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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Feb 07. 2016

민석이의 도전, 현세의 도전

엘리시안 강촌 스키여행 7 (16.01.25~27)

보드와 한바탕 씨름을 벌이고 있다. 조금이라도 빨라질라치면 몸이 먼저 긴장하여 알아서 넘어질 준비를 한다. 아무 준비가 없이 넘어지는 것보다 넘어질 것 같아서 미리 준비한 후 넘어지는 게 충격이 덜하기 때문이다. 특히 토엣지는 뒤돌아 있는 상태이기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절로 겁이 난다. 그 땐 오히려 넘어질 것을 대비하여 몸이 한껏 긴장되다보니, 맘대로 움직여지질 않는다. 때론 과감히 몸을 움직여 기술을 쓸 수 있어야 ‘아 이런 식으로 하니깐 훨씬 쉽다’고 깨달을 수 있을 텐데, 미리 넘어질 준비를 하고 있으니 그럴 기회가 없다. 나는 지금 용기와 한바탕 씨름을 벌이고 있다. 

나의 씨름과 별개로 초보코스에서는 두 명의 사내가 각자의 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분명히 둘은 함께 스키를 타고 있었지만, 씨름을 벌이는 대상은 달랐다.                



▲ 보드를 타며 용기란 녀석과 한 바탕 씨름을 벌이고 있다. 이 때 두 녀석은 각자 다른 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민석이의 씨름 1 - 현세와의 씨름 한 판  

   

현세는 어제 보드를 처음으로 타봤기 때문에 기태가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줬다. 물론 체계적으로 알려준 게 아니라, 행동을 보여주며 이런 식으로 하라고 알려준 것이다. 그런데 현세는 전혀 일어서질 못하고 조금 속도가 빨라진다 싶으면 알아서 넘어져 버렸다. 무서운 나머지 빨라지기 전에 넘어져 멈춘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기태는 제대로 타지 못하고 현세 옆에서 어떻게든 알려주려 최선을 다한 것이다. 

보드 타는 것을 실패하자 현세는 오늘 스키로 바꿨다. 아무래도 ‘보드보다 스키가 두 발이 자유롭고 손에 쥐는 폴이라는 장비도 있어서 한결 수월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고, 그건 민석이도 마찬가지여서 ‘현세는 지훈이와 다르게 예전에 스키를 타 본 적이 있다고 했으니까 초급에서 내려가는 법, 멈추는 법, 감속하는 법, 넘어지는 법만 가르쳐 준 뒤 중급으로 올라가서 규빈, 지민, 현세와 신나게 스키를 타는 것이 내 나름의 계획이었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계획은 산산이 부서졌다(민석이의 여행기 보기). 

현세는 시작하자마자 아이들을 따라 초급코스에 올라갔는데, 보드 탈 때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서지 못했으며 조금 달린다 싶으면 바로 넘어진 것이다. 그러니 초급코스를 달려 내려가는 시간보다 땅바닥에 누워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이런 경우 처음에야 우정으로 지켜봐주고 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워줄 수 있지만, 그 시간이 꽤 길어지면 “넌 안 되겠다. 나부터 갈 테니, 그냥 너는 니가 알아서 내려 가”라고 쏘아붙이며 가버릴 것이다. 기다려주고 참아주는 것도 분명히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민석이는 그러지 않았다. 지민이나 규빈이는 현세를 신경 쓰지도 않고 혼자 타느라 바빴는데 오롯이 민석이만 현세를 기다려주고 알려주고, 도와줬으니 말이다. 




민석이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현세가 초보코스에서 완전히 내려 갈 때까지 옆을 지켰다




아이들이 한 번 쭉 타고 다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갈 때 민석이와 현세는 시작지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더라. 그러니 아이들은 “아직도 거기야?”, “민석 오빠 힘내!”라는 소리를 하며 놀림 반, 응원 반의 멘트를 날린 것이다. 그러고 또 한 번 타고 내려갔다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데, 역시나 아까 그 자리에서 별반 나아가질 못했다. 현세가 초보코스를 내려가기까지 4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그런 경우 그걸 기다려주며 함께 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데도, 민석이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현세가 초보코스에서 완전히 내려 갈 때까지 옆을 지켰다. 물론 순간순간 감정이 왜 아니 일었겠으며 지민이나 규빈이처럼 왜 아니 찬바람을 가르며 타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그 옆을 지켜주며 함께 해줬다는 건, 대단한 인내심이며 대단한 책임감이라 할 수 있다.  



▲ 초보이기에 사진기를 보드 탈 땐 가져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장면들을 찍지 못한 건 못내 아쉽다.

   


           

민석이의 씨름 2 - 이화령에서 보여준 책임감과 동지애  

   

그런데 이런 모습이 낯설지 않다. 이미 ‘낙동강-한강 자전거여행’ 때도 그와 같았기 때문이다. 낙동강에서 남한강으로 가기 위해선 이화령이란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꽤 높기 때문에 저속기어에 맞추고 천천히 올라야 하는데, 민석이는 충분히 자전거를 타고 오를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은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현세가 체력이 좋지 않고, 기어를 변속하는 것이 미숙하여 밑에서부터 끌고 올라간다는 거였다. 

