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Sep 08. 2016

무의미 속에 의미가 있다

용문산 중원폭포 여행 4

물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1시간을 채 채우지 못하고 물에서 나왔다. 한 여름의 더위는 저번 주 금요일 새벽에 내린 비와 함께 순식간에 물러났고 어느덧 쾌적하고 선선한 가을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다시 물놀이를 할까 말까 분주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구석에 두 명의 그림자가 서서히 시야로부터 사라져 간다.                



▲ 구석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은 어느 순간, 홀연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스릴러 같다고? 천만에 말씀~




선배들 먼저 자리를 뜬 사연

     

그 두 사람은 민석이와 지훈이로, 단재학교의 최고 학년이라 할 수 있다. 스르륵 사라지기 전 두 아이는 조용히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훈: 민석아 너무 춥다. 그냥 내려가자~

민석: (약간 반신반의하며) 그럴까?

지훈: 여기 있다가는 너무 추워서 감기가 걸릴 거 같아.

민석: 그럼 같이 먼저 가자. (허공을 향해 외친다) 저희 먼저 내려갈게요.      


    

이 대화는 넌지시 들었지만, 그 순간 ‘설마 나머지 아이들이 아직도 저렇게 있는데 그냥 내려가긴 하겠어?’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하던 찰라, 이미 두 아이들은 벌써부터 발걸음을 옮겨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이럴 때 보면 그 누구보다도 빠르고, 신속하다고 할 수 있다. 



▲ 아이들은 이 길을 따라 내려가고 있다. 그래서 나도 그 뒤를 따라 가야 했다.



하지만 둘만 내려 보냈다가는 길이 엇갈릴 수도 있고, 불미스런 사고가 날 수도 있기에 나 또한 짐을 부랴부랴 챙겨서 뒤따르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전혀 뜻하지 않게 두 명의 아이들과 도보여행을 하게 되었다. 2014년에 남한강을 따라 양평에서 충주까지 도보여행을 한 이후에, 2년 만에 비공식적인 도보여행을 다시 하게 된 것이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민석이에게 “그때 왜 단체로 행동하지 않고, 그냥 멋대로 둘만 내려갔어?”라고 물으니, “그땐 정말 추웠어요. 그래서 그곳을 빨리 뜨고 싶었죠. 더욱이 그때 왜 물에 들어가 놀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남한산 계곡에 갔을 때야 더웠으니 물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그땐 꼭 ‘호랑이 입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기분’이었으니 말이예요”라고 대답해주더라. 아마도 몸이 너무 추운 나머지 계곡의 오싹한 기온이 느껴지지 않는 곳으로 빨리 벗어나고 싶었나 보다.                






여행 중엔 모든 게 놀이가 된다 

    

이렇게 뜻밖의 도보여행이 시작되었다. 남한강 도보여행 당시엔 지훈이가 가장 힘들어 했었는데, 그 여행을 책임감으로 잘 마쳤으며, 작년에 자전거 여행까지 성공적으로 마치다 보니, 이젠 이런 식의 걷거나 몸으로 하는 것들은 힘들어 하지 않게 되었다. 원래 여러 운동을 하며 체력을 다졌던 학생답게, 여러 난관을 극복하며 체력이 좋아진 것이다. 더욱이 이날 민석이와 걸을 때도 넘어져 살짝 다치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인해 짜증을 내거나 주저앉지 않았고 열심히 걸어갈 수 있었던 데엔 그런 성장이 밑받침이 되었다. 



▲ 천천히 걸으면 30분이 약간 넘도록 걸어야 하는 거리다.



시골의 한적한 풍경을 보며 민석이와 걷는다. 둘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때론 서로 놀리며 우정을 재확인한다. 조금이라도 빨리 계곡을 벗어나고 싶고 걸으며 몸의 온기를 유지하고 싶어 그런 것이다. 그렇게 30분 동안 산책을 하듯, 이야기를 하듯 편하고 느긋하게 걸었다. 



