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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Feb 06. 2016

두 번째 보드 도전기

엘리시안 강촌 스키여행 6 (16.01.25~27)

2시간이 넘도록 열띠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허기가 몰려온다. 점심은 떡만두라면이다. 물론 어제 저녁이었던 카레와, 아침이었던 볶음밥이 남아 있으니 배부르지 않는 사람은 그걸 먹어도 된다. 밥을 먹는 동안 눈은 거의 그쳤다. 스키장에서 눈을 본다는 건 또 다른 흥취를 불러 일으켰다. 참 즐겁고도 행복한 시간들이다.       



▲ 떡만두라면을 먹는 아이들.



         

두 번째 하면 어찌 되었든 첫 번째보다는 익숙해진다     


이제 본격적으로 스키를 타러 가면 된다. 어제 아주 기초적인 부분을 익히고 나니, 본격적으로 어떻게 타야 하는지 궁금해지더라. 그래서 기태와 함께 보드 타는 동영상을 찾아봤다. 거기엔 이미 많은 영상들이 있더라.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좀 보고 올 것을’하는 후회도 들었다. 하지만 어찌 보면 그냥 아무런 감도 없이 영상만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매뉴얼이 가치가 있으려면 실전경험을 통해 감을 익힌 후여야만 하니 말이다. 그렇지 않고 그저 동영상만 봐서는 ‘저게 뭐가 힘들다고 저렇게 끙끙거리지’하는 생각만 들 게 뻔하다. 그나마 오늘 조금이라도 타본 경험이 있으니, 영상에서 말하는 내용들이 조금이나마 들렸고 어떤 부분이 어려운지 감이 오더라. 그걸 보면서 오늘은 어떤 연습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 그래도 이런 영상이 있어서 조금이나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으니 다행이다. 



렌탈을 하고 착용하기 시작한다. 어제는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려 착용할 수 있었는데, 어제 했던 게 도움이 됐던지 오늘은 금방 끝났다. 역시 뭣도 모르는 상황이 힘들어서 그렇지, 경험을 하면 그건 어떻게든 도움이 되긴 한다. 현세도 어젠 슈즈를 신는 것도 버거워 보였는데, 오늘은 바로 신을 정도였다. 

이쯤에서 현세 얘기를 조금 해야 한다. 물론 다음 후기에서 현세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할 것이기에, 여기에선 보드에서 스키로 바꾼 이유에 대해 말하겠다. 어제 보드를 탔지만 일어서질 못해 타는 재미도 없었을 뿐더러, 추위에 덜덜 떨기만 했었다. 그래서 오늘도 보드를 탈 엄두를 못 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스키를 선택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단재학생 대부분이 스키를 타니, 현세도 훨씬 배우기도 쉬울 것이고, 어제처럼 덩그러니 혼자 떨어진 느낌은 덜 받을 것이다.

지훈이는 발목이 아프다는 이유로 오늘은 타지 않겠다고 하더라. 생각 같아선 이곳까지 왔으니 함께 타면서 놀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지훈이의 마음이 돌아섰기 때문에 억지로 타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렌탈샵까지 따라가서 아이들이 준비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맘이 바뀌어 탄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아이들 배웅은 해줘야 하니 렌탈샵까진 가야 해”라고 했다. 그렇게 꾸역꾸역 거기까지 가서 아이들이 준비하는 모습을 봤지만, 이미 맘이 돌아선 녀석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더라.                



▲ 기태는 중급코스로 갔기에 지민이와 초급코스에서 맹렬히 연습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보드를 타는 이의 각오 

    

어제 기태에게 보드 타는 법을 배워 보니, 기태도 실력은 초보일 뿐이었다. 힐엣지만 간신히 되며, 토엣지는 거의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의욕만 앞선다. 그러니 무작정 중급코스로 가서 턴을 하는 연습만 하려 하더라. 아무래도 어제 나와 현세를 챙겨 주느라 맘껏 못 탔던 한이 있기 때문인지, 이 날도 처음에만 초급코스에서 탔을 뿐 바로 중급코스로 가버렸다. 

오늘은 힐엣지에서 토엣지로, 토엣지에서 힐엣지로 방향을 전환하며 내려오는 것을 연습하려 한다. 어젠 보드로 일어서서 펜쥴럼을 어설프게나마 할 수 있게 되자 자신감이 생겨 중급코스에 도전했던 것인데, 엉덩방아와 꼬꾸라지기의 연속동작을 구사하며 간신히 내려올 수 있었다. 기술을 쓰는 것도,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저 힐엣지로 천천히 내려오는 방법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깨달은 것은 실력에 맞게 천천히 연습하면서 타는 게 중요하지, 그저 상위코스로 어떻게든 가려고 안달할 필요는 없다는 거였다. 그런 이유로 이날은 초급코스에서 방향 전환만 연습할 생각이었다.                



