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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Sep 04. 2016

계획대로 안 되니까 여행이다

용문산 중원폭포 여행 1 (16.08.30~31)

단재학교는 여름 시즌에 계곡이나 바다로 놀러 가곤 한다. 놀러 가는 걸 누군가는 ‘시간 뺐어가면서 잘 하는 짓이다’라고 비난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여행을 시간낭비로 보는 문화, 그리고 누군가 하는 여행조차도 멸시하는 기류가 있다.




또 놀려구?’라는 말

     

2009년에 혼자서 목포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국토종단을 했었다. 그때에도 몇몇 어른은 ‘참 대단한 일을 한다’며 응원해주기도 했지만, 어떤 분은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난 앞뒤 따질 것 없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해. 차도 있는데 뭐 하러 걸어 다녀. 할 일이 없으니까 그렇지. 그렇게 여유부리기 전에 고추라도 한 군데 더 심겠구만.”이라는 말로 힐난하기도 했다. 



▲ 국토종단을 할 때 면전에서 '미친 사람'이란 말까지 들었다.



아마도 이건 여행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관점이라 할 수 있겠다. ‘여행은 돈 있는 사람만 하는 거다’, ‘여행은 시간 낭비다’, ‘여행은 현실회피다’와 같은 말들이 그런 류의 말들인데, 여기엔 ‘시간=돈’이란 관념이 깊이 자리하고 있고, ‘여행=노는 것’이란 생각이 뿌리 박혀 있다. 그래서 나처럼 국토종단을 한다던지, 해외 배낭여행을 다닌다던지 하면 어른들은 “언제 취업해서 남들처럼 살거냐? 그렇게 허구헌 날 놀러 다녀서 쓰겠냐?”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어른들이 뱉은 ‘또 놀려구?’라는 말은 상대방이 하는 행동이 못마땅할 때 쓰는 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풍토는 어른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놀이본능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당연히 신나게 놀며 세상의 비의를 온 몸으로 만끽해야 하는 아이들에게도 적용된다. 예전 같으면 마을 어귀에 앉아 “저녁 먹어라”는 엄마의 말이 있기 전까지 흙놀이를 하며 얼음땡을 하던 아이들은 온데간데없이, 엄마의 보호 속에 키즈카페에 있거나 안전한 놀이터에서만 1~2시간 노는 게 전부가 되어 버렸다. 어려서 거세된 놀이본능은 여행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을 낳게 되었다.                



▲ 작년 여름에 민들레 1박2일 모임에 갔을 때, 아이들과 개울에서 놀 수 있었다. 그 때 보면 아이들은 계획 없이 아주 잘 논다.




여행은 놀이가 아닌 공부다

     

하지만 국토종단을 해보고, 사람여행을 해보며, 단재학교에 떠나는 각종 여행을 하다 보니, 여행을 단순히 노는 것 정도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책을 읽으며 다른 사람의 생각과 대화를 하고 간접체험을 하는 것을 공부라 한다면, 여행이야말로 책을 읽는 것 이상의 배움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여행은 내가 지금껏 익숙하게 지내온 환경을 떠나 낯선 환경에 들어가는 것이다. 발을 딛고 선 이질적인 환경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정신이 필요하며, 그곳에서 함께 웃고 떠들며 적극성을 키워간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 보면 내가 어떤 생각에 갇혀 살았는지, 나의 두려움이 어디서부터 연유하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두려움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하던데, 여행이야말로 사람을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처럼 만든다. 두려움과 호기심의 상반된 감정 속에 현실에 녹아들고, 내가 발 딛고 선 현실을 긍정하게 만든다. 



▲ 재작년에 단재학교 영화팀과 떠난 남한강 도보여행. 떠나보면 비로소 내가 보인다.



