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시안 강촌 스키여행 2 (16.01.25~27)
올해엔 특별하게 개학과 동시에 여행을 가게 되었다. 원래는 단재학교도 제도권 학교와 같이 3월에 개학했지만, 한 달 정도 워밍업을 하자는 의미로 2013년부터는 2월에 개학하고 있다.
그런데 올핸 2월도 아니고 1월 마지막 주에 개학하는 것이니, ‘그러다 아예 방학 자체가 없어지는 거 아니야?’라고 의아해할 만도 하다.
하지만 개학이 앞당겨지게 된 데엔 특별한 계기가 있다기보다, 설날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올해의 경우 설이 2월 둘째 주에 있기에 2월에 개학하여 조금 학교생활이 적응될 만하면, 다시 쉬게 되어 어중간한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야 1월 마지막 주에 개학하여 2주 정도 학교를 다니며 방학 동안에 느슨해진 몸과 마음을 다잡자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곧바로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할 순 없기에 부담은 줄이되, 즐겁게 시작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1월엔 좀 편안한 분위기로 시작하자’와 ‘아이들이 스키캠프를 가고 싶어 한다’를 접목하여 개학하는 날 바로 스키장으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미 꽤 오래 전부터 아이들은 “우린 스키캠프 안 가나요?”라는 말을 했었다. 그도 그럴 듯이 단재학교에 스키장으로 여행을 간지도 어언 5년이 흘렀기 때문이다. 5년 전이라면 내가 수습교사였을 때고, 지금의 최고참인 민석이가 들어오지도 않았을 때다. 즉, 그 당시 스키캠프를 갔던 학생 중에 지금 다니는 학생은 한 명도 없다는 얘기되시겠다. ..
이런 상황이니 승태쌤은 ‘1월엔 좀 편안한 분위기로 시작하자’와 ‘아이들이 스키캠프를 가고 싶어 한다’를 접목하여 개학하는 날 바로 스키장으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아주 스펙터클하고 파격적인 제안이다. 이런 제안을 아이들이 싫어할 수도 있는데, 단재학교 자체가 틀을 깨며 새롭게 만들어 가는 곳이다 보니, 아이들은 그냥 받아들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단재학교 2016년 1학기는 스키장으로 떠나는 개학여행으로 시작되었다.
며칠 동안 한파는 계속 되었지만, 동파를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뭐 별 일 있겠냐?’는 심정으로 별 다른 대책(물을 틀어 논다거나, 보일러를 적정 수준으로 작동한다거나)을 마련하지 않고 토요일에 어머니 생신 축하를 하러 전주에 내려갔다.
남부지방은 토요일 오후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밤새도록 많은 눈이 쌓였다. 쌓인 눈으로 교통마비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울로 향하는 새벽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도 경기도에 들어서니 전혀 눈이 온 흔적조차 없더라. 하지만 문제는 집 보일러의 온수 쪽이 얼어서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거였다. 지금껏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었기에 황당했는데, 그건 토요일 저녁이 얼마나 추웠는지 알려주는 예이기도 했다. 이 때 드라이기로 배관을 녹여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여행 날 아침엔 물을 가스에 데워서 써야 했고, 화요일부터는 날이 풀려 녹았다가 다시 얼게 될까봐 뜨거운 물이 졸졸 흐를 수 있도록 틀어놓고 나왔다. 이 작은 행동이 큰 사건을 빚어냈으니(이에 대한 이야기는 마지막 편에 나옴), 겨울엔 자나 깨나 수도의 물조심이다.
9시 30분에 왕십리역에서 모이기로 했다. 지민이는 같이 가자고 카톡을 보내왔지만, 지훈이는 이번엔 혼자 가고 싶은지 아무런 반응도 없더라. 9시 15분쯤 왕십리역에 도착했지만 모이는 장소가 ‘1번 출구 지하’로 명시되어 있기에 중앙선 환승통로로 가지 못하고 1번 출구 앞에서 서성 거려야 했다. 혹시나 빨리 와서 개찰구를 빠져나가 기다리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민이는 “왜 20분이나 일찍 도착해서 이렇게 기다려야 해요?”라며 불멘소리를 하지만, 서로 동선이 엉켜서 시간이 지체되는 것보단 나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늦지 않게 제 시간에 모였다. 1번 출구 근처에 민석, 지민, 기태, 재익이가 왔고, 중앙선 환승 통로 쪽엔 현세, 준영, 규빈이가 왔다.
