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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22. 2016

불안을 투사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27 - 15.10.7(수)

▲ 10월 7일(수)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 충주시 / 61.55km



리더미션은 선배와 통화하며 갑자기 하게 되었는데, 이 미션이야말로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는 생각이 든다. 한 개인에게 전체를 이끌어야 할 임무를 주면서 얼마나 책임감이 있는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미션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미션이지만, 이 미션만큼은 철저히 한 개인에게 책임이 집중되기에 당사자도 긴장할 수밖에 없고, 팀원들도 노력할 수밖에 없다.                



▲ 저 앞에 문경새재가 보인다. 황금들녘을 지나 산으로 간다.




리더 재익이의 리더십생색내지 않는 자연스러움

     

어제의 리더는 재익이였다. 아무래도 처음으로 리더를 해본 것이기에 완벽할 수도, 만족스러울 수도 없다. 그런 활동들이 계기가 되어 점차 리더로서의 의식이 성장하고 누군가를 잘 이끌어갈 수 있도록 갖춰져 갈 뿐이다. 

그런데도 애를 많이 썼다. 안내를 하는 도중에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며 모두가 힘낼 수 있도록 챙겨줬다. 재익이의 리더십은 『노자老子』식으로 말하면, ‘생이불유生而不有’의 리더십이라 할 수 있다.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했지만, 티 나지 않게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대체로 좋게 평가를 했다. 특히 현세는 “재익이 형의 원래 이미지는 그냥 덩치는 큰데 가만히 있고 가끔은 귀여운 이미지였는데, 챙겨주니 새로운 모습이었어요. 비유하자면 후드가 휘날리는 게, (슈퍼맨의) 망토가 휘날리는 것 같았어요”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그간 재익이가 보인 태도는 가만히 있거나, 귀찮을 땐 멍하니 있거나, 기분이 안 좋으면 후드를 눌러 쓰고 엎드려 있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덩치는 큰데 가만히 있고’라고 현세가 표현한 것이다. 단재학교에 와서 적응하는 기간 동안 그런 모습만 보였는데, 이번에 리더 역할을 하며 ‘책임감 강한 모습’을 보여줬으니 “후드가 휘날리는 게, 망토가 휘날리는 것 같았어요”라고 표현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 현세는 재익이의 리더십을 보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리더 재익이의 리더십뒷심은 부족했다 

    

초반엔 그래도 리더로서의 모습을 보이려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그게 점차 시간이 지나며 옅어지더니, 현세 자전거의 체인이 꼬였을 때는 그냥 가버렸고, 점심을 먹고 난 후엔 아예 준영이에게 안내하는 임무를 넘겨주기까지 했다. 

처음의 열정을 하루 내내 유지할 수 있었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뒷심이 부족한 부분이 못내 아쉽다.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선 책임감과 함께 끈기도 필요하다. 그건 ‘대충해도 되겠지’하는 마음으론 절대 생길 수 없다. 그러니 다음부턴 마지막까지 책임지려는 마음으로 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 초반엔 분발해서 열심히 했지만, 그 마음을 마지막까지 유지하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리더 양준영전체를 아우르는 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할 것인가?

     

오늘의 리더는 양준영이다. 단재학교에는 올해 2학기부터 다니기 시작했으니, 겨우 2개월을 함께 생활해 봤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지닌 아이인지 거의 모르며, 서로가 어떤 성향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래도 2학기 전체여행으로 2박 3일 동안 부안여행을 다녀왔고, 매주 금요일마다 한강 라이딩을 하며 보니, 믿음직스럽더라. 잘하고자 하는 마음도 엿보였고, 상황 판단도 빠른 편이며, 책임감도 있어서 잘 이끌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몸이 호리호리해서 체력이 좋지 않아 도중에 포기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걱정을 초반에 하긴 했는데, 재익이와 민석이와 함께 달려도 될 정도로 체력이 좋더라. 포기는커녕 더 빨리 달리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니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하나 아쉬운 점은 월요일에 민석이와 싸운 이후 아직까지 화해를 하고 있지 않다는 거였다. 아직 시간은 많기에 어떻게든 화해를 할 테지만, 이젠 준영이가 리더인 만큼 어떻게 민석이를 데리고 갈 것이냐 하는 것도 주의 깊게 봐야 할 것 중 하나다. 

