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25 - 15.10.6(화)
상주박물관에서 자전거 도로로 가기 위해서는 낮은 언덕 넘어야 한다.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오를 때 꽤나 애를 먹었다. 그래도 조금만 끌고 올라가니 바로 정상에 도착하더라.
곧바로 펼쳐지는 내리막길은 자전거 길을 위해 만들어졌다기보다 산책길을 자전거 도로로 포장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경사가 매우 급하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온 우리들은 당연히 브레이크가 잘 들 거라 생각하며 그냥 타고 내려간다. 나도 처음엔 뭣도 모르고 타고 내려가다가 가속도가 순식간에 붙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내려서 끌고 갔다.
조금 내려가니 모래가 쌓인 곳에 재익이가 앉아 있더라. 무슨 일인가 했더니, 현세가 “재익이 형이 브레이크를 잡지 못하고 날랐어요”라고 말한다. 브레이크의 장력이 생각보다 좋지 못해 속도가 줄지 않아 모래에 부딪힌 것이다. 그나마 모래여서 다행이지, 난간에 부딪히거나 굴러 떨어졌다면 크게 다칠 뻔 했다. 그래서 재익이에게 “괜찮아?”라고 물어보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날긴 했는데, 살짝 긁히기만 했어요”라고 말하더라. 그곳에선 준영이 자전거에만 디스크브레이크가 장착되어 있어서 타고 내려갈 수 있었고, 나머지는 천천히 끌고 내려가야 했다.
상주에서 문경으로 달리는 길은 양수리에서 북한강을 따라 청평으로 가는 길과 느낌이 비슷했다. 분위기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적절히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이라 달리는 맛이 있다는 점이 그랬다. 어제 달렸던 길은 완전한 평지라 그냥 쭉쭉 뻗은 도로를 달리는 밋밋함만 느껴질 뿐이었는데, 오늘은 조금 힘들긴 해도 달리는 맛은 확실히 더 있다.
재익이는 박물관으로 향할 때만 해도 ‘내가 리더다’라는 인식은 있었다. 하지만 박물관에서 미션을 하면서 그런 부분들이 약간씩 옅어졌다. 아무래도 한 번도 누군가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니, 갑자기 그런 생각을 가지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위급상황이 생겼을 때, 재익이의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달리는 도중에 현세 자전거 앞 기어에서 체인이 빠졌다. 아무래도 자전거를 정비하지 않아 기어변속기가 뻑뻑한 데다, 기어변속에도 미숙하다 보니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체인이 빠졌는데도 그걸 모르고 마구 페달을 굴러서 크랭크 사이에 끼었다. 당연히 그런 상황에선 리더인 재익이가 와서 어떤 상황인지 물어야 하고, 고쳐 주던지 주위 친구들에게 도와주라던지 했어야 맞다. 그런데 현세가 갑자기 멈추자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재익이도 멈추긴 했으나, 옆에 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민석이가 본격적으로 고쳐주기 시작하자, 지켜보던 재익이는 그냥 휑하니 가버렸다. 무슨 상황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나의 일이다’라는 생각이 없는 것이기에, 실망스러운 광경이었다. 어찌 보면 재익이도 이렇게 리더의 역할을 자주 맡으며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가짐을 서서히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동섭쌤은 일전의 강의에서 “‘이건 모두의 일이기에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른이고, ‘내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아이입니다”라는 말을 통해 성숙한 어른이 되도록 하는 게 교육의 본질이라고 말했었다. 재익이도 이런 여행을 통해 좀 더 ‘이건 모두의 일이기에 내가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서서히 그렇게 성장해 갈 수 있으면 된다.
그래도 이번 일은 하나의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누군가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는 한다’는 세상의 묘한 이치를 확인시켜줬기 때문이다. 재익이가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고 빠진 자리는 민석이가 메워주었다. 그 때문에 현세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던 것이다. 개미는 한 마리 한 마리는 너무나 약한 존재다. 하지만 군집으로 볼 경우 각자의 역할이 나눠져 있으며 유기적으로 움직이기에 가장 오랜 동안 종을 보존하며 살아올 수 있었다. 그걸 ‘집단지성’이라 부르던데, 이처럼 우리 영화팀도 각자는 부족한 게 많지만, 그걸 서로 보완해주며 ‘집단지성’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3시가 넘어가는데도 아직 30km정도 남았더라. 전속력으로 달리면 3시간 만에 갈 수 있지만, 점심도 아직 먹지 못했고, 현세도 체력이 거의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조금 달리다가 문경 근처의 정자에서 쉬면서 어떻게 할지 결정하게 되었다.
