어는 친구를 만나는 것까지도 ‘지금 당장은 해서는 안 되는 일’로 생각했던 것이다.                



▲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를 보러 찾은 전주도, 목요일이란 평일임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여유는 찾아야 하는 것

     

하지만 그렇게 미래를 준비한다는 이유로 현재를 늘 불안과 걱정으로 덧칠하며 살아가던 그 시간들을 여러 해 보내고 나니, 더 이상 이렇게만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알지 못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물로 바치며, 미래의 에너지를 현재에 끌어당겨서 쓰면서 ‘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 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가 미래의 희생물쯤으로 전락하며 나의 삶은 활기를 급속도로 잃어갔고, 삶의 희망은 빠르게 꺼져갔다. 미래의 에너지를 끌어당겨 쓰면서 공부의 흥미는 사라져 갔고, 결과에 대한 중압감은 커져만 갔다. 그럴수록 당연히 악몽에 시달렸고, 사람 간의 관계에서 위축되기 시작했으며, 비관적인 생각이 나를 하염없이 짓눌렀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내가 살기 위해서는 그런 생각의 틀 자체를 바꿔야만 했다.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생각과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진 미래를 전혀 다른 생각의 틀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난 살기 위해 2009년에 도보여행을 떠나며 현재의 삶을 희생물로 바치기보다 현재의 삶을 직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한 걸음 나가며 삶을 마주하고 나니 여유라는 게 무언가를 이루고 난 후에 찾아오는 선물 같은 게 아니라, 내 마음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따라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것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빡빡한 일정 속에 살지만 한껏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사람(그런 여유로움엔 그 사람의 품격이 묻어난다. 그래서 더 우아해 보인다)이 있는 반면, 여유로울 수도 있는 일상 속에서도 늘 조급해하고 신경질적이며 분주한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쯤 되니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책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 그 책을 처음 당시엔 나에게 많은 깨달음과 도전의식을 키워줬지만, 지금 보면 누구나 할 법한 얘기의 권력자 버전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더 이상 그렇게 현재를 좀 먹으며, 나 자신의 불안을 부추기며 살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여유를 미래의 어느 때에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 지금 당장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됐던 것이다. 

물론 그 후로 임용에 연거푸 떨어지며 성공의 역사를 쓰지 못했으니, 누군가는 “그 때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으세요?”라고 말을 할지도 모른다. 그게 결과만 보고 과정까지도 판단하려하는 일반적인 반응이니 말이다. 하지만 전혀 후회했던 적은 없으며, 도리어 그 때의 선택이야말로 20대의 모습과는 다른 30대의 방향을 제시해준 사건이라 생각한다. 그런 감상들은 ‘국토종단기’에 담겨 있으니 그 글을 읽어보면 충분히 그 때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국토종단이란 삐딱선은 단재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할 수 있는 저력이 되었다. 2012년 강화도 도보여행 사진.




이번 트래킹의 컨셉런닝맨

     

단재학교 트래킹은 떠날 때마다 컨셉을 정하고 가는 편이다. 통인시장 트래킹은 엽전으로 음식을 사먹는 체험을 해보고, 한옥마을을 둘러보자는 컨셉으로, 롯데월드 트래킹은 아무 걱정과 고민 없이 맘껏 놀고 오자는 컨셉으로, 어린이 대공원 트래킹은 봄을 만끽하며 여유로움을 즐겨보자는 컨셉으로 떠났다. 

그렇다면 이번 하늘공원 트래킹의 컨셉은 무엇일까? 아이들이 함께 모여 회의를 할 때는 하늘공원을 천천히 둘러보자, 두 팀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출발지점에서 출발하여 올라가 정상에서 함께 모이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결국 ‘런닝맨’으로 결정되었다. 초이쌤이 의견을 냈을 때, 아이들도 모두 찬성을 하여 바로 결정된 것이다. 