▲ 길을 따라 열심히 걸어가는 아이들.



그런데 그 때 재밌는 상황이 펼쳐졌다. 승태쌤 차가 뒤에서 갑자기 보였는데, 차장 밖으론 아이들이 하나씩 얼굴을 내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차는 우리 옆에 바짝 붙더니, 차에 탄 아이들이 한껏 놀리려는 말투로 “겨우 여기에 온 거야?”며 말한다. 당연히 우리도 걷다가 아는 사람들을 다시 만난 것이니 한껏 기분이 업 되어 “내려~ 내리라고”라는 말을 했고, 차에 탄 아이들은 “안 내릴 건데~”라고 놀리기 시작했다. 이것 또한 아이들에겐 하나의 재밌는 놀이였던 것이다. 그때 지훈이는 “이 차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몸으로 막자”라는 제안을 했고, 우리도 장난처럼 차를 막아서며 달리지 못하게 했다. 이게 답답하게 느껴지던지 성민이와 민지는 차에서 내려 뛰기 시작했고, 우리를 앞질러 가게 되었다. 이렇듯 게임을 하듯, 장난을 하듯 펜션까지 재밌게 놀면서 올 수 있었다.  


▲ 갑자기 아이들이 차를 타고 나타났고, 유쾌한 장난은 시작되었다.

    



너무도 현실적인 풍자금수저 흙수저론  

   

이때 지훈이는 이런 상황을 빗대어 “이 경우야말로 금수저와 흙수저의 이야기 같은 상황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물론 진지한 말투가 아닌,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뱉은 것이니, 너무 무겁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 상황은 얼핏 보면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걸어서 도착하려던 사람이 뒤늦게 차를 타고 온 사람에게 져버린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흙수저가 노력해봤자 금수저에겐 안 돼’라는 비관적인 결론이 가능하다. 실제로 지훈이도 “이런 현실이 말이나 됩니까”라고 농을 쳤다. 

만약 이 상황이 현실이었다면 크게 좌절했을 것이다. 열심히 했지만, 결과적으로 환경의 차이에 의해 실패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경우 진득하니 무언가를 하는 사람보다, 온갖 정보와 편법으로 결과만 성취하려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지게 된다. 지훈이는 장난스런 상황에 이런 말을 한 거지만, 이런 상황은 엄연한 현실이기에 무겁게 느껴졌다.                



▲ 지훈이가 얘기하는 것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그림. 그렇다면 과연 절망적이기만 할까?




과정은 무의미성 속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현실이 그렇다 할지라도, 이게 결코 비관적인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결과만 중시할 경우 금수저의 편법을 통한 성취를 높게 살 수 있고 오히려 그와 같이 별 것 없는 과정을 해나간 것을 ‘무의미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과정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사회이기에 이런 평가가 아주 당연하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우치다쌤은 오히려 그렇게 느껴버린 ‘무의미’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느낌이라고 얘길해준다. 아래에 인용된 글을 읽으며 ‘무의성’에 대해 다르게 보도록 하자.           



(청소한다는 것이) 우주의 진리지요. 우리가 지금 당연한 듯이 여기고 살아가는 문명적인 공간은 누군가 필사적으로 무질서를 세계 밖으로 쫓아내준 덕분이예요. 실은 겨우겨우 확보해놓은 것에 불과하지요. 예를 들어 눈 내린 날 우리가 편하게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은 누군가 열심히 눈을 치워주었기 때문이잖아요. 그런 식으로 당연하게 여기는 일이 실은 무수한 사람들의 인간적 노력이 쌓이고 쌓인 덕분임을 깨닫는 일이 정말 중요해요. 

