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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10. 2016

예상치 못한 일을 만나거든, 아즘찮다고 전해라 1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20 - 15.10.5(월)

▲ 10월 5일(월) 대구 달성군 하빈면 → 상주시 / 88.06KM



한치 앞도 모르지만, 나아갈 때가 있다. 아마도 삶이란 바로 그런 걸 거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측하고 싶어 하고 예상하고 싶어 한다. 확률학을 발달시키고, 심리학을 발달시키는 기저에는 바로 미지의 영역을 지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인간의 문명이란 것은 자연 상태로 있을 때보다 예측 가능하도록 바꾸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천재天災를 통제하고 인재人災를 최소화하는 노력이 바로 문명 발달의 척도인 것이다.                




여행은 모르는 상황 속을 받아들이게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상황을 확률에 의해 예측할 수 있고 대처할 수 있다 할지라도, 모든 상황을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가깝게는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조차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즉, 아무리 기술문명이 발달한다 해도, 모든 상황이 내 예상대로만 돌아가는 세상은 결코 올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어린 아이가 세상에 나가 처음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세상이 내 맘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럴 때 좌절을 할 수도 있고, 더 넓은 세상을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을 다잡을 수도 있다. 

우리에게 여행이란 바로 그렇게 내 맘 같지 않은 넓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여행을 하는 도중 가장 큰 난관은 뭐니 뭐니 해도 ‘맘처럼 안 되네’라는 것이다. 그게 동료들과의 관계일 수도 있고, 나의 체력에 대한 것일 수도 있으며, 마주치는 상황일 수도 있다. 어느 것이든 자신이 지녀온 신념이나 가치관이 허물어질 때 비로소 새로운 관점이 열리고, 미지의 세계에 투신할 수 있게 된다.                



▲ 낙단교에 드디어 4명의 단재학교 영화팀 멤버들이 다 모였다.




지도앱이 알려준 대로 국도로 달리다

     

시간은 5시가 되었지만, 이제 겨우 16km만 남았다. 오늘 총 90km 정도를 달리는 가운데 16km만 남았고 아무리 늦어도 두 시간 내에 찜질방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은 가벼웠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나 12km나 국도를 달려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제처럼 갓길이 없어서 달리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한 번 훑어보고 국도로 갈지, 다른 길로 갈지 결정하기로 했다. 국도에 올라서니 여기도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긴 해도, 어제보다 갓길이 넓어 달리기에 편하게 되어 있더라. 더욱이 어젠 해까지 저물어 어둑어둑한 가운데 도로를 달려야 하니 엄청 위험했지만, 지금은 해도 떠있으니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국도를 달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 서서히 해가 저물어 간다. 현세가 위기 상황에선 가장 걱정이 되기에 바짝 붙어서 앞으로 간다.




국도로 함께 달리며 힘을 북돋워주는 동지들

     

아무래도 여기선 달리는 순서에 맞춰 달리긴 힘들다. 그저 안전에만 유의하며 달릴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준영이는 거침없이 달려서 먼저 갔고 가장 걱정이 되는 현세의 뒤에는 내가 바짝 붙어서 간다. 만약의 상황이란 게 있을 수 있기에, 현세에겐 최대한 도로 구석에 붙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민석이나 재익이도 맘껏 달려도 될 텐데, 최대한 대열을 유지하며 가려 노력하더라. 이럴 때 보면 현세를 챙겨주려는 그 마음이 고맙기도 하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달렸나 보다. 아무래도 자전거 길을 달릴 때보다 힘이 더 들 수밖에 없다. 차가 올 때마다 최대한 도로 변으로 붙어서 달려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도로변에는 온갖 쓰레기(도로에 떨어진 나뭇가지나 쓰레기들이 구석으로 몰린 탓이다)들이 있다 보니,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울퉁불퉁 할 수밖에 없다. 서로 힘을 낼 수 있도록 응원해주며 앞으로 나간다.                



▲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영상의 한 장면. 이 떄까지도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여행의 묘미 1 - 현세 자전거의 펑크 

    

국도로 달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여행이 끝난 후 지도로 검색해 보니 3.25km를 달린 것이더라) 갑자기 민석이가 옆으로 오더니, “현세 자전거 뒷바퀴에 펑크가 났어요”라고 알려준다. 국도이긴 해도 바로 옆엔 작은 공터 비슷한 곳이 있었다. 그래서 멀리 가지 않고 그곳에서 펑크를 때우기 위해 멈췄다. 민석이도 재익이도 멈춰 펑크가 다 때워질 때까지 함께 했다. 

펑크가 나긴 했어도 그 당시에 누구도 그게 ‘사건의 시작’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에 모두 다 함께 즐기는 마음으로 “현세가 아무튼 트러블메이커Trouble Maker라니깐”이라고 농담을 하며 놀았던 것이다. 6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그 때까지도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가기에 우리를 비춰주고 있었다. 나 또한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펑크를 여러 번 때워본 경험이 있어 바로 고치고 출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그 순간을 즐기며 신나게 펑크를 때웠고 민석이는 그런 장면을 남겨둬야 한다며 인터뷰를 하며 카메라맨을 자처했다. 민석이가 “지금 소감이 어떠세요?”라고 묻자, 현세는 “아! 놀랍네요. 이런 게 진정한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라고 했고, 나는 “죽을 것 같습니다”라고 승빈이가 지리산 종주를 떠나기 전에 했던 인터뷰 내용을 패러디 했으며, 재익이는 “괜찮습니다. 재밌네요. 건빵이 쩔쩔 매는 모습이 아주 인상 깊어요”라고 했다. 우리가 그 순간을 얼마나 신나게 즐기고 있었는지는 이 인터뷰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린 그 땐 미처 몰랐다.                



▲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영상의 한 장면. 이 땐 이런 정도의 시련은 재밌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느껴질 정도였다




여행의 묘미 2 - 하지만 우린 그 땐 미처 몰랐다    

  

펑크를 때워서 자전거를 다시 조립하고 달릴 준비를 했다. 내심 걱정이 되었던 부분은 펑크를 때울 때 세수 대야에 물을 받아 튜브를 넣어가며 어느 곳이 펑크 났는지 살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저 튜브를 귀에 대고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나는지 체크해 본 후에 펑크를 때워야 하니, 펑크 난 곳을 제대로 체크하기가 힘들었다. 

역시나 무언가 잘못 되었는지, 바람이 빠지기 시작하더라. 그래서 다시 분해를 하여 바람 소리를 들으며 펑크 난 곳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벌써 준영이는 숙소 근처에 도착했나 보다. 언제 오느냐고 전화가 오더라. 우리는 나름 긴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2시간 정도 걸릴 거 같다고 말하며 펑크를 다시 때웠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때우는 건 당연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 곳을 찾아 때우긴 했지만,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 같은 게 어렸다. 처음 펑크를 때울 때에 비하면 더 어두워졌고 그곳엔 가로등 같은 것도 없어서 더는 고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국도에서 내려가 민가 근처에서 ‘대야에 물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고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어느덧 시간은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나 6시 30분이 되었다. 발목이 한 번 잡히니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현세 자전거 뒷바퀴의 펑크만 때우면 됐기에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우린 그 땐 미처 몰랐다. 



▲ 국도 구석에 있는 풀숲에서 펑크를 때운다. 여러 상황을 상상하긴 했지만, 설마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신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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