런닝맨은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 룰은 상대편의 등에 붙어 있는 이름표를 떼면 되고, 모든 이름표가 떼어진 팀이 지게 되는 것뿐이다. 룰은 간단하지만 등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최대한 민첩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고, 그만큼 몸을 부대끼며 게임을 할 수밖에 없기에 아주 역동적인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못하는 게 아니라안 하는 것일 뿐이라는 비겁한 변명 

    

그런데 이렇게 결정이 되자마자 한 학생은 “내일 게임이 시작하자마자 내가 등을 내밀 테니까, 바로 떼어줘. 그러면 난 벤치에 가서 쉬면 되지”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건 게임을 준비하며 열정을 불사르던 아이들의 의욕을 꺾음과 동시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었다. 아마도 그 말을 통해 ‘난 그런 유치한 게임엔 전혀 관심이 없어’라고 밑밥을 까는 것처럼 보였다. 

이 학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포기는 광속만큼 빠른 학생이다. 포기가 빠르다고 해서 자신에 대해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에 대한 이상은 더 할 나위 없이 높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잘하는 모습만 보이고 싶고, 뒤처지는 모습은 보이기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니 남들보다 잘한다고 생각하는 과목에 한해선 계속 공부하며 ‘나 이정도로 잘한다’는 것을 뽐내고 싶어 하지만, 그렇지 못한 과목은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그런 과목은 그냥 대충해도 되죠”라는 말을 한다. 



▲ 올해 2월에 찍은 사진. 아이들은 해맑다. 하지만 어떤 성과를 원하는 것으로 들어가면 금세 다른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 뿐인가? 그런 생각은 체육을 할 때 아주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자기 스스로는 ‘운동신경이 뛰어나고, 운동을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남에게 지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 그러니 배드민턴을 할 때도 상대편보다 잘한다 싶으면 상대편을 깔보며 “에게~ 그것도 실력이라고 덤비는 거냐”라고 한껏 비아냥거리다가, 상대편이 앞서기 시작하면 대충 치거나 아예 게임을 접으며 “배드민턴 재미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실력이 없어서 졌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싫으니, 아예 상대편이 게임을 재미없게 해서 졌다거나, 난 할 맘이 없었는데 하라고 해서 졌다거나 하는 식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이런 심리가 바로 런닝맨이 결정되던 순간에도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위와 같이 게임을 자포자기하는 식의 말을 하면서, 주위에서 열심히 준비하던 아이들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우린 10시까지 월드컵경기장역에 모였다. 과연 이들이 빚어내는 ‘런닝맨’이라는 게임은 어떤 식으로 진행될까? 정말 이름표를 바로 떼라던 아이의 말처럼 얼렁뚱땅 진행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현장에선 승부욕으로 아주 치열하게 진행될 것인가? 



 ▲ 이제 월드컵경기장역으로 천천히 올라갑니다. 본격적인 트래킹 시작.





목차     


1. 여유를 누리러 평화의 공원으로 떠나다

여유는 찾아오는가?

여유는 찾아야 하는 것

이번 트래킹의 컨셉, 런닝맨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일 뿐’이라는 비겁한 변명     


2. 공원에서 런닝맨을 하다

상현이의 트래킹 합류,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도 충분하다

하늘공원에서 평화의 공원으로 장소가 변경된 사연

런닝맨의 시작, 과연 최선을 다하여 놀 것인가? 최선을 다하여 망칠 것인가?

런닝맨 1차전, 승부욕이 만든 밸런스 붕괴

   

3. 호모루덴스들평화의 공원에서 놀다

점심시간에 유용하게 쓰인 지훈이의 쓰레기봉투

민석이가 치우는 것과 현세가 치우는 것의 차이

런닝맨 2차전, 자체 밸런스 패치의 결과?

런닝맨 3차전, 치열함이 아닌 마지못함으로 마무리되다

런닝맨으로 함께 어우러진 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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