청소를 해보면 인간이 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지요. ‘시시포스의 신화’가 바로 그렇죠. 청소는 해도 해도 끝이 없잖아요. 모처럼 마음먹고 깨끗하게 치워놓는다 해도 금방 지저분해지고 말죠. 일껏 해놓은 것이 찰나를 못 버티고 티끌로 변해버리잖아요. 그러니까 청소를 하면 ‘우리가 얼마나 무의미한 일을 하고 있는가?’하는 기분이 들어요. 그런 느낌이 아주 중요해요. ‘에잇, 이게 뭐야. 청소는 해도 해도 끝이 없잖아’라는 깨달음 말이지요. 그제야 비로소 의미 없어 보이는 것 안에 의미가 있음을, 허무하게 변해버리는 것 안에 생명의 본질이 있음을 알게 되거든요.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우치다 타츠루 저, 메멘토, 2014년, 130~131pp  


        

누가 봐도 하찮은 것, 그리고 아무런 뽀대도 나지 않는 것, 하지만 그걸 하지 않으면 아예 문제가 되어 버리는 것 속에 깊은 의미가 있음을 우치다쌤은 말하고 있다. 이 생각은 어찌 보면 남에게 보이기 위해 휘황찬란하게, 무언가 있어 보이는 일만을 쫓아 살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비근한 일부터 시작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동섭쌤은 그런 교사를 ‘칭송받지 못하는 교사’로 규정하며 그런 교사가 되자고 했다)이라 할 수 있다. 일상적인 일 속에 의미가 있고, 별 것 아닌 일 속에 생명이 있으니, 우리가 함께 걸었던 별 것 아닌 일에도 의미와 깨달음이 있는 것이다. 우린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고, 길가에 핀 들꽃도 봤으며, 그 시간을 오롯이 느꼈으니 그런 순간을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이런 삶의 자세는 저번 자전거 여행기에서 밝혔다시피 ‘점과 점의 여행’이란 한계를 넘어서 ‘선의 여행’을 한 것이니, 이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고 그 안에 생명의 본질이 있다고 할 만하다. 



▲ 결국 삶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 바뀌어야만 비로소 다른 삶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놀이는 한 순간에 철학적인 이야기로 흘러갔다. 이게 바로 여행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별 것 아닌 것에서 별 것을 느끼고, 일상 속에서 이상을 찾아내는 것이니 말이다. 

숙소에 도착하니 4시 20분이 되었다. 두 시간 정도 쉬다가 6시 30분부터 고기파티를 하기로 했다.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정말로 좋다. 



▲ 우리에겐 그저 이 모든 게 하나의 재밌는 놀이거리일 뿐이다.




목차 

    

1. 계획대로 안 되니까 여행이다

‘또 놀려구?’라는 말

여행은 놀이가 아닌 공부다

떠나자, 계곡으로

첫 번째 변수, 준영이의 아르바이트

두 번째 변수, 기온의 급격한 변화   

  

2. 여행을 시작도 하기 전에 느낀 교사의 숙명

1년 만에 다시 용문역을 찾아가다

여행의 기쁨이 무너진 순간에 교사의 숙명을 느끼다

슬펐다가 기뻤다가 엉덩이에 뿔난 사연

경의중앙선은 경춘선과 다르다

    

3. 용문 5일장과 중원폭포에서 놀다

용문 5일장이 서던 날, 용문행 전철에 몸을 싣다

용문시장에서 맛 본 짬뽕맛은?

잘 먹기 위해 집을 떠나오다

날씨는 선선해졌지만, 그래도 우린 물놀이를 하려 한다

아이들의 놀이본능도 꺾어버린 날씨

    

4. 무의미 속에 의미가 있다

선배들 먼저 자리를 뜬 사연

여행 중엔 모든 게 놀이가 된다

너무도 현실적인 풍자, 금수저 & 흙수저론

과정은 무의미성 속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

   

5. 잘 먹는 것만큼이나 잘 치우는 게 중요하다

모두의 파티였고, 모두의 축제였던 1학기 고기파티

굽는 사람 따로, 먹는 사람 따로

함께 먹는 사람이기에, 우린 식구예요

먹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놀이와 대화가 빠진 유별했던 저녁 시간

여행은 끝났으나, 우리의 2학기는 이제 시작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용문 5일장과 중원폭포에서 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