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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Sep 07. 2016

용문 5일장과 중원폭포에서 놀다

용문산 중원폭포 여행 3

용문역에서 내려 역전 광장으로 나오니, 승태쌤이 기다리고 있었다. 광장에 나오기 전까지 ‘용문은 종점인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 걸까?’ 궁금했는데, 광장에 나오고 나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 용문역에서 나가는 길. 정말로 사람들이 많다.




용문 5일장이 서던 날용문행 전철에 몸을 싣다

     

도시엔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에 상설시장이 열린다. 예전부터 시장은 있었겠지만, 조선시대를 지나며 시장은 자리를 잡아 갔다. 시장의 입지조건으론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 으뜸이지만, 조선시대엔 내부로까진 진출할 수 없었다. 자료 조사를 해본 적은 없지만, 유추는 가능하다. 아마도 조선시대엔 ‘사(학자)-농(농민)-공(수공업자)-상(장사하는 사람)’의 위계에 따라 상인을 홀대하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장사하는 사람들이 사대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 조선의 신분제도에선 상인이 가장 낮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시장이 사대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사대문 밖의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입지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사대문 밖에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어디일까? 굳이 먼 곳을 찾을 필요는 없다.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네 곳에 설치된 문을 통해서만 들어가야 하기에, 문 앞은 언제나 사람이 넘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의미로 쓰이긴 해도 ‘문전성시門前成市(문 앞엔 시장을 이룬다)’야 말로 시장 입지 조건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명맥을 유지해온 전통시장의 이름을 보면 공통적으로 사대문의 이름(서울의 남대문시장과 대구의 서문시장)을 따왔거나, 사대문의 방위를 이름(전주의 남부시장)으로 쓰고 있다.  



▲ 전주 풍남문 바로 바깥 쪽에 남부시장이 있다.



하지만 사람이 많이 살지 않은 곳엔 3일장, 5일장, 7일장과 같이 정기적으로 시장이 열렸다. 시장이 열리는 날엔 곳곳에 흩어져 있던 보부상들이 한 곳으로 몰려들었으며, 그에 따라 지역민들도 시장을 중심으로 모임을 갖기도 했다. 그러니 사람이 차고 넘치며 활발한 물자교역과 정보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엔 전주에서 난장이란 게 열려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곤 했다. 그땐 ‘맛있는 거 먹는 날’ 정도로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1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1년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 군산의 도깨비시장처럼, 전주의 남부시장에도 도깨비시장이 있다. 새벽에만 열리고 아침엔 바람처럼 사라지는 시장의 풍경.



용문엔 5일장이 열린다고 한다. 우리가 여행을 떠난 8월 30일은 5일장이 열리는 날이라, 경향 각지에서 물건을 팔려는 사람들과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탄 전철도 나이가 드신 분들이 많이 탔던 것이고,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내리지 않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 임시천막을 펴서 5일장이 도로 한복판에 열렸다. 우린 그 속으로 들어간다.




용문시장에서 맛 본 짬뽕맛은?

     

‘시장구경도 식후경’이라고 우린 주린 배부터 채워야 했다. 그래서 주변에 먹을 만한 곳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는데, 조금 걸으니 중화요리집이 나오더라. 그래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음식점 바로 앞엔 풍선 광고판이 세워져 있는데 거기에 시선을 확 잡아끌도록 빨간 배경 위에 ‘해물짬뽕’을 대대적으로 알리고 있었다. 

들어가선 각자가 먹고 싶은 걸 시키면 됐다. 나는 아침에 이미 라면을 먹고 왔기에 점심에도 면을 먹기는 그랬다. 그래서 짬뽕밥을 시켰고, 아이들도 각자 취향에 따라 짜장부터 볶음밥까지 다양하게 시켰다. 



▲ 점심으론 짬뽕밥을 먹었다. 맑고 개운진 맛을 느낄 수 있길 바라며.



최근 들어서 ‘짬뽕’에 확 꽂혔다. 언제부터인지는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라면에 양파와 새우 등을 넣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랬던 것 같다(예전엔 라면에 계란과 만두만을 넣어서 먹었는데, 1년 전부턴 좀 더 깊은 맛을 내기 위해 양파와 새우, 건오징어와 같은 것들을 넣어 먹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1년 전쯤부터 짬뽕에 끌렸다는 얘기되시겠다). 예전엔 돈이 없어서 외식을 거의 하지 못하던 때라 그저 짬뽕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젠 조금이라도 맛에 집중하며 내가 원하는 맛이 무엇인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더욱이 최근엔 3일이란 간격을 두며 최악의 짬뽕과 최고의 짬뽕을 먹어볼 수 있었다. 최악의 짬뽕은 집 근처 중국집에서 세트 메뉴를 시킨 것으로, 짬뽕맛은 밍밍하고 건더기도 푸짐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먹고 난 후에 입에 텁텁한 맛이 남아 있어서 별로였다. 거기다 함께 온 탕수육은 이미 눅눅해질 대로 눅눅해져 있고 고기도 별로 씹히지 않았으니, 이건 맛있어서 먹는다기보다 버릴 순 없으니 먹는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였다.



