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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Sep 07. 2016

여행을 시작도 하기 전에 느낀 교사의 숙명

용문산 중원폭포 여행 2

단재학교는 보통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여행을 간다. 서울 근교에 갈 땐 당연히 전철과 광역버스를 이용하고, 멀리 갈 땐 고속버스를 이용한다. 여태껏 경춘선을 타고 가평에 가거나, 스키장에 가는 경우는 있었어도, 경의중앙선을 타고 간 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여행지로서는 경춘선이 지나는 가평, 춘천 일대가 관광지로 유명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아이들이 여행 계획을 짜면서 처음으로 용문산 일대의 계곡으로 장소를 정하게 됐고, 그에 따라 우리들도 처음으로 경의중앙선을 타고 가게 됐다.                



▲ 방학이 끝나고 함께 여행 장소를 결정했다. 산과 계곡, 바다, 워터파크 중 어디에 갈 건지 함께 얘기하고 있다.




1년 만에 다시 용문역을 찾아가다   

  

용문역을 와본 적은 없지만, 나름 익숙한 곳이다. 작년 8월의 뙤약볕이 내리쬘 때, 친구에게 갑작스럽게 전화가 왔다. 늘 계획대로, 예상대로 살아오고 있었기 때문에 갑작스레 걸려온 친구의 전화에 죽어 있던 세포들이 기뻐 날뛰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우리는 무작정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장소 또한 정한 것이 아니기에, 낚시를 할 만한 장소를 찾아 헤매고 헤매다가 용문역 근처의 흑천까지 오게 되었고, 경의중앙선 선로 바로 밑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내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기에, 용문역으로 간다고 했을 때도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기쁜 마음으로 집에서 나왔다. 아침 공기가 며칠 사이에 제법 쌀쌀해졌다. 하지만 아직은 단단히 옷을 여미고 다닐 정도는 아니었기에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서 음악을 들으며 길을 나섰다.                



▲ 1년 전에 갑작스레 떠난 여행의 장소가 바로 용문역 근처였다. 이건 우연인데 참 맘에 드는 우연이다.




여행의 기쁨이 무너진 순간에 교사의 숙명을 느끼다 

    

하지만 이 때 한 학생에겐 전화가 걸려왔다. 여행지를 선정할 때부터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며 참여하겠다고 하던 학생이었다. 이 학생의 경우, 평소엔 여행을 한다는 걸 어려워하고 힘들어하긴 했다. 하지만 이 날만큼은 예전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기에, ‘이번엔 함께 갈 수 있겠구나’라고 기대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당일 아침에 힘들어서 못 가겠다는 전화가 오니 기운이 팽기더라. 그래도 아직은 대화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여, 최대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이번 여행은 푹 쉬러 가는 여행이니,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맘 편히 먹고 와서 펜션에서 쉬다가 저녁에 고기파티할 때 배불리 먹으면 좋을 거 같아”라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이번에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요”라는 대답을 하더라.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억지로 끄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럼 잘 쉬고 목요일에 보자”라고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이때의 솔직한 감정은 이랬다. 하지만 그렇다고 감정을 모두 다 표현해서도 안 되며, 함께 얘기를 잘 나눠야만 한다.



교사로서 힘이 팽길 때가 있다. 이미 단재학교에서 5년 간 교사생활을 했기 때문에, 초임교사 때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에 매료되어 내 의지대로 되어야 하고, 학생들의 변화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이상적인 생각을 접은 지 오래다. 

변화는 단기간의 시선으로는 결코 볼 수 없으며, 장기간의 안목과 너른 비전이 있을 때 묵묵히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학생을 만나는 일 자체가 나의 생각과 나의 틀을 지워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전혀 다른 세계관과 만나고 어우러져야 하기에, 나의 생각은 늘 도전을 받고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각의 균열, 삶의 끊임없는 도전을 견뎌내는 일이야말로 좀 거창하게 말하면, 교사의 숙명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과 어울리며 나의 생각과 행동에 도전을 받는 건 힘든 일이긴 해도, 힘이 팽길 정도의 것은 못된다. 하지만 학생과 함께 무언가를 해나가는 과정 속에,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서로의 의견차를 인정하며 절충해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모두 차단당할 때 힘겨움을 느낀다. 가능성이 모두 닫혀 버린 절망감이 감돌며, ‘지금껏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비관론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여행은 신나게 시작했지만, 그 신남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바스라지고 만 것이다.                



▲ 우치다타츠루 쌤의 말을 그래서 곱씹을 필요가 있다. 장기적인 안목, 그리고 자본이 쳐놓은 교육의 틀을 넘어서기 위해.




슬펐다가 기뻤다가 엉덩이에 뿔난 사연

     

그렇게 기운이 빠진 상태로 전철을 타서 가고 있는데, 단체 채팅방에선 전혀 다른 희망의 기운이 샘솟고 있었다. 일찍 서두른 아이들은 10시에 모이기로 했음에도 무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있었으니 말이다. 보통 20분 정도 일찍 오는 경우는 봤어도, 무려 1시간이나 일찍 오는 경우는 처음 봤다. 그런 상황이니 바스러진 마음은 그 아이들의 채팅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붙어가고 있었다.