그렇기에 준영이가 오늘 리더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어떻게 3명의 아이들을 아우르며 리더십을 펴느냐다. 자기 맘 같지 않은 팀원들을 다독이며 함께 갈 수 있어야 준영이의 리더십이 살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준영이는 준영이대로 잘 따라주지 않는다며 힘이 빠질 것이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리더 혼자 잘 났다’며 불만을 토로할 것이다.                



▲ 이 날에도 현세 자전거의 체인이 엉켰지만, 리더 준영이는 현세를 꼼꼼히 챙겼다.




문경온천낮과 밤의 분위기가 180도 다른 곳 

    

드디어 남한강으로 건너가는 날이다. 민족의 젓줄인 낙동강을 지나 한강의 기적을 만든 남한강으로 들어서는 기념비적인 날이다. 그런데 남한강으로 가기 위해서는 백두대간 중 하나인 이화령을 넘어가야 한다. 그래서 마음을 단디 먹고 출발했다.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이화령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제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불야성을 연출했던 문경온천 부근을 지나가야 한다. 어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환한 불빛이 비춰서 별세계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아침에 그곳을 지나니 전혀 다른 곳인 줄 알았다. 화려한 무대의 앞과 어둡고 초라한 뒤의 차이처럼 쇠락한 마을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직접 눈으로 보고 나니 어제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저씨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어제 내가 “문경시청 부근은 좀 초라한 느낌이 들던데, 오히려 온천 부근에 오니까 훨씬 번화해서 놀랐어요”라고 하자, 아저씨는 “그건 시내 안쪽까지 안 들어가 봐서 그럴 거예요.”라고 했는데 그 말대로 온천부근은 좀 초라했다.                



▲ 같은 곳인가 싶게, 어제와 오늘은 전혀 다른 곳처럼 느껴졌다.




이화령 도전기 1 - 미지란 두려움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 전 준규쌤에게 자문을 구하러 갔었다. 이미 8명의 초등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올림픽공원부터 구포역까지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가장 궁금했던 건, 이화령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아쉽게도 자전거를 타고 오르지 않고 차로 넘어갔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나니, 왠지 모르게 더욱 겁이 나기 시작했다. 



▲ 개구쟁이 8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자전거 종주를 마쳤다. 이번 여행은 준규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어쨌든 가기로 맘먹은 이상 몸으로 부딪혀 봐야겠다고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 게스트하우스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이화령은 8킬로미터 밖에 되지 않기에 한 시간이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어요. 그런데 막상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면 50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처럼 느껴질 거예요. 그런데 이화령을 넘었다고 안심했다간 큰 코 다쳐요. 바로 또 하나의 산을 올라야 하거든요. 소조령이라는 산이 나오는데 이화령을 넘었다고 방심하고 있다간 큰 코 다치는 거죠.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화령이 5의 고통이라면 소조령은 3의 고통 정도 된다는 점이죠.”라고 말씀해주시더라. 그 얘기를 들으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뭔가 알지도 못하면서 부딪히는 것과 알고 난 후에 대략적인 감이 잡힌 상태에서 부딪히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50분 정도면 올라갈 수 있다는 말에 기운까지 넘쳤다. 난 오전 내내 달려야 겨우 이화령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줄만 알았다. 

어제 저녁에 이화령 오르는 것에 대해 인터뷰를 했었는데, 자세한 내용을 알기 전이라 나도 매우 불안에 떨고 있었고 그런 심경이 준영이에게 전달됐는지 “처음엔 걱정이 없었는데, 선생님이 자꾸 힘들다, 각오해라 라고 말씀하시니까, 얘기를 들을 때마다 걱정이 점점 쌓여져 가더라구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즉, 나 자신의 두려움을 남에게 어떤 식으로 투사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 오히려 어른의 말을 들어 걱정만 쌓인다면, 그 어른의 말은 거부해도 된다.