책을 통해선 간접체험을 하게 된다면, 여행을 통해선 직접체험을 하게 된다. 책을 통해선 이상적인 깨달음이 있다면, 여행을 통해선 현실적인 깨달음이 있다. 책을 통해선 머리로 그려진 이상적인 세상을 받아들이고 나의 두려움으로 한껏 회칠된 가짜세상을 경험하게 된다면, 여행을 통해선 몸으로 느끼는 세상을 받아들이고 한 땀 한 땀 피부로 스치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공부’가 되고, ‘여행=나의 이상과 현실을 매치시키는 작업’이 되며, ‘여행=망각한 몸의 철학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떠나보면 내가 보이고, 내가 보이면 세상이 보이며, 세상이 보이면 비로소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그래서 단재학교에선 청소년의 성장에 필요한 4가지 요소를 ‘독서, 여행, 놀이, 운동’으로 정하고 그걸 커리큘럼에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당연히 이 때 여행은 나머지 세 가지 요소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단재학교에선 여행을 매우 중요한 커리큘럼으로 치고 있고 매 학기 당 2~3번의 전체여행과 2주마다 트래킹을 떠나고 있다.                 



▲ 2011년 10월 단재학교 교사로 처음 참석한 여행이 보길도 여행이었다.




떠나자계곡으로

     

계곡 여행은 여름 여행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2012년엔 덕풍계곡으로, 2013년엔 망상해수욕장으로, 2014년엔 오션월드로, 2015년엔 가평 도마천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계곡이나 바다에서 잠을 자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어우러지다보면 ‘한여름 밤의 꿈’이 현실에서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올해에도 그런 기조를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더욱이 올핸 1994년 폭염 이후로 최고의 폭염이었다고 한다. 방학에 집에 있으면 도무지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있지 못할 정도의 무덥고 습한 날씨가 연일 계속 되었다. 그러다 보니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는 쇼핑몰이나 영화관이 사람들로 차고 넘치며 성업을 이뤘고, 1973년 석유파동부터 가정용 전기에만 붙었던 누진제를 완화하자는 여론이 일기도 했다. 이 모른 게 기록적인 더위가 남긴 풍경이라 할 수 있다. 



▲ 12년만의 폭염에 몸둘 바를 몰랐다.



그래서 8월 22일에 여름방학을 끝내고 개학을 하면서 3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개학여행의 계획을, 다른 한 팀은 요리수업의 메뉴를, 또 다른 한 팀은 2학기 트래킹 장소를 정하도록 했다. 물론 개학여행의 모든 것을 학생들이 짜되, 계곡이나 바다로 가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그런 장소를 물색한 것이다. 태기와 민지가 계획을 짰는데 8월의 끝자락인 29일과 30일, 1박2일의 일정으로 용문산 계곡의 중원폭포로 가는 것으로 계획을 마무리 지었다.                



▲ 생각보다 계곡은 좋았다. 물도 맑고, 풍경도 좋았다.




첫 번째 변수준영이의 아르바이트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당연하다.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이상, 계획은 흐트러질 수밖에 없으며 그에 따라 어떻게 대처하고 방법을 마련하느냐가 그 단체의 건강성을 나타내주는 증표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첫 번째 변수는 준영이의 아르바이트와 관련이 있었다. 준영이는 1학기 내내 학교에 다니며 저녁엔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를 테면 주경야독이라 할 수 있는데, 그 힘든 일을 무려 7개월간이나 지속해온 것이다. 이런 걸 보고 있으면 절로 입이 딱 벌어진다. 내 학생 시절의 아르바이트라곤 친구네 집 농장 일을 도우러 간다거나, BYC 창고에 가서 물류 분류를 해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것도 여러 날이 아닌 가장 길게 15일 정도 해봤을 뿐이다. 그렇기에 준영이의 알바에 비하면 명함을 내밀기가 ‘거시기’할 정도라 할 수 있다. 

준영이는 처음부터 6개월 정도 묵묵히 일할 마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결정했으며, 그런 마음을 끝까지 견지하여 8월에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무언가 하던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는 기분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다. 그걸 누릴 수 있는 것이니,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  7개월간 정열을 불태웠던 곳. 이곳에서 나올 때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여행을 가는 날이 준영이가 알바하는 날과 겹쳐 있다는 사실이다. 여행엔 당연히 모든 학생들이 참석해야 하고, 함께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준영이의 일정에 따라 여행 일정도 바꾸어야 했다. 그래서 원래는 월요일에 떠나려던 계획을 바꿔서, 화요일에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준영이는 화요일 저녁에 알바가 끝나면 11시쯤 펜션으로 와서 합류할 수 있게 된다.                



▲  용문행 막차는 왕십리에서 11시 30분까지 있다. 그나마 늦게까지 있어서 준영이가 올 수 있으니 다행이다.