왕십리에서 경춘선을 타려면 중앙선 전철을 타고 상봉까지 가서 갈아타야 한다. 경춘선은 상봉이 종점인데(이걸 몰랐는데, 2012년에 진행된 LEEL을 위해 가평역으로 가면서 알게 되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청량리나 왕십리에서 탈 수 있다고 생각한다(ITX는 탈 수 있음). 그러다 보니, 오늘 같이 환승을 두 번해야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상봉에서 백양리까지는 1시간이 걸리는 장거리다. 역시나 춘천행 열차답게 대학생들이 많이 타더라. 그들은 단체로 놀러 가는지 먹을거리를 잔뜩 사들고 전철에 올라탔다. 예전부터 강촌은 대학생 MT의 대명사였던 곳이다. 예전 경춘선은 북한강을 따라 철로가 있었기에 지금보다 속도가 느리긴 해도 접근성 자체는 훨씬 좋았기에 그랬던 것이다.
이 날 기온은 무려 영하 14°까지 내려갔다. 최악의 한파가 한반도를 휩쓴 지 일주일 정도 지났는데 이 날이 절정이었다. 가는 길에 보니 북한강도 꽁꽁 얼어붙어 여태껏 보지 못한 장관을 연출하고 있더라. 당연히 추위의 매서움이 온 몸으로 느껴지기에 “이런 날 무슨 스키를 타요? 얼어 죽어요~”라고 얘기하거나, 민석이 같은 경우는 “나 오늘 스키 안 탄다고 전해라”며 반기를 들기도 했다.
대학생들은 가평역에서 많이 내리더라. 당연히 강촌까지 갈 줄 알았는데 가평역에서 대부분이 내리니 깜짝 놀랐다. 그래서 잠시 검색해 보니, 자라섬이 근처에 있어서 아무래도 그곳에 가는 것 같았다.
‘강촌 엘리시안’이란 이름을 지닌 스키장에 가는 거라 당연히 강촌역에서 내려야 하는 줄 알았는데, 역 이름을 자세히 보니 ‘백양리(강촌 엘리시안)’라 쓰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승태쌤에게 확인한 후에 백양리역에서 내렸다. 역 앞에 나가니, 셔틀버스가 대기 중이더라. 그걸 보고 맞게 왔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준영이 얼굴이 뭔가를 발견한 듯 미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을 짓기 시작한다. 그건 흡사 엄청난 것을 발견한 사람의 표정과 같았기에 준영이가 “유레카~”라고만 외치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하철에 가방을 놓고 내린 것을 그제야 알게 된 것이고, 그런 갑작스러움에 자신도 당황한 나머지 그런 표정을 짓게 된 거더라. 그래서 준영이는 부리나케 역무원실로 들어가 탔던 위치와 짐을 올려놓은 위치를 말했다.
솔직히 내 입장에선 걱정이 별로 되지 않았다. 사람이 많이 탔다면 없어질 가능성이 있지만, 백양리역에 들어설 때 우리가 탄 전철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짐을 이곳까지만 다시 가져다준다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역무원은 다른 얘기를 해주시더라. “짐이 있는지 확인한 후에 연락을 드릴 테니 20분 정도 소요되실 거예요. 그리고 짐은 이곳으로 다시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춘천역에 보관하니 그리로 찾으러 가시면 됩니다”라고 말이다. 난 당연히 춘천에 도착한 전철도 상봉역으로 다시 가야하기에 이곳에서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입장에서만 생각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준영이는 우리가 스키 탈 동안 춘천에 전철을 타고 가서 찾아오기로 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펜션 앞에서 내렸다. 그곳에서 승태쌤을 만나 11층에 있는 숙소로 올라가 보니, 구조나 분위기가 정말 좋더라. 깨끗하고 뭔가 아늑한 느낌이 들며, 조리를 하기에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점심은 사먹어야 하니, 잠시 앉아서 쉰 후에 바로 2층에 있는 식당가로 내려갔다.
1월의 끝자락이라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라고 생각했는데, 단체로도 많이 왔더라. 그렇게 입이 쫙 벌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산하지도 않았다. 2층 식당가에 들어서니, 스키캠프를 온 아이들이 일렬로 줄을 서있더라. 그래서 우린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왔다. 레스토랑 분위기의 식당은 딱 봐도 ‘비싸겠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그래서 얼마나 비쌀까 하는 마음으로 메뉴판을 보니, 기본이 13.000원부터 시작하더라. 하지만 이번 여행 중 밖에서 사먹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기에, 고민할 것 없이 먹게 되었다. 우리는 15.000원에 맞춰 주문을 했는데, 돌솥비빔밥, 굴순두부국, 파스타, 치킨에 스파게티 소스가 얹힌 음식을 시켜서 먹었다. 아무래도 리조트는 객실 이용료로 이익을 남기기보다는 부대시설 이용료로 이익을 남기는 구조란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숙소에 올라와 스키 탈 준비를 했다. 스키복을 가져온 아이들이 있기에 스키복을 입고 모이기로 한 것이다. 아무래도 이런 상황이 생소하다 보니,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민석이는 스키복을 챙겨서 입기 시작했고, 나머지 아이들은 빌릴 생각으로 기본적인 것만 챙겼다.
