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19 - 15.10.5(월)
퀴즈를 통해 ‘사육신’에 대한 역사적인 내용을 살펴봤다. 물론 퀴즈라는 것이 토막지식을 묻는 것이기에, 아이들이 토막지식을 어떤 내용으로 스토리텔링하느냐가 ‘영화제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본래 하려던 미션인 ‘사육신 소재로 영화 만들기’를 하게 되었다. 조건은 첫째 15초~30초 분량의 영화, 둘째 편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영화를 직접 만들어본 경험이 많지 않으니 황당한 미션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창작품이라는 것은 어떤 의식의 흐름을 담고 있게 마련이다. 그건 곧 사실과 사실들에 어떤 뼈대를 입혀 ‘나만의 이야기’로 만들어 내느냐 하는 것이다. 이때 착각하기 쉬운 것이 ‘창작이라 하지만 결국 사실과 사실을 이어붙인 것이 아닌가요?’하는 점이다. 즉 그저 짜깁기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의 사실의 나열은 단순한 팩트이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는 없다. 이에 대해 김용옥 선생님은 명확하게 집어주신다.
정확한 학문에는 약속이 있다. 해석도 그런 기본 논리 위에서 해야 한다. 역사에서 말하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기술된 팩트다. 1961년에 몇몇 군인이 한강을 건넜다는 것은 팩트다. 그러나 그건 역사가 안 된다. 그들이 한강을 건너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우리가 해석해야 비로소 역사다.
-『한국일보』, 2015년 11월 16일
국정교과서 이슈가 한창일 때, 김용옥 선생은 『중국일기』라는 책을 펴내며 ‘중원 패러다임’을 넘어선 ‘고구려 패러다임’을 회복해야 한다는 논지를 펼쳤다. 위의 말에서도 팩트와 역사 사이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팩트는 있었던 일 그대로를 기술하는 것이지만, 거기에 어떤 해석을 내리면 그게 바로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해석이란 결국 스토리이고 그 스토리는 각자의 관점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다.
창작물을 만드는 일이 바로 사실들에 해석을 입히는 일이다. 그 해석은 자신의 관점이 투영된 해석일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관점만 부각시킬 경우 누구에게도 공감을 주지 못하는 ‘자폐적 창작물(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쓰레기)’이 만들어질 뿐이다. 그러니 해석에도 공동의 이해에 기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쉽게 말하면, 자신만의 스토리를 입히되 거기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 미션을 통해 ‘어떻게 스토리를 입혀 영화를 완성할 것인가?’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사육신의 핵심내용인 ‘충절’이나 ‘신의’에 대한 것을 부각시키는 스토리를 엮어낼 수 있길 바랐다. 하지만 그건 이상에서나 가능한 얘기였다. 솔직히 나에게도 갑자기 이와 같은 미션이 주어진다면, ‘뭥미~’하는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을 테니 말이다.
팀은 두 팀으로 나누어 민석&준영이가 한 팀, 재익&현세가 한 팀이 되었다. 준영이는 의욕적으로 무언가를 만들고자 노력은 했지만, 민석이는 별로 흥미가 없는지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보니 준영이도 지쳐서 하지 않게 되었다. 재익&현세팀은 처음부터 ‘우리 일이 아니야’라는 생각으로 귀찮아하며 그냥 시간을 때울 뿐이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눠 스토리를 만들고 어떻게 제작할지 논의를 하길 바랐는데, 아이들은 철저히 ‘하기 싫다’는 자세만 보여주고 있었을 뿐이다.
시간이 흘러간다 해도 전혀 찍을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이때는 내가 개입해야만 했다. “찍어야만 출발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으니, 그제야 뭔가를 찍기 위해 일어나더라.
고민도, 논의도 없었으니, 그들이 만든 사육신 영화는 단조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사육신의 이야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신하가 죽었다→누군가 죽는 이야기→죽거나 맞는 영상만 담으면 된다’라는 의식의 흐름 말이다. 아이들이 찍은 영상은 ‘죽었다’는 단어만 남고, 역사적 사실은 완전히 휘발되어 날아갔다. ‘왜 죽는지?’, ‘무슨 상황인지?’는 전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어떤 부담스러운 상황이 있다. 하지만 그런 부담스러운 상황을 피할 순 없다고 해보자. 그 때 보이는 반응은 대략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극복하던지, 소극적으로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뭐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니 결과에도 미련이 없어’라고 하던지 말이다. 상황에 따라 두 가지의 반응 중 적절한 것을 선택할 테지만, 이 때 아이들이 택한 반응은 후자였다. 적극적으로 하지 않을 것, 최소한의 힘만 들였기에 그 결과에도 초연할 것.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어디에도 고민의 흔적이나, 잘 만들어보자는 생각 자체가 들어설 공간이 없었다. 그러니 편집할 때 찍은 영상을 어떻게든 꾸며내기 위해 ‘개그물’로 희화화시켜 버린 것이다.