▲ 강사는 이 동작을 아주 느리고 부드럽게 하고 있었다. 충격이었다.




실전 보드 4 - 바보는 빠름을 추구하고실력자는 완급조절을 추구한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길에 강습을 받으러 온 학생들을 본다. 먼저 강사가 시범을 보이면 그것에 따라 아이들은 하나씩 연습을 하며 내려가는 것이다. 강사는 아주 느린 속도로 양팔을 벌려 경사면을 따라 내려가다가, 서서히 팔을 90도 가량 돌리며 보드의 방향을 전환하며 내려온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초급코스라 해도 경사가 꽤 되었기에 천천히 내려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강사는 꼭 슬로우비디오를 찍듯 아주 느린 속도로 자연스럽게 턴을 했으니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아주 느린 속도’라는 거였다. 어떻게 저 경사에서 저런 속도를 낼 수 있는지 보는 것만으로 놀라울 정도였다. 내가 직접 해보니 힐엣지로 내려갈 땐 그래도 감속이 되지만, 턴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하고 토엣지로 바꾸면 속도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느린 속도로 내려갈 수 있다는 건, 토엣지를 할 때도 스키의 흐름을 장악할 수 있다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실력자는 오히려 빠르게 내려오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으며 최대한 느리게 내려오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 순간 스키를 잘 탄다는 건 그저 ‘경사면을 따라 빠르게 내려간다는 것’이 아닌, ‘경사가 어떻든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 탄다는 건 ‘빠르게 달려 내려올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깨진 것이다. 어제 처음 스키를 탔던 규빈이는 전속력으로 경사면을 내려간다. 하지만 문제는 방향전환도 할 수 없고, 멈추는 것도 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빨리 달리게 된다는 거였다. 멈춤이 없는 달림처럼 위험한 게 없는데 바로 그런 모양새라할 수 있다. 이처럼 스키를 잘 탄다는 것은 자유자재로 방향전환도 할 수 있으며, 멈추는 것까지 잘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실력자는 오히려 빠르게 내려오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으며 최대한 느리게 내려오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 어설프지만, 그래도 따라서 해본다. 잘 되진 않지만, 뭔가가 익숙해지곤 했다. 지민이가 찍어준 사진.



실전 보드 5 - 넘어지면서 배우고한계에 직면할 때 배운다 

    

어젠 중급코스를 타고 내려올 때 외엔 넘어질 일이 거의 없었다. 탄 상태로 가장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힐엣지를 넣고 적당히 펜쥴럼을 하며 내려오면 됐으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해보지 않았던 토엣지를 넣어보기도 했고, 턴까지 하려고 하니 감당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처음 토엣지를 넣자마자 뒤로 발라당 까지고 말았다. 힐엣지는 뒤꿈치에 힘을 실어야 하고, 토엣지는 발가락에 힘을 실어야 하는데, 그게 말만 쉽지 현실은 ‘시궁창’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발가락에 힘을 싣다보면 앞으로 넘어질 것 같아, 살짝 무게 중심을 뒤로 주려 하는 순간 발라당 까지고 말았다. 거북이가 뒤로 맥아리없이 넘어지듯이 나 또한 그랬는데, 그 때의 충격은 하늘이 노랗게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계속 연습하고 연습을 해보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운 적도 없이 남들이 하는 것을 대충 보고 하는지라 넘어지고 또 넘어지기만 했다. 




중심이동엔 적당선이라는 건 없었다. 확 몸을 젖히던지, 앞으로 당기던지 하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어느 정도의 감은 왔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겨우 이틀 탔기에 완벽하게 구사할 순 없지만, 그래도 어떻게 무게중심을 이동하며 돌아야 하는지 몸으로 익혀지기 시작했다. 힐엣지에서 토엣지를 할 때는 아예 앞으로 넘어져야 한다는 각오로 휙 돌아버리면 넘어지지도 않고 중심도 잘 잡을 수 있더라. 중심이동엔 적당선이라는 건 없었다. 확 몸을 젖히던지, 앞으로 당기던지 하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이다. 



▲ 어설퍼도 어떻게든 도전할 수 있다는 게 좋다.