▲ 짬뽕도 최고였고, 탕수육도 최고였다. 순창에서 맛봤던 짬뽕맛과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여기는 과연 어떨까?



이에 반해 최고의 짬뽕은 차이나타운의 그나마 저렴한 곳에서 먹게 된 짬뽕이다.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었고 뒷맛도 깔끔했으며 건더기까지 풍부하니 국물을 떠먹을 때마다 저절로 만족스러웠다. 그뿐인가 탕수육은 튀김옷은 얇고 고기의 크기도 적당했으며, 바삭바삭하기까지 하니 ‘탕수육이 아무리 맛있어봐야 거기서 거기’라던 편견이 일순간에 깨져버렸다. 

과연 이집의 맛은 어떨까? 우선 내 입맛엔 매우 짰고 해물의 깊은 맛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한 뚝딱 비우긴 했지만, 가격이 꽤 비싼 편임에도 그렇게 만족스럽진 않았다. 하지만 장날이라 그런지 중화요리집엔 계속 사람들이 들어오더라.                



▲ 장을 보다가 강아지를 파는 것도 봤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잘 먹기 위해 집을 떠나오다 

    

펜션으로 가기 전엔 장을 봐야 한다. 장을 보러 마트로 가는 길엔 자연히 5일장을 지나게 되어 있더라. 그래서 둘러보는데 역시 전통시장답게 다양한 품목들이 있고, 다양한 먹을거리들이 있더라. 그곳에서 승태쌤은 계곡에서 아이들과 물고기를 잡을 거라며 우산식 자동통발을 하나 샀다. 



▲ 계곡에 가서 물고기를 잡으러 통발을 산다.



단재학교 전체여행의 백미는 단연 고기파티라 할 수 있다. 여행은 집을 떠나 다른 환경에서의 체험을 하는 것이지만, 실상 다른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실상 잘 먹고 잘 쉬는 가운데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느냐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잘 먹기 위해선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고기를 빼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날도 아이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여 고기 7근(원랜 9근을 사야 한다고 성화였으나, 초이쌤은 그건 과하다고 생각해서 그리 산 것이다)이나 샀고, 여기에 소시지까지 샀으니, 계곡에서 엄청 열심히 놀아 걸어 다닐 힘조차 없을 정도가 되지 않는 이상은 적당한 양이라 할 수 있다.                



▲ 1박 2일동안 먹을 것들이 두 상자에 가득 담겼다.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배부르다.




날씨는 선선해졌지만그래도 우린 물놀이를 하려 한다 

    

원랜 2시쯤에 펜션에서 픽업을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우리가 좀 일찍 오는 바람에 당장은 픽업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승태쌤이 두 번 왔다갔다하며 픽업하는 것으로 했다. 

펜션에 도착한 우리들은 바로 물놀이 하기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날씨는 햇살이 비치지 않아 구름이 가득 했고, 기온까지 내려가 선선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계곡이 가지 않는 건, 서울에 가서 남산에 가지 못하는 것과 같은 거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렇게 약간 추운 느낌인데, 꼭 계곡을 가야 해요”라고 불평을 하거나, “그러다 감기 걸리면 어쩌실 거예요?”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지만, 잘 챙겨 입었다. 



▲ 물놀이 준비를 하고 있다. 보트까지 바람을 넣어 빵빵해 졌다.



준비를 마치고 나오니 주인아주머니는 계곡 입구까지 태워주겠다고 하더라. 난 펜션에서 나오면 바로 계곡이 보이는 줄 알았는데, 차를 타고 가야 할 정도로 조금 떨어져 있다는 것을 그 때서야 알았다. 계곡으로 가는 동안엔 “어디로 가야 계곡물이 많아요?”라고 물어보니, “입구 쪽에서 20분 정도 올라가면 폭포가 떨어지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물놀이하기 좋아요”라고 알려주시더라. 

입구에 간식거리와 튜브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올라간다. 올라가다 보니 의자에 앉아 계시던 한 분이 “우리도 올라갔는데 물이 없어서 그냥 내려왔어요”라며 새로운 정보를 알려준다. 아무래도 비도 거의 내리지 않은 무더운 여름을 지난 후라, 그분 말이 더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그 말만 듣고 물러날 순 없었다. 어쨌든 그게 사실이라 해도 눈으로 확인하는 게 중요하니 말이다.                



