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40 - 15.10.10(토)
드디어 마지막 날 자전거 여행의 준비는 끝났다. 이제부턴 하늘에서 내리는 비의 축하 팡파레를 들으며 우리의 최종목적지를 향해 신나게 달리면 된다.
비든 눈이든, 제대로 즐길 각오로 떠나지 않으면 그런 것들은 방해물이 될 뿐이다. 어떻게 하면 비를 적게 맞을까, 어떻게 하면 바람을 피할까만 생각하다 보니, 오히려 정작 보아야 할 것 보지 못하고, 느껴야 할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국토종단을 할 때 목포에서 무안까지 걸어가며 비를 쫄딱 맞고 갔는데, 오히려 젖어도 된다는 각오로 걸으니 묘한 해방감마저 들더라. 그 뿐인가 작년 변산반도여행 때도 비와 바람을 맞아도 된다고 생각하며 격포로 걸어가니 낭만적인 분위기에 흥분이 일 정도였다.
결국 그 상황에 빠져들 수 있느냐, 걱정만 있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감정도 달려진다고 할 수 있다. 그 순간에 깊이 잠길 수만 있다면 그 순간은 어떤 상황을 막론하고 최고의 순간이 되지만, 그러지 못하면 최악의 순간이 되고 만다. 이 때도 비를 신경 쓰고 자전거가 녹슬지나 않을까 신경 쓰기 시작하면 걱정만 한 가득 남는 불행한 시간으로 느껴지지만, ‘이미 젖을 대로 젖었으니 그냥 달리련다’고 상황에 몸을 던질 수 있다면 그 순간은 그대로 나에게 선물로 다가올 것이다.
우려했던 상황은 빗길에서 넘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우리가 달리는 길은 자전거 전용도로라 자동차와 부딪힌다던지, 다른 것과 부딪혀 크게 다칠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빗길을 달리는 것이라 미끄럽긴 했다. 그나마 준영이와 내 자전거처럼 바퀴가 두꺼운 자전거는 안정성이 확보되지만, 로드 자전거처럼 바퀴가 얇은 경우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팔당댐 근처에선 재익이가 넘어졌고, 성내천 부근에선 현세가 넘어졌다.
재익이는 턱에 걸리며 미끄러져 넘어졌다. 그 때문에 머리를 살짝 부딪쳐 약간 피가 나긴 했다. 괜찮은지 재익이에게 물어보니, 잠시 동안 앉아 있다가 일어서며 “괜찮으니, 갑시다”라고 쿨하게 말하더라. 저번 예행연습 때는 넘어지고 나서 불평을 늘어놨는데, 그때와 지금의 대처는 확연히 달랐다. 여행이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한다면, 이 모습에서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한층 듬직해졌으니 말이다. 현세는 방향을 꺾다가 미끄러져 넘어졌다. 그나마 저속일 때 넘어져 약간 타박상만 입었기에 잠시 그 자리에 쉰 다음에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팔당대교를 건너니 언제 비가 왔냐 싶게 비는 그치고 하늘은 맑게 개기 시작한다. 구름이 낀 하늘엔 간혹 해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기도 했는데 그 광경은 태초의 신비를 간직한 듯 보였다.
팔당대교를 건너면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길이 나온다. 거기까진 정말 많이 오고 가고 했던 곳이다. 여기에 이르니, 목적지가 코앞에 있다는 게 느껴지며 설레기 시작한다. 구리암사대교를 지나니 저 멀리 제2롯데월드가 보이며, 그 설렘은 어느새 흥분으로 바뀌었다. 성내천을 지나 올림픽공원에 들어서니, 뿌듯한 마음이 감돌며 얼핏 눈물이 나올 것도 같더라. ‘이곳에 오기 위해 그토록 6박7일 동안 생고생을 했다’는 울분과 함께 ‘우리는 결국 해냈다’는 벅찬 감동이 느껴지니 말이다.
그런 식으로 최종 목적지인 ‘평화의 문’에 가까이 가면 가까이 갈수록 감정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다. 절로 웃음이 나고 그 순간 4명의 아이들이 그렇게 대단해보이고 멋있어 보일 수가 없으며, 이 순간을 함께 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역시나 자전거를 타고 이곳까지 오길 정말 잘했다.
9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올림픽공원엔 사람들이 많더라. 이 때는 ‘한성백제문화제’ 기간이기에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행사를 보러 온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미 이곳에 오면서 어머니들이 평화의 문에 모여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래서 평화의 문 바로 아래에 계실 줄 알았는데, 저 앞쪽 몽촌토성역 쪽에 계시더라.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평화의 문을 지나 앞 쪽으로 서서히 달려간다. 아이들은 앞에 무엇이 있는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앞으로 나간다. 그러자 저 멀리 계시던 어머니들도 우리를 봤고 우리 쪽으로 걸어오시기 시작한다. 아이들도 처음엔 전혀 눈치 채지 못하다가 한 무리의 여성팬(?)들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며 환호와 박수를 쳐주자 눈치를 채며 반갑게 맞이한다. 이런 식으로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완벽하게 축하해줄 수 있는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축복임에 틀림없다. 어머님들은 지금 이 순간에 자식이 얼마나 자랑스러우실 거며, 아이들은 엄마 앞에서 얼마나 자부심이 느껴지며 떳떳할까.
이건 누가 뭐라 해도 최고의 선물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위해 기다리고, 축하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아이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며, 충분히 축하를 받아도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가 살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받을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대치를 충족한다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했다’는 공감대가 모두에게 있기에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반갑게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문을 통과하여 박수갈채를 받는 장군처럼 득의양양하게 자부심 가득한 모습으로 엄마 앞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우린 6박 7일 간의 여행을 통해 삶을 충실히 누렸다. 누구에게나 24시간이 똑같이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똑같이 보낸다고는 할 수 없다. 양적으로 주어진 시간은 같지만, 어떻게 삶을 사느냐에 따라 질적으로 누리는 시간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6박 7일의 기간을 생각해본다면, 감히 ‘질적으로 알찬 시간을 보냈노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자신에게 언제고 힘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물론 지금 당장 ‘깨달음’을 주거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식으로 ‘변화’를 주진 않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아 힘들 땐 버틸 수 있는 힘으로, 뭔가를 할 땐 해나갈 수 있는 추진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자전거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우리끼리의 작당(?)으로 시작되었지만, 끝은 엄마와 함께 기쁨을 나누며 끝났다. 늘 그럴 순 없겠지만 지금처럼 중요한 순간에 함께 응원해주고 기뻐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지금처럼 이렇게 감격스러워 할 수 있는 순간들이 많다면 얼마나 좋을까. 분명한 건 삶을 누려본 사람만이 그런 감격을, 함께 누리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자전거 여행은 이렇게 자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끝이 났다.
이제 마지막 여행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닫는 글은 여는 글에서 얘기했던 내용을 정리하며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기를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