흔히 ‘넘어지면서 배운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교육적으론 ‘실패할 때 배운다’라는 말로 할 수 있다). 어렸을 때 자전거를 배울 때 주구장창 들었던 말이다. 안전하게 탄다며, 최대한 돌발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타면 그저 달리는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지 자전거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는 없다. 그러면 도로에서 탈 땐, 위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손으로도 타보고, 때론 두 손을 놓고 타보기도 한 사람은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자주 넘어질 것이고, 때론 심하게 다치기도 할 테지만, 그 과정을 통해 자전거의 흐름을 몸으로 완전히 익혀 내 몸이 자전거이고, 자전거가 내 몸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처럼 스키도 안전하게만 타면 그 정도의 수준에서만 머물 뿐, 스키의 흐름을 몸으로 익힐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도전하려는 마음으로 여러 가지 동작을 해보고 그 흐름을 알게 되면 어떤 돌발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이런 생각으로 이 날 원 없이 넘어지다 보니, 오히려 넘어지는 것의 두려움은 사라져 갔다.

나의 실력은 제자리걸음이었지만, 이틀 사이에 보드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부분들을 사용하는지를 몸으로 익힐 순 있었다. 다음에도 스키장에 간다면 꼭 보드를 타야겠다. 그리고 당연하게 토엣지로 내려오는 것을 연습하고 직선이 아닌, 낙엽이 떨어지듯 곡선으로 내려오는 펜쥴럼을 연습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눈바닥과 자주 마주치며 꽈당 꽈당 소리를 내고 있을 때, 초급코스 한 켠에선 민석이와 현세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3번 정도 오르락내리락 했음에도 그들은 아직도 중간부분도 채 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후기에서 상세히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 초급코스 정상에서 규빈이와 지민이와 함께. 난 넘어지면 부서질까봐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았는데, 지민이가 가져와서 남은 사진.




단재학교 전체여행 글보기


11.10.12~14 보길도 여행

11.11.12~14 스키캠프, 우리별천문대 방문

12.02.29~03.01 강화도 여행

12.04.21~22 만리포, 천리포 수목원

12.08.23~24 덕풍계곡 여행

12.10.29~11.01 대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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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04~05 망상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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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28~29 강동그린웨이 캠핑장

15.04.15~17 전주 & 임실 여행

15.07.20~21 가평여행

15.09.30~10.02 격포 여행

15.11.26~27 유명산 여행





목차     


1. 겨울방학에 새로운 숙제를 받다

나에게 던진 겨울방학 숙제

미완의 숙제, 그리고 새로운 숙제

새로운 숙제 1 - 동섭쌤의 강의가 던진 숙제

새로운 숙제 2 - 공교육 교사들이 던진 숙제

2016년은 지적폐활량을 키우는 해     


2. 단재학교 개학여행을 가다

1월 마지막 주에 개학과 동시에 여행을 떠나는 이유?

올겨울 최악의 한파가 찾아온 날 떠나다 1

올겨울 최악의 한파가 찾아온 날 떠나다 2

백양리역에서 가방을 놓고 내린 사연

깔끔한 숙소, 하지만 비싼 음식 가격

장갑이 없으시다구요? 우리에겐 양말이 있잖아요~     


3. 도전엔 늘 불안이 따른다

스키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실력에 따른 복장이 있을 뿐

도전 보드 1 - 두 번째 스키장 방문에 보드를 타게 된 사연

도전 보드 2 - 필수 준비물, 그리고 스키슈즈 신는데 30분 걸리다

도전 보드 3 - 보드와 티익스프레스의 공통점

도전 보드 4 - 새로운 도전엔 언제나 불안이 따른다


4. 처음으로 보드를 타다

도전 보드 5 - 육체는 타자이기에 지배하려 하기보다 이해하려 해야 한다

도전 보드 6 - 타자성, 무계획성에 몸을 던지다

도전 보드 7 - 타자성, 무계획성에 몸을 던진 경험들

실전 보드 1 - 보드에서 일어서기

실전 보드 2 - 처음이란 어색함과 어설픔을 끌어안기

실전 보드 3 - 실력을 키우며 천천히 갈 것인가, 엄청난 난이도로 한 번에 비약할 것인가?

여행 중 가장 조용했던 밤을 지내다


5. 단재학교의 2016학년을 말하다

2016년 학사일정, 예술과목에서의 선택

교사 없는 학교 1 - 2012년에도 진행되었으나 시기상조였다

교사 없는 학교 2 - 실패가 아닌 시기상조인 이유

교사 없는 학교 3 - 자유를 누려봐야 누릴 줄 안다

봉사활동 1 - 학사일정 중 봉사활동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다

봉사활동 2 - 강제를 통해 의식을 바꾸려는 어리석음을 범하다


6. 두 번째 보드 도전기

두 번째 하면 어찌 되었든 첫 번째보다는 익숙해진다

두 번째로 보드를 타는 이의 각오

실전 보드 4 - 바보는 빠름을 추구하고, 실력자는 완급조절을 추구한다

실전 보드 5 - 넘어지면서 배우고, 한계에 직면할 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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