▲ 아이들의 카톡은 싱그러움이었다. 살아 있는 생명들의 환호성 같은 느낌.



왕십리역 중앙선 승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9시 50분이었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평소에 늦던 아이들이 이미 와 있었으니 말이다. 보통 여행을 갈 땐 아침마다 신경전이 벌어지곤 했다. 늦던 아이들은 여전히 늦고 제 시간에 나오는 아이들은 제 시간에 나오니, 제 시간에 맞춰 나온 아이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 그러니 여행을 시작도 하기 전부터 서로의 감정은 상하고, 그에 따라 내 기분도 안 좋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됐으니, 이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왔더니, 이미 아이들이 거의 다 왔다. 이런 경우 처음인데, 매우 기분 좋다.



그런데 재밌던 점은 이날은 1명만 지각을 했는데, 이 아이는 평소에 지각을 하지 않던 아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날은 특이하게도 늦던 학생들이 일찍 오고, 일찍 오던 학생이 늦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금방까지 전화 통화를 하며 안 좋았던 기분이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보통 엄마들이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자신의 감정이 죽 끓듯 한다던데, 나 또한 학생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이토록 감정의 동요가 있었던 것이다.                



▲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그래도 함께 할 수 있음이 정말 좋다.




경의중앙선은 경춘선과 다르다

     

경춘선은 전철을 타고 가다 보면, 서서히 사람이 줄어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더욱이 가평을 지나고 나면 사람이 급속도로 줄어들어 거의 텅텅 비게 된다. 더욱이 상봉역이 종점이다 보니, 조금만 서두른다면 편하게 앉아서 갈 수 있고, 처음에 못 앉더라도 조금 지나면 앉게 된다. 

하지만 경의중앙선은 그렇지 않았다. 14년 12월 27일에 용산과 공덕 구간이 직결되면서 경의선과 중앙선이라는 다른 노선이 하나의 노선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중앙선을 왕십리나 용산에서 타더라도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실제로 우리가 왕십리에서 탔을 때도 사람들은 정말로 많아서 우린 앉아서 갈 수가 없었고, 중간 중간 자리가 나더라도 앉을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노인분들이 많이 타다 보니, 그분들에게 양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춘선처럼 조금만 더 가면 자리가 나겠거니 하고 기대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노선은 특이하게도 용문까지 가는 동안 사람이 그렇게 확 빠져 나간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종점까지 거의 만차인 상태로 달렸으니 말이다. 



▲ 종점이 코 앞인데, 사람들이 정말 많다. 이게 웬 일이라니?



당연히 그런 상황을 보면서 멘붕에 빠졌다. 이 노선 자체가 원래 용문이나 양평에 사는 사람이 많아서 그곳까지 늘 사람이 꽉 찬 상태로 가는 것인지, 오늘만 특이하게 사람이 많았던 것인지 처음 타는 것이라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곧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그 이유는 다음 후기에 쓰도록 하겠다. 

드디어 우리가 목표로 하던 용문역에 도착했다. 이곳은 중앙선 기차역이자, 경의중앙선 전철역이 함께 지나는 곳이다 보니, 꽤 규모가 크더라. 여기서부터 단재학교 2학기의 본격적인 여행은 시작된다. 

우린 배가 고팠기에 역 근처의 식당을 찾아야 했다. 이제 배를 먼저 채우러 갑시다. 렛츠~ 고!



▲ 종점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세상에~





목차 

    

1. 계획대로 안 되니까 여행이다

‘또 놀려구?’라는 말

여행은 놀이가 아닌 공부다

떠나자, 계곡으로

첫 번째 변수, 준영이의 아르바이트

두 번째 변수, 기온의 급격한 변화   

  

2. 여행을 시작도 하기 전에 느낀 교사의 숙명

1년 만에 다시 용문역을 찾아가다

여행의 기쁨이 무너진 순간에 교사의 숙명을 느끼다

슬펐다가 기뻤다가 엉덩이에 뿔난 사연

경의중앙선은 경춘선과 다르다

    

3. 용문 5일장과 중원폭포에서 놀다

용문 5일장이 서던 날, 용문행 전철에 몸을 싣다

용문시장에서 맛 본 짬뽕맛은?

잘 먹기 위해 집을 떠나오다

날씨는 선선해졌지만, 그래도 우린 물놀이를 하려 한다

아이들의 놀이본능도 꺾어버린 날씨

    

4. 무의미 속에 의미가 있다

선배들 먼저 자리를 뜬 사연

여행 중엔 모든 게 놀이가 된다

너무도 현실적인 풍자, 금수저 & 흙수저론

과정은 무의미성 속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

   

5. 잘 먹는 것만큼이나 잘 치우는 게 중요하다

모두의 파티였고, 모두의 축제였던 1학기 고기파티

굽는 사람 따로, 먹는 사람 따로

함께 먹는 사람이기에, 우린 식구예요

먹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놀이와 대화가 빠진 유별했던 저녁 시간

여행은 끝났으나, 우리의 2학기는 이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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