이런 경우 당연히 자전거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은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사람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 그럴 경우 자전거의 특성상 더 체력이 많이 들고, 답답함까지 참아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세를 잘 데리고 와’라고 말한 적도 없었으니 더욱 그렇다. 이뿐인가? 우리 사회는 경쟁을 중시하는 사회이고, 개인이 실력이나 체력으로 남들을 치고 나가는 걸 권장하는 사회이지 않은가. 그러니 민석이가 힘껏 페달을 밟아 1등으로 이화령에 도착한다 해도, 그건 혼내야 할 일이라기보다 ‘애썼다’며 칭찬해줘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민석이는 현세와 함께 천천히 올라왔고, 현세가 너무 느리다 싶을 땐 포물선을 그리며 한 바퀴 돌며 속도를 맞춰줬다. 현세 입장에서도 자기 혼자 끙끙거리며 올라가는 것보다 누군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갈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마웠을 것이다.                



▲ 낙동강-한강 자전거여행 때도 민석이는 현세를 챙기며 고개를 넘어갔다.




민석의 씨름 3 - 봉사활동에 대한 반응으로 민석이를 보다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민석이에겐 책임감과 함께 인내심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오전에 보인 반응은 오히려 ‘이기적이더구만’이라 오해할 만한 구석도 있었다. 2016학년도 단재학교의 일정을 공유하며 매달 두 번씩 봉사활동이 있다고 이야기하자, 민석이가 대번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너무 자주 한다는 불만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경우 민석이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처럼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위의 예에서처럼 민석이가 그렇게 막무가내로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상황에 따라 자신이 책임지기로 했으면 그걸 끝까지 놓지 않으며, 진득하게 지켜봐주고 응원해주는 멋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런 식의 이의제기를 했다면, 분명히 다르게 생각해봐야 한다. 그건 저번 후기에도 밝혔다시피, 너무 갑작스럽게 횟수를 대폭 늘려 부담스럽게 느끼도록 한 것과 그로 인해 하나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 같은 모양새를 연출했다는 것이 그렇다. 아무리 좋은 것도 천천히 배어들도록 해야 하는데, 그걸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좋은 것이니 무조건 하라’는 식으로 몰아붙이니 문제가 생긴 것이다. 

민석이도 내심 교사들이 고민하여 정했고 그걸 알려준 것인데, 거기에 이의를 단 것이기에 마음이 불편했었나 보다. 그래서인지 그 때의 심정을 밝히며 “승태쌤이 내 의견을 수긍해 주셔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는 것도 고려해 보시겠다고 하니 나름대로 기대해 볼 수도 있을 듯”이라 약간의 기대감을 내비치며 정리했다. 

민석이는 현세와 40분 간 한바탕 씨름을 벌인 후, 태기와 규빈이를 데리고 중급코스로 갔다. ‘얼마나 진즉부터 그렇게 타고 싶었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마지막까지 현세를 신경 써준 그 마음이 고마웠다.                



▲ 오전 회의 시간의 반응은 어찌 보면 그 자리에 멈추지 말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했다.




현세의 씨름 1 - 두려움과의 씨름 한 판 

    

현세는 겁이 많은 친구다. 단재학교에서 생활한지도 어느덧 2년 8개월 정도가 흘렀는데, 그 기간을 통해 현세를 더욱 더 잘 볼 수 있었다. 

처음 학교에 왔을 때는 영화팀이 지리산 종주를 하게 되면서, 체력을 기르기 위해 매주 등산을 하던 때였다. 다른 산보다도 북한산에 올랐던 때가 기억에 난다. 그 산은 바위산인데, 오르는 것만큼이나 내려가는 것이 힘들었다. 경사가 엄청 급하거나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높이가 들쭉날쭉한 바위들이 있어서 내려갈 땐 꽤 허벅지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이 때 현세는 바들바들 떨면서 내려왔고, 급기야 바위에 앉아 미끄럼을 타듯 온 몸으로 내려오기까지 했다. 그 때만 해도 단순히 ‘등산을 해본 적이 없으니 저러나 보다’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스키 타는 모습을 보니, ‘단순히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건 근본적으로 자신의 몸으로 주체할 수 없는 상황 같은 것에 놓이면 무서워 벌벌 떠느라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두려움이 나를 삼켜버렸다고 표현하면 맞으려나. 그러니 몸을 내맡겨 도전해볼 용기도, 한계라고 느껴진 부분을 극복할 용기도 내지 못했던 것이다. 단지 지금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싫을 뿐이고, 굳이 안 해도 되는 거라면 ‘저는 빠지겠습니다’라며 어물쩍 넘어갈 생각만 하게 된다. 그러니 이를 악물고 제대로 달리다가 넘어지긴 커녕, 지금처럼 조금 앞으로 나갔다 싶으면 넘어지기 바빴던 것이다.                