이화령 도전기 2 - 불안을 그럴 듯한 말로 투사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

     

그때 문득 ‘어른들은 왜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불안을 심어주지 못해 안달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테면, ‘밖에 나가봐 얼마나 살벌한지!’, ‘지금 그렇게 살다간 나중에 후회한다’, ‘너 혼자 사는 세상이 아냐, 그러니 남들 하는 것만큼만 하면서 살아’라는 말들이 그런 말이다. 이 말들은 공통적으로 만만치 않은 세상에 대한 불안을 어떻게든 심어주고자 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굳이 이런 말들을 하는 것일까? 그건 다른 게 없다. 어른 스스로 닥치지 않은 미래가 불안하고 알 수 없는 세계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그럴 듯한 언어로 꾸며 아이들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어른들의 어떤 불안에 가득한 말들을 듣거든, 외쳐야 한다. “많이 두려우시죠. 하지만 제 인생은 제가 살 테니, 당신의 불안은 당신이 감당하세요.”라고 말이다. 거기에 덧붙여 “자꾸 당신의 불안을 투사할 생각이시라면, 저 또한 저의 불안을 맘껏 드러낼 거예요”라고까지 하면, 완벽한 마무리되시겠다. 

나 때문에 괜히 더 큰 두려움으로 이화령을 넘게 된 준영이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한다. 나도 뭣도 모르기에 무서워서 그랬다는 것을 여기서 밝힌다.                



▲ 문경새재 도립공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화령 도전기 3 - 막상 해보면 별 거 없다

     

이제 본격적으로 오른다. 예전에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엔 이 길로 차들이 다녔을 테지만, 고속도로가 뚫리고 3번 국도를 직선화하면서 이 길은 차가 거의 다니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올라가는 동안 3대 정도의 차만 봤을 정도로 차가 거의 없는 길이었다. 

지그재그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경사가 급하긴 해도 저속기어로 맞추고 오르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정도다. 조금 올라가니 ‘5Km’ 남았다는 팻말이 보인다. 올라가는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팻말에 보이는 숫자가 점점 줄어들기에 그걸 보는 재미가 쏠쏠 했다. 

준영이와 민석이는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며 재익이는 앞 기어가 고장 나서 저속기어로 맞출 수 없기에 끌고 올라갔다가 타고 올라갔다가를 반복하고 있고, 현세는 체력이 좋지 않아 아예 계속 끌고 올라간다. 40분 정도 달리니 이화령이라고 쓰여 있는 터널이 나오더라. 그 때의 행복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                



▲ 이화령을 올라간다. 경사가 급하긴 해도, 못 오를 정도는 아니고 거리도 짧다.




이화령 도전기 4 - ‘苦盡甘來를 문자가 아닌 현실에서 배우다

     

현세는 자전거를 끌고 가지만 그 곁에 민석이가 함께 달린다.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니 훨씬 빠르게 달릴 수 있지만, 현세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오르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론 이런 길에서도 경쟁심을 불태우며 ‘나만 오르면 되지’라고 마음을 먹을 만도 한데, 그러지 않고 함께 오르고 있는 것이다. 저 한 장면만으로도 4년의 세월이 헛되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9시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출발했는데, 이화령 정상에 오른 시간은 10시 47분이었다. 2시간이면 넉넉잡고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정도이니 자전거 여행을 하시는 분들은 별로 부담 갖지 말고 그냥 달리면 된다. 



▲ 끌고 올라오는 현세 옆에 민석이가 자전거를 타고 함께 올라온다. 경쟁이 아닌 우정의 장이다. 교사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순간.



정상에는 휴게소가 있더라. 그곳에서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사서 먹었다. 바람은 상쾌했고 무언가 성취했다는 뿌듯함이 감돌았다. 이 기분은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을 때의 기분과 같았다. 두 산의 스케일은 달랐지만, 무언가 마음의 두려움을 넘어섰다는 것은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누구 할 것 없이 오르길 잘 했다고 말하더라. 이곳에서 이번 여행의 가장 중요한 미션을 해야 하기에, 잠시 쉰 후에 미션을 하기 위해 모였다. 



▲ 이렇게 이화령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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