어찌 보면 이런 상황으로 만든 나를 탓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영화를 만들어라’라고 말하며 의욕을 상실하게 했으니 말이다. 차라리 어제 저녁에 미리 팀별 과제임을 공지하여 사육신에 대한 역사를 공부하게 하고 준비하게 했어야 했다. 물론 쉬어야 할 시간에 과제를 준다고 열심히 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지금처럼 아예 대충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래저래 상황들을 겪어나가며 나도 아이들도 함께 배워가고 있다.
10시가 넘어 본격적인 출발했다. 아직도 81.53km를 달려야 하니, 부지런히 서둘러야 한다. 가는 길에 인증센터가 나올 때마다 아이들은 자전거수첩에 인증도장을 찍었고, 칠곡보와 구미공단을 거치며 맹렬히 달렸다.
그런데 그 때 감정이 부딪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름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리더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던 민석이와 웃음도 많고 아이들과 금세 친해진 준영이가 부딪힌 것이다. 갑자기 민석이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며 소리치기 시작했고, 이에 질세라 준영이도 맞받아 화를 내기 시작했다. 육박전까지는 가지 않았고 그저 목소리만 높여 싸우고 있었기에 우린 어떻게든 둘을 떼어 놓아야만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가장 절친이었던 두 사람이 싸우고 나니 분위기는 순식간에 냉랭해졌다.
갑자기 갈등이 발생한 이유는 친했기에 장난처럼 그냥 했던 말이 민석이에겐 상처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서로 친하기에 말을 거침없이 하기도 한다. 오늘 같은 경우 민석이가 리더인데, 길을 헤맬 경우 “넌 길도 못 찾냐?”라고 준영이가 말했다. 평소엔 일상적인 상황이기에 그냥 장난으로 받아들이며 “뭐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며 맞받아쳤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같은 경우 민석이는 ‘리더를 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고 ‘잘 안내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열심히 지도를 찾으며 안내하고 있는데, 조금 실수했다고 하여 그걸 비난하는 식으로 말을 하니, 그게 못내 섭섭하고 서운하게 느껴졌으리라. 그러다 보니 결국 폭발하게 된 것이다.
5번째 후기에서도 썼다시피, 여행은 삶의 축소판이기에 갈등상황이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 처했다고 자신을 자책할 이유도, 상대방이 문제라고 비난할 이유도 없다. 어찌 보면 ‘신은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는 말처럼 그 사람의 역량을 알아보기 위해 그만한 시련을 주시는 건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렇기에 갈등상황이 생겼을 때, 내가 어떻게 그 상황을 극복해 나가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적극적인 화해 방안을 모색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다. 때론 인위적이지 않도록 감정이 아물 때까지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어색함을 견뎌내는 것도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이 날 민석이와 준영이가 택한 방식은 어색함을 견뎌내며, 감정이 아물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이었다. 나 또한 인위적으로 화해를 하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싶진 않았기에, 그걸 그대로 놔뒀다. 준영이는 그 때부터 달리는 순서를 무시하고 앞질러 가서 어느 일정 지점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식으로 달렸다.
오늘은 상주에 있는 찜질방까지 가야 한다. 그러려면 자전거 길을 달리다가 낙단교를 지나 25번 국도로 달려야 좀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그래서 낙단교에 도착했는데, 준영이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더라. 그래서 민석이가 좀 더 검색해 보니 바로 앞에 낙단보가 있어서 “아마 준영이는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현세는 무척 힘들어 하고 있었기에 리더인 민석이와 재익이와 함께 준영이를 데리러 출발했다. 솔직히 민석이 입장에선 준영이를 데리러 가는 게 어색하고 못마땅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더이기에 아무런 불만도 없이 출발하더라.
낙단보에 도착하니 준영이는 계단에 걸터앉아 전화를 하고 있었다. 민석이는 싸워서 어색하기에 “가자!”라는 말을 못하고 있었고, 이런 어색한 분위기를 싫어하는 재익이도 그냥 가만히 있었다. 서로 보고 있지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민석이와 재익이는 서로의 자전거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으로, 준영이는 전화를 하며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렇게 3분 정도가 흘러, 준영이가 전화를 끊고 내려오며 “현세는?”이라 안부를 물었고 함께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갈등은 있었지만, 오늘은 완전히 순조롭고 달리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던 날이다. 그 때 시간은 오후 5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 때만 해도 미처 몰랐다. 조금 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말이다. 한 치 앞도 모르면서, 우리는 모처럼 영화팀이 완전체가 되었다고 기뻐하며 달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