▲ 2013년에 북한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현세. 온몸으로 내려오고 있다.




현세의 씨름 2 - 부족함을 피하려 하면 할수록 그건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

     

그런 상황에서 현세가 넋두리처럼 “저는 앞으로 살면서 몸 쓰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어요”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건 이미 기독교 철학의 심신이원론을 깊이 받아들인 나머지, 몸과 머리를 분리하여 머리의 우월성을 강조한 말이자, 자신의 한계를 감추려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몸으로 살고 머리는 그런 몸을 도와주는 기관일 뿐인데,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여 몸이 머리를 위한 하수인 정도로 생각한다. 몸은 우치다쌤의 말처럼 ‘타자’이기에 아무래도 내 생각처럼 잘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난 몸 같이 말도 안 듣는 건 필요 없어, 정신으로만 살아갈 거야’라고도 할 수 없다. 몸 없이 사는 사람은 없기에 그건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몸과 어떻게든 친해지려 노력한다는 것은, ‘나와 전혀 다른 존재인 타자와 어떻게든 소통하려 노력하는 것’과 같다. 내 몸과 소통하려 하지 않으면서, 남과 소통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몸을 등한시하고 놀림감이 되기 싫다며 ‘난 몸치이기에 몸으로 하는 일은 안 할 거야’라고 생각한들, 그런 생각은 비수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현세가 ‘노답’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현세도 자라고 있는 아이인 만큼 내면 깊숙한 곳엔 분발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며, 때론 도전하고 싶어야 하는 욕구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음 후기에선 그 부분에 대해 한 번 짚어보며 개학여행기를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 작년 11월에 갔던 2학기 마무리 여행 중, 한껏 흥에 겨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던 현세의 모습.






목차     


1. 겨울방학에 새로운 숙제를 받다

나에게 던진 겨울방학 숙제

미완의 숙제, 그리고 새로운 숙제

새로운 숙제 1 - 동섭쌤의 강의가 던진 숙제

새로운 숙제 2 - 공교육 교사들이 던진 숙제

2016년은 지적폐활량을 키우는 해     


2. 단재학교 개학여행을 가다

1월 마지막 주에 개학과 동시에 여행을 떠나는 이유?

올겨울 최악의 한파가 찾아온 날 떠나다 1

올겨울 최악의 한파가 찾아온 날 떠나다 2

백양리역에서 가방을 놓고 내린 사연

깔끔한 숙소, 하지만 비싼 음식 가격

장갑이 없으시다구요? 우리에겐 양말이 있잖아요~     


3. 도전엔 늘 불안이 따른다

스키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실력에 따른 복장이 있을 뿐

도전 보드 1 - 두 번째 스키장 방문에 보드를 타게 된 사연

도전 보드 2 - 필수 준비물, 그리고 스키슈즈 신는데 30분 걸리다

도전 보드 3 - 보드와 티익스프레스의 공통점

도전 보드 4 - 새로운 도전엔 언제나 불안이 따른다


4. 처음으로 보드를 타다

도전 보드 5 - 육체는 타자이기에 지배하려 하기보다 이해하려 해야 한다

도전 보드 6 - 타자성, 무계획성에 몸을 던지다

도전 보드 7 - 타자성, 무계획성에 몸을 던진 경험들

실전 보드 1 - 보드에서 일어서기

실전 보드 2 - 처음이란 어색함과 어설픔을 끌어안기

실전 보드 3 - 실력을 키우며 천천히 갈 것인가, 엄청난 난이도로 한 번에 비약할 것인가?

여행 중 가장 조용했던 밤을 지내다


5. 단재학교의 2016학년을 말하다

2016년 학사일정, 예술과목에서의 선택

교사 없는 학교 1 - 2012년에도 진행되었으나 시기상조였다

교사 없는 학교 2 - 실패가 아닌 시기상조인 이유

교사 없는 학교 3 - 자유를 누려봐야 누릴 줄 안다

봉사활동 1 - 학사일정 중 봉사활동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다

봉사활동 2 - 강제를 통해 의식을 바꾸려는 어리석음을 범하다


6. 두 번째 보드 도전기

두 번째 하면 어찌 되었든 첫 번째보다는 익숙해진다

두 번째로 보드를 타는 이의 각오

실전 보드 4 - 바보는 빠름을 추구하고, 실력자는 완급조절을 추구한다

실전 보드 5 - 넘어지면서 배우고, 한계에 직면할 때 배운다



7. 민석이의 도전현세의 도전

민석이의 씨름 1 - 현세와의 씨름 한 판

민석이의 씨름 2 - 이화령에서 보여준 책임감과 동지애

민석의 씨름 3 - 봉사활동에 대한 반응으로 민석이를 보다

현세의 씨름 1 - 두려움과의 씨름 한 판

현세의 씨름 2 - 부족함을 피하려 하면 할수록 그건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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