▲ 말은 들었지만, 눈으로 확인해 보기 위해 산 넘고 물 건너 인디아나 존스처럼 걸어갔다.




아이들의 놀이본능도 꺾어버린 날씨

     

한참을 오르다가 드디어 주인아주머니가 얘기한 ‘중원폭포’란 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밑에서 ‘물이 없다’던 그 말과는 달리 계곡엔 물이 흐르고 있었고 계곡의 깊이도 성인 어른의 키를 넘을 정도는 되더라. 말만 듣고 가지 않았다면 땅을 치고 후회할 뻔했다. 



▲ 수영해도 될만큼 물이 깊고 맑다. 날씨만 서늘해지지 않았으면 최고였을 텐데.



계곡에 도착했을 때 재밌는 장면이 두 장면이 있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춥다’고 외쳐대며 물에는 들어가지도 않을 것 같던 아이들이, 계곡물을 보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에 들어가 놀았으니 말이다. 더욱이 이럴 때마다 가장 소극적이던 한 학생은 수영복을 챙겨온 것을 시작으로 아예 발 벗고 먼저 계곡에 들어가 맘껏 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를 시작으로 아이들은 보트도 타고 물장구도 치며, 서로 물에 빠뜨리려 전술을 짜며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저번에 평화의 공원에서 ‘런닝맨’을 했을 때도 아이들의 놀이본능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때도 아주 절실히 놀이본능을 엿볼 수 있었다. 



▲ 놀이본능에 충실한 아이들은 아주 가열차게 논다.



하지만 첫 여행기에서도 밝혔다시피 이날은 한여름의 불볕더위는 물러가고 평년보다도 기온이 낮았던 날이라 계곡에서 놀기엔 약간 추운 날이었다. 더워서 물에 들어가고 싶다는 기분은 사라지고, 그럼에도 여기까지 왔으니 들어는 가봐야지라는 부담만 남았다. 그러니 아이들도 30분 정도 정신 없이 놀다가, 기어코 지치고 춥던지 가자는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간식으로 사온 음료수와 옥수수를 먹으며 잠시 쉰 다음에, 어찌할지 결정하기로 했다. 

몇몇은 물에 다시 들어가자고 얘기했지만, 대부분은 그냥 가자고 하더라. 어느덧 파장 분위기가 되고야 말았다. 이 때문에 승태쌤이 산 통발은 쳐보지도 못하고 가져간 그대로 다시 가져와야만 했다. 날씨만 좀 더 더웠으면 더 신나게 놀았을 텐데, 참 아쉬운 순간이었다. 



▲ 한참 재밌게 논 아이들은 자리에 앉아 주전부리를 먹는다.



이 때 민석이와 지훈이는 간다만다 얘기도 하지 않고 무작정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교사에게 말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어쩔 수 없이 난 그 둘의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가려던 이 두 녀석의 고군분투는 현실의 한계 앞에 차갑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걸 이 아이들은 ‘금수저와 흙수저론’이라 불렀는데, 그 자세한 얘기는 다음 후기에서 하도록 하겠다. 



▲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 지훈이와 민석이.




목차 

    

1. 계획대로 안 되니까 여행이다

‘또 놀려구?’라는 말

여행은 놀이가 아닌 공부다

떠나자, 계곡으로

첫 번째 변수, 준영이의 아르바이트

두 번째 변수, 기온의 급격한 변화   

  

2. 여행을 시작도 하기 전에 느낀 교사의 숙명

1년 만에 다시 용문역을 찾아가다

여행의 기쁨이 무너진 순간에 교사의 숙명을 느끼다

슬펐다가 기뻤다가 엉덩이에 뿔난 사연

경의중앙선은 경춘선과 다르다

    

3. 용문 5일장과 중원폭포에서 놀다

용문 5일장이 서던 날, 용문행 전철에 몸을 싣다

용문시장에서 맛 본 짬뽕맛은?

잘 먹기 위해 집을 떠나오다

날씨는 선선해졌지만, 그래도 우린 물놀이를 하려 한다

아이들의 놀이본능도 꺾어버린 날씨

    

4. 무의미 속에 의미가 있다

선배들 먼저 자리를 뜬 사연

여행 중엔 모든 게 놀이가 된다

너무도 현실적인 풍자, 금수저 & 흙수저론

과정은 무의미성 속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

   

5. 잘 먹는 것만큼이나 잘 치우는 게 중요하다

모두의 파티였고, 모두의 축제였던 1학기 고기파티

굽는 사람 따로, 먹는 사람 따로

함께 먹는 사람이기에, 우린 식구예요

먹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놀이와 대화가 빠진 유별했던 저녁 시간

여행은 끝났으나, 우리의 2학기는 이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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