재익이가 앞에 나와 ‘점심을 먹고 갈 것인지, 그냥 바로 가서 쉴 것인지?’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점심을 먹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더라. 그러면 메뉴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물으니, 서로 먹자고 하는 메뉴는 달랐지만, 한 가지 의견은 공통적이었다. 바로 ‘국밥은 빼고’라는 의견 말이다. 어제 점심에 국밥, 저녁엔 피치 못할 사정으로 결식, 오늘 아침도 국밥을 먹었기 때문에 서서히 물릴 만도 했다.
그래서 문경 외곽에 진입하자마자 음식점을 찾아봤는데 가격대가 맞으면서 먹을 만한 것이 없더라. 제육볶음을 해준다는 식당이 보여 그리로 가봤는데, 단체 손님이 예약되어 있다며 다른 곳으로 가보란다. 그래서 열심히 찾아봤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국밥을 먹어야만 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신물이 날 정도로 국밥이 싫진 않다. 그래도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주기에 당분간 국밥을 먹을 일은 없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4시 30분이 넘어서 늦은 점심을 먹지만 배가 고프기에 허겁지겁 들이켰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아직도 29.21km나 남아 있다. 문경새재 근처에는 오르막길이 여러 군데 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 길을 달려야 하니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 걱정이 된다. 그런데 막상 달려보니 한 번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이 있었을 뿐 그렇게까지 힘든 길은 아니더라. 그게 정말 다행이었다.
여기 자전거 길은 민가를 관통하여 가기도 하고 국군체육부대 앞을 질러가기도 했다. 국군체육부대에선 ‘세계군인체육’ 대회를 하고 있는 중이라 경비가 나름 삼엄하더라.
완벽하게 어둠이 대지에 내려앉았다. 자전거 플래시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보일 정도로 어둡다. 이미 어제 저녁에 이런 어둠 속을 달려본 경험이 있으니 무섭거나 비극적이진 않았다. 어제는 펑크 난 자전거를 타고 가야 했는데, 지금은 모든 자전거들이 멀쩡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그저 밤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기분은 상쾌하기만 했고 함께 달릴 4명의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면서 행복하기만 했다.
한참 가다 보니 갑자기 반짝반짝 불야성이 펼쳐진다. 금방 전까지는 호젓한 시골길이었는데, 한 코너를 돌자마자 휘황찬란한 도시가 나타난 느낌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문경온천이 있어서 번화한 곳이더라. 거기엔 모텔이 즐비했고 각 건물의 불빛이 도로를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다. ‘저 곳 어딘가에 게스트하우스가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하며 달리는데, 준영이는 좀 더 달려야 한다고 알려주더라. 그러고 보니 저녁을 먹은 이후부턴 준영이가 안내해주고 있다. 재익이가 안내해주는 게 답답했던지, 준영이가 자진하여 안내해주게 된 거다.
휘황찬란한 불빛은 뒤로 완전히 사라지고 어둠만이 가득해졌다. 그 도로를 20분 정도 달리니 언덕 위에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게스트하우스도 거기에 있었다. 8시가 넘어서야 아무 문제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제에 비하면 오늘은 늦기만 했을 뿐 아주 무난한 날이라 할 수 있다.
게스트 하우스는 4인 1실이며 각 방은 벽으로 막혀 있지 않고 사물함과 커튼으로 나눠져 있다. 한 방엔 2층 침대 두 개가 있어 먼저 온 사람이 1층을 배정 받아 사용하는 형식이다. 아이들은 한 방에 배정을 받아 짐을 풀었고 나만 따로 한 방에 배정을 받았다. 평일이라서 혼자 쓸 수 있으려나 내심 기대했는데, 지금은 군인체육대회 기간이라 숙소마다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 우리 방엔 군인체육대회에 참가하는 학생 한 명과 자전거 여행 중인 한 명 이렇게 세 명이 자게 되었다.
