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16 - 15.10.4(일)
이제 본격적으로 출발하면 된다. 그래도 무분별하게 속도 경쟁을 하거나, 대열을 이탈하여 달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순서를 정했다. ‘현세-민석-준영-재익’이의 순서로 정한 것이다.
민석이와 준영이, 재익이는 기초 체력이 되기 때문에 달리는 데에 문제없다. 하지만 현세는 체력이 좋지 않아 연습으로 달렸던 3번 내내 뒤처졌다. 근데 솔직히 체력이 안 좋다기보다 자전거 타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에 뒤처진다고 보아야 맞다. 왜냐 하면 작년 도보여행 때는 그 누구보다도 잘 걸었고, 한 번도 뒤처진 적은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땐 재익이가 잘 걷지 못해 뒤졌고 짐을 나를 용도로 준비한 자전거를 다기도 했다.
현세는 자전거를 많이 타보지 않아서 타는 것에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어 변속하는 것이 매우 서툴다. 아무리 방법을 알려줘도 기어를 변속하며 달리려 하지 않으니, 힘이 배로 들 수밖에 없어 금방 지치게 된다. 이번 자전거 여행을 통해서는 기어 변속을 몸으로 익히길 바라는 수밖에.
자전거 여행은 지금까지 단재학교 영화팀이 했던 여행 중 가장 긴 시간동안 하는 여행이라 할 수 있다. 2013년에 화엄사에서 천왕봉까지 걸었던 ‘지리산 종주’는 월요일에 시작하여 토요일에 끝난 5박 6일의 여정이었고, 2014년에 양평역에서 충주댐까지 걸었던 ‘남한강 도보여행’은 월요일에 시작하여 금요일에 끝난 4박 5일의 여정이었다. 그에 반해 이번 자전거 여행은 현풍터미널에서 서울올림픽공원까지 달리는 것으로 일요일에 시작하여 토요일에 끝나는 6박 7일의 대장정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앞의 두 여행은 마지막 날 하루 전엔 펜션에 도착하여 ‘해냈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축하파티를 하고 마지막 날엔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 되었지만, 이번 여행은 마지막 날까지 성취의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달려야만 한다.
처음엔 여느 여행처럼 집에서 출발하여 다시 집으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일정으로 짰으나, 이후에 바뀌었다. 이렇게 바뀌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김민석이다. 이유는 딱 하나, 버스를 돌아오는 것보다 훨씬 집에 빨리 도착하기 때문이다. 민석이가 집에 빨리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노코멘트! (예의 상 엄마가 보고 싶어서라고 얘기해주자~)
그렇게 여론을 조성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여행home run’을 하게 됐지만, 막상 여행을 떠나려 하니 맘이 바뀌었는지 “이번에도 차라리 집에서 출발하는 여행을 할 걸 그랬어요. 그래야 어느 곳에 도착했다는 성취감도 느껴지고 뭔가 제대로 끝났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예요”라고 말하더라.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집에서 떠나는 여행이든, 집으로 돌아가는 여행이든 장단점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집으로 돌아가는 여행은 처음 하는 것이기에 기대가 되었으며, 마지막 날 올림픽공원에서 ‘깜짝 이벤트’가 있기 때문에 그게 어떤 감동을 자아낼지 설레였다.
낙동강을 따라 달성보를 지나 코스모스가 흐드러진 길을 달린다. 하늘은 높고 파랬으며 낙동강은 녹색물결(녹조라떼?)을 이루며 흘러간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라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역시 반팔과 반바지를 여행의 기본 복장으로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며 흐뭇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전까지는 정말 정신이 없었다. 부랴부랴 동서울터미널에 아이들과 함께 가랴, 현세를 찾으랴, 자전거를 수리하랴, 낙동강 자전거 길을 찾으랴 첩첩산중疊疊山中이란 표현이 딱 맞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혼이 빠지고 넋이 빠져 있다가 몸을 움직여 달리기 시작했니 정신이 돌아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달성보를 지나 강정고령보를 지났는데, 그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두발전동휠을 타거나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아~ 맞다! 오늘은 일요일이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 곁에 휴일부터 대장정에 오른 우리들이 달리고 있었다.
오늘은 36Km만 달리면 되지만, 아무래도 늦게 출발한 만큼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 현세는 자꾸 뒤처지더라. 엄청 힘이 드는 지 말수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오늘은 별도의 리더가 정해져 있지 않음에도 민석이가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찾으며 길을 안내해줘서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찜질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자전거 도로를 타다가 국도를 달려야 한다. 문제는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다는 것과, 국도엔 차량 통행량이 많을뿐더러 차들의 속도도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곳에서 여차하면 쥐포가 되기 십상이겠더라. 하지만 국도를 6.3Km를 달려야 찜질방에 갈 수 있기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안전에 유의하여 발목에는 야광밴드를 차고 갓길로 조심해서 달려야 했다.