두 번째 변수기온의 급격한 변화

     

여기까지야 사람의 문제이기에 쉽게 해결이 가능하지만, 사람의 문제가 아닌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도 있다. 

개학을 하고서도 무더위는 계속 되었기에 계곡으로 여행 장소를 정했고, 펜션 예약까지 모두 마친 상태였다. 이런 무더위가 당연히 계속 될 거라 생각해서 장소를 정했으며, 세 번의 물놀이를 넣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맹렬하게 끓어오르던 더위는 26일에 내린 비와 함께 갑자기 누그러졌다. 오죽했으면 그날 새벽에 비가 내릴 땐 한기까지 느껴져 여름 내내 처박아 뒀던 매트와 이불까지 꺼내야 했을까. 장난처럼 한 순간에 가을은 찾아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잠시 서늘하다가 다시 더워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날씨는 주말까지도 변화가 없었다. 그러자 승태쌤은 28일 일요일 저녁에 “화욜 물놀이 어려울 때를 대비해 보물찾기 같은 게임을 준비해야하지 않을까요. 날씨가 꽤 쌀쌀해요”라는 회의 안건을 보내오기도 했던 것이다. 



▲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가 계속 되자, 여행의 계획도 바뀔 수 없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인지, 금상첨화인지 여행 둘째 날인 수요일 새벽부턴 많은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뜨더라. ‘원 펀치 쓰리 강냉이’에 버금갈 정도로 날씨는 여름의 더위에 지친 우리에게 종합선물세트라도 선물하려는지 서늘한 기온과 함께 오돌오돌 떨릴 정도로 차가운 비까지 선사해주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대해 아이들과 상의를 해보니, 화요일에 가서는 계곡에서 놀고 그 다음부턴 펜션에서 여러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겠다고 하더라. 



▲  수요일 내내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나왔다. 맙소사다.



바로 이런 게 여행의 묘미라는 거다. 맘처럼 되지 않고, 변수에 익숙해져가는 과정들. 그리고 그런 변수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즐길 수 있는 마음까지. 이런 게 바로 여행을 할 때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다. 늘 계획대로만 살아왔고, 정해진 대로만 살아와서 삶의 변덕에 힘들어했던 사람이라면 이처럼 여행을 떠날 볼 일이다. 그러면 더 이상 맘처럼 안 되는 현실에 힘들어하며 맘 상해하지 않게 된다. 여행은 알지 못할 삶을 부정하기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해주며, 그에 따라 확 트인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 

드디어 단재학교 2학기 여행은 두 가지 변수를 감싸 안으며 시작되었다. 이제 여행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보자. 



▲  경의중앙선을 타고 두물머리를 건넌다. 함께 여행을 떠나보자.




목차 

    

1. 계획대로 안 되니까 여행이다

‘또 놀려구?’라는 말

여행은 놀이가 아닌 공부다

떠나자, 계곡으로

첫 번째 변수, 준영이의 아르바이트

두 번째 변수, 기온의 급격한 변화   

  

2. 여행을 시작도 하기 전에 느낀 교사의 숙명

1년 만에 다시 용문역을 찾아가다

여행의 기쁨이 무너진 순간에 교사의 숙명을 느끼다

슬펐다가 기뻤다가 엉덩이에 뿔난 사연

경의중앙선은 경춘선과 다르다

    

3. 용문 5일장과 중원폭포에서 놀다

용문 5일장이 서던 날, 용문행 전철에 몸을 싣다

용문시장에서 맛 본 짬뽕맛은?

잘 먹기 위해 집을 떠나오다

날씨는 선선해졌지만, 그래도 우린 물놀이를 하려 한다

아이들의 놀이본능도 꺾어버린 날씨

    

4. 무의미 속에 의미가 있다

선배들 먼저 자리를 뜬 사연

여행 중엔 모든 게 놀이가 된다

너무도 현실적인 풍자, 금수저 & 흙수저론

과정은 무의미성 속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

   

5. 잘 먹는 것만큼이나 잘 치우는 게 중요하다

모두의 파티였고, 모두의 축제였던 1학기 고기파티

굽는 사람 따로, 먹는 사람 따로

함께 먹는 사람이기에, 우린 식구예요

먹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놀이와 대화가 빠진 유별했던 저녁 시간

여행은 끝났으나, 우리의 2학기는 이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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