아이들은 자기 집인 양 떠들기 시작한다. 벽으로 막혀 있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소음방지는 될 텐데, 그러지 않으니 주의를 줘야 했다.
주인 내외분이 되게 편안하게 대해주셔서, 우리도 편하게 씻고 저녁이 준비될 때까지 인터뷰를 하며 쉬었다. 저녁은 한 공기 밥 위에 반찬에 올려진 형태로 주며, 아침은 서양식으로 챙겨 준다. 일인당 삼 만원인데 계획을 짤 때 현세가 알아본 곳이라 우리는 오게 되었다. 아이들은 분위기도 좋고 자는 곳도 맘에 든다고 평했지만, 밥과 반찬을 더 달라고 할 수 없는 점은 불만족스럽다고 하더라.
인천에서 하루 만에 문경까지 달린 사나이
간혹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을 하루 만에 완주한 사람도 있다’는 뜬소문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빨리 달린다 해도 사람인 이상 체력이 저하될뿐더러, 바람이나 날씨의 영향을 받다 보면 하루는커녕 5일 이상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방에 함께 머물게 된 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말 그게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 그 분은 인천 아라뱃길에서부터 시작해 하루 만에 문경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무려 259.13km를 하루 만에 주파한 것이다.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땐 하루 만에 자전거 여행을 끝낼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달려보니 만만치 않아서 중간에 멈출 수밖에 없었단다. 거의 파김치가 되었으며, 어찌나 맹렬히 페달을 굴렀던지 무릎을 제대로 펴지 못할 정도였다.
결국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처음엔 ‘대다나다(무도 행쇼버젼)’라는 생각이 차츰 그건 여행도 아니고, 극기훈련도 아니고, 이도 저도 아닌 행위라는 생각으로 변해갔다. 그 사람도 그게 느껴지던지 “내일 부산까지 갈 생각이었는데, 그냥 대구까지만 가서 쉰 후에 부산까지 가려구요”라고 하더라.
2009년에 목포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걸어갔었는데, 그 때 든 생각은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기 위한 경로로만 걷다 보니, 지나가며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지역을 거쳐 갔지만, 그 때 가봤으면 좋을 만한 곳들을 모두 지나가기에만 바빴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도보여행을 떠올리면 ‘걸어서 종주했다’는 생각만 남았을 뿐, 정작 과정은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이 사람도 이 여행이 끝나면 ‘그 때 미치도록 달렸지’하는 감상만 남을 것이다.
도보여행 때의 아쉬움이 있기에, 이제는 여행을 계획할 땐 ‘목표 중심적인 여행이 아닌, 과정 중심적인 여행’으로 짜게 되었다. 그래서 작년 남한강 도보여행 땐 어떻게든 명성황후 생가를 보고 가려 했고, 중간 중간에 미션을 하여 순간순간의 감정에 충실하려 했던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번 자전거 여행에 대해서도 ‘무엇을 위해 달리나?’하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린 그냥 심심하기에,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 달리는 게 아니다. 그저 순간에 충실히 살아보기 위해, 그리고 지금 당장 느껴야 할 것들을 느끼기 위해 달리고 있을 뿐이다. 언제든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과정이 중요함을 몸소 느끼기 위해, 지금 당장 한 획이라도 긋기 위해 페달을 밟아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도 나의 이런 말에 대해 공감했나 보다. 아무래도 하루 빡시게 달려 안 아픈 곳이 없다 보니, ‘좀 즐기면서 달리세요’라는 말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순오지旬五志』의 ‘삼일 가야할 길을 하루에 가고 열흘 눕는다(三日之程, 一日往; 十日臥.).’라는 말은 여행자라면 되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이 말을 몸소 체험했기에, 내일부턴 조금 더 즐기며 달려야겠다고 말하더라. 역시 떠나보면 내가 무엇에 쫓기며 사는지, 얼마나 목표중심적으로 사는지 제대로 볼 수 있다. 그 때가 어찌 보면 가장 부끄러운 순간이지만, 나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오늘 이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들은 것이, 자전거 여행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이로써 우리의 여행도 어느덧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 우리도 좀 더 즐겁게, 이 순간을 즐기며 신나게 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