이미 시간은 6시가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맹렬히 달려오는 차들의 무서움, 찜질방에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는 불안, 어두워지는 만큼 서늘해져가는 기온이란 삼중고가 우리를 짓누른다. 불안한 마음은 두려움을 키우고, 두려워질수록 삶의 비극은 짙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순 없기에 페달을 밟을 뿐이다.
그 때 한 가닥 희망의 불빛이 우리를 맞이했다. 바로 편의점 불빛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왠지 사막 한 가운데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이, ‘살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희망의 불빛이었다. 편의점 근처에 도착하여 둘러보니, 바로 옆에 중화요리집이 있더라. 그래서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그곳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탕수육과 짜장면을 먹고 있으니, 금방 전까지 어렸던 불안의 그림자는 햇볕에 노출된 이슬처럼 사라진지 오래였다.
저녁을 먹고 편의점에서는 간식을 사서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거의 죽어가던(전문용어로 ‘넋이라도 있고 없고’) 현세는 언제 그랬냐 싶게 완벽하게 살아났다. 평소 같으면 어떤 침묵이 흐르는 상황, 진지한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옆에 와서 시답잖은 농담을 하거나, ‘데헷’, ‘부엉이’이 같은 쓰잘데기 없는 말을 하며 분위기를 전환시키려 한다. 그런데 이 날 오후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이 힘드니, 그런 것들을 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간식을 먹으며 원기를 회복하니, 원래의 현세로 돌아와서 장난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 현세뿐인가? 아이들도 기분 전환이 되었는지 함께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준영이는 빵에 묻은 크림인 것처럼 속여 담배를 빵에 올려 “친구야 이 빵 좀 먹어”라며 재익이와 민석이에게 건네주기도 했고, 민석이가 화려한 농담 세트를 준영이에게 선물해주고 도망가자,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던 준영이는 민석이를 잡으러 쫓아가며 ‘나 잡아봐라’ 식의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활기를 되찾으니, 같은 어두운 밤인데 아까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그럼 이쯤에서 이렇게 정리하는 건 어떨까? ‘삶이 고단하다고 느껴지십니까? 뭔가 비관적인 생각만 가득하십니까? 그럴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금 당장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보세요. 1544-82먹어! 1544-82먹어! 지금 당장 실험해보세요’라고 말이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찜질방에 도착할 수 있다. 어둠은 이미 내려앉은 지 오래지만, 목적지가 코 앞이었기에 조금 더 힘을 냈다.
그런데 그 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편의점 근처엔 성주대교라는 다리가 있고 그걸 건너야만 찜질방으로 갈 수 있는데, 글쎄 사람이 건널 수 있는 보행로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자전거로 건너기엔 몹시 위험했다.
이쯤 되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생명이 먼저인가? 돈이 먼저인가? 우린 도전을 하러 온 것이지, 목숨을 내걸러 온 것이 아니기에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주위를 살펴보니 모텔이 눈에 들어오더라. 인적도 드문 이런 곳에 모텔이 있다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이 날은 모텔에서 묵기로 하고 돌아왔다.
이래저래 계획이 바뀌고 상황에 따라 다양한 것들이 연출된 하루였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왔기에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었고, 처음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것이라 뭐든 미숙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고가 나지 않았고, 누구 하나 다친 사람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여행에서 계획이 변경되고, 목적지가 바뀌며, 서로 갈등이 생기고, 싸우게 되는 일이 생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아무래도 서로 자라온 배경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에 여행을 하는 동안 그런 부분들이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감정의 미묘한 부딪힘에다가 여러 날 여행을 하며 체력저하로 인한 힘듦까지 겹치면 자신의 감정을 더욱 컨트롤하기 힘들어진다. 그럴 때 작은 스트레스는 커지며, 작은 갈등은 확대되어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계획이 틀어지는 건 어떤가? 계획이란 기초적인 자료를 토대로 사고실험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현실에선 여러 제약이나 이변들이 발생하기에 계획은 끊임없이 수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찌 보면 여행이 삶의 축소판이라 할 때 그런 경험을 하며 그걸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여행의 묘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을 하는 동안 수많은 상황에 부딪히고 갈등상황에 휩싸이며 나의 밑바닥까지 자연스럽게 내보이는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사고가 나서 누군가 크게 다치는 일만 아니라면, 계획이 바뀌건 의견 충돌로 다툼이 발생하건, 뭐든 괜찮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첫 날 저녁 늦게까지 달리며 삶의 어떤 비극, 또는 예상치 못한 비관 같은 것을 맛본 경험이 남은 6일간의 여행을 더욱 단단하게 지탱해줄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힘듦은 그 순간엔 힘듦이지만, 그걸 넘어서는 순간 힘듦을 견뎌낼 수 있는 내성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