그런데 그 때 민석이의 장갑 한 쪽이 없어진 것이다. 그 뿐인가, 아예 지훈이는 장갑을 챙겨 오지도 않았다(여행이 다 끝난 후 집에 가서 가방을 찾아보니, 그 안에 있었다는 황당하고 무서운 후문이 돌았다). 스키장에 2011년에 온 이후 두 번째로 온 것이기에, 나는 웬만한 것들은 모두 빌릴 수 있는 줄만 알았다. 심지어는 장갑까지도 말이다. 그런데 막상 모이기로 한 장소인 1층에 내려가니, 그렇진 않더라. 그래서 장갑이 없는 지훈이는 거금 25.000원을 주고 사야 했다. 민석이는 장갑이 비싼 것을 보고 감히 살 엄두는 내지 못하고 “저는 오늘 스키를 타지 않고 쉬겠습니다”라고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승태쌤은 어떻게든 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려 장갑을 사는 방향으로 하려 했는데, 돈을 쓰기 싫었던 녀석은 “올라가서 다시 찾아볼게요”라고 말하더라. 그래서 숙소 열쇠를 가지고 있는 나와 함께 올라가 두 눈 부릅뜨고 찾기 시작했다. 역시나 장갑을 한 쪽만 가져온 것인지,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 그 때 민석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는 듯, 양말을 손에 끼기 시작한다. “선생님! 선생님! 이 방법 괜찮죠”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돈을 쓴 후회는 길지만, 쪽팔림은 잠시이기 때문이다
결국 민석이는 사람들 앞에서 손에 낀 양말을 보여주며 쪽팔림을 감수해야 했는데, 민석이 입장에선 장갑을 사느라 돈을 쓰느니, 사람들 앞에서 쪽팔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돈을 쓴 후회는 길지만, 쪽팔림은 잠시이기 때문이다. 이를 보다 못한 초이쌤은 편의점에 들어가 목장갑 비슷한 장갑을 사서 민석이에게 건넴으로 장갑 사건은 일단락 됐다.
목차
나에게 던진 겨울방학 숙제
미완의 숙제, 그리고 새로운 숙제
새로운 숙제 1 - 동섭쌤의 강의가 던진 숙제
새로운 숙제 2 - 공교육 교사들이 던진 숙제
2016년은 지적폐활량을 키우는 해
1월 마지막 주에 개학과 동시에 여행을 떠나는 이유?
올겨울 최악의 한파가 찾아온 날 떠나다 1
올겨울 최악의 한파가 찾아온 날 떠나다 2
백양리역에서 가방을 놓고 내린 사연
깔끔한 숙소, 하지만 비싼 음식 가격
장갑이 없으시다구요? 우리에겐 양말이 있잖아요~
스키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실력에 따른 복장이 있을 뿐
도전 보드 1 - 두 번째 스키장 방문에 보드를 타게 된 사연
도전 보드 2 - 필수 준비물, 그리고 스키슈즈 신는데 30분 걸리다
도전 보드 3 - 보드와 티익스프레스의 공통점
도전 보드 4 - 새로운 도전엔 언제나 불안이 따른다
도전 보드 5 - 육체는 타자이기에 지배하려 하기보다 이해하려 해야 한다
도전 보드 6 - 타자성, 무계획성에 몸을 던지다
도전 보드 7 - 타자성, 무계획성에 몸을 던진 경험들
실전 보드 1 - 보드에서 일어서기
실전 보드 2 - 처음이란 어색함과 어설픔을 끌어안기
실전 보드 3 - 실력을 키우며 천천히 갈 것인가, 엄청난 난이도로 한 번에 비약할 것인가?
여행 중 가장 조용했던 밤을 지내다
2016년 학사일정, 예술과목에서의 선택
교사 없는 학교 1 - 2012년에도 진행되었으나 시기상조였다
교사 없는 학교 2 - 실패가 아닌 시기상조인 이유
교사 없는 학교 3 - 자유를 누려봐야 누릴 줄 안다
봉사활동 1 - 학사일정 중 봉사활동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다
봉사활동 2 - 강제를 통해 의식을 바꾸려는 어리석음을 범하다
두 번째 하면 어찌 되었든 첫 번째보다는 익숙해진다
두 번째로 보드를 타는 이의 각오
실전 보드 4 - 바보는 빠름을 추구하고, 실력자는 완급조절을 추구한다
실전 보드 5 - 넘어지면서 배우고, 한계에 직면할 때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