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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09. 2016

급조된 사육신 퀴즈와 아이들의 명답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18 - 15.10.5(월)

▲ 10월 5일(월) 대구 달성군 하빈면 → 상주시 / 88.06KM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미션이 시작된다. 미션을 하기 위해 들려야 할 곳은 ‘육신사’다. 사육신묘는 서울 노량진에 있지만, 대구엔 그들을 기리는 사당이 마련되어 있다.                



▲ 육신사를 향해 간다.




미션 장소를 정하는 기준  

   

2009년에 홀로 도보여행을 했었다. 그땐 목포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걸어가는 것이 목표였다. 4주 정도를 걸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고 좋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끝나고 나니 한 가지가 아쉽더라. 그건 다름 아닌, 시작점과 끝점만 정해져 있다 보니, 중간에 들르는 곳들은 그저 끝점으로 가기 위해 거쳐가는 길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간 중간 거치는 곳 중 가볼만한 곳이 있었음에도, 최대한 빨리 고성까지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맹렬히 걷기만 했다. 그러니 여행이 끝나고 남는 감상이라곤, ‘목포에서 고성까지 걸었지’하는 정도 밖에 없더라. 그래서 그 때 ‘다음에 다시 여행을 한다면, 중간 중간 가볼만한 곳을 들러야지’라고 생각했다.

자전거 여행도 어찌 보면 시작점과 끝점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지만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게 된다(셋째 날 문경새재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분이 이런 케이스다. 그 분은 하루 만에 인천에서부터 문경새재까지 달려왔단다). 분명히 여행이란 ‘그 순간을 즐기자’는 마음으로 시작함에도, 여행 도중엔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자’는 마음으로 바뀌기 십상이다. 그래서 미션을 하기 위해서든, 아니면 여행을 여행답게 하기 위해서든 달리는 것에만 주안점을 두지 않고 중요한 곳을 들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전거 길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을 찾아갈 수는 없었다. 자전거길이야 안전하지만, 일반도로로 나가면 사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션을 할 만한 곳이면서, 들러야 할 곳을 찾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요소는 ‘자전거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검색해보니, ‘육신사’가 보였던 것이다. ‘육신사’가 미션 장소로 정해진 이유는 ‘사육신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원대한 계획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자전거 길에서 가깝기 때문이었다.                



▲ 육신사는 낙동강변에 위치해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기에 좋다.




미리 민석이 스마트폰을 기리며, 넌 할 만큼 했다!

     

육신사까지 가는 길은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숙소에서 나와 자전거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스마트폰 지도에 표시가 되어 있지만, 좀 헛갈릴 수 있도록 표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늘의 리더인 민석이가 지도앱을 통해 길을 찾는데, 자꾸만 우리의 위치를 이상한 곳으로 알려주더라. 부안 여행 때 민석이 스마트폰에 대한 예찬론은 편 적이 있었다. 여러 번 심하게 떨어뜨렸음에도 멀쩡히 작동이 되는 기염을 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러 번 자유낙하를 반복되다 보니(그것도 급강하 낙하), 내부기판에선 조금씩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GPS 이상이다. 우리는 자전거 길 한 복판을 달리고 있는데, 물 위를 달리는 것처럼 표시되는 식으로 약간의 오차가 생겼다. 그런 상황이니 초반에 민석이는 길을 많이 헤맬 수밖에 없었다. 오차를 늘 염두에 두며 길을 찾아야 하니, 더 헤매게 됐던 것이다.               



▲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영상의 한 장면. '충절문'을 지나가지만 아이들은 이 문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미션 3 - 급조된 사육신 관련 퀴즈

     

어찌 되었든 순조롭게(?) 육신사에 도착했다. 조금 헤맸다고 해봐야 10분 정도의 시간차이만 날 뿐이었다.

이곳의 미션은 ‘사육신을 소재로 영화 만들기’이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사육신에 대한 내용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물론 『관상』이란 영화를 통해 어떤 역사적인 맥락인지 알게 됐지만, 제대로 정리해본 적이 없으니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김민석의 관상 후기보기).

그런데 불행히도 월요일엔 모든 전시관이 문을 닫듯, 이곳도 문을 닫아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강의식으로 알려주는 것도 따분하게 느껴질 것 같아 ‘사육신’에 관련된 내용을 퀴즈로 만들어 즉석에서 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도 기초적인 내용을 공부해 온 게 아니기에, 영화만 보아도 내용을 떠올릴 수 있도록 주요 사실만으로 문제를 냈다.



▲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영상의 한 장면. 드디어 육신사에 도착했다.



첫째 문제는 “사육신이 복위 운동을 펼친 왕의 시호는?”이다. 현세는 의기양양하게 정답이란 확신하며 큰소리로 외친다. “문종!” 순간 정적이 흐르고 그 옆에 있던 재익이가 한심하다는 듯한 말투로 “단종이지~”라고 말한다. 아마도 현세는 문이라는 글자가 지닌 이미지 중에 ‘문약하다’는 것도 있기 때문에 그런 연상 작용으로 그와 같이 말한 게 아닐까?

세종은 강력한 왕권으로 조선 초기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지만, 그게 아들인 문종에겐 부담이 되었다. 문종이 세종처럼 사대부를 압도할 수 있다면 오죽 좋겠냐 만은, 문종은 병약했다. 그렇기에 즉위한지 2년 만에 죽고 그의 아들 단종이 12살의 나이로 즉위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권력을 탐하는 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일 수밖에 없었다.



▲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영상의 한 장면. 호기롭게 '문종'을 외친 현세.



둘째 문제는 “수양대군과 대립각을 세운 사람의 이름은?”이다. 아이들은 ‘단종-수양대군’의 대립각은 알아도, 실질적으로 대립각을 세운 인물까지 알기는 힘들었다. 물론 『관상』을 유심히 봤다면, 쉬운 문제지만 말이다. 재익이는 뭔가 생각난 듯 외친다. “호랑이!” 이건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일까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재익이는 영화를 통해 역사를 배웠기에, 영화에 묘사된 ‘호랑이상, 이리상’ 따위가 생각나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게 민석이에겐 좋은 힌트가 되었나 보다. 곧바로 “안평대군!”이라고 외쳤으니 말이다. 오호 역시 민석이의 명석함을 보여주는 대답이다.

솔직히 수양대군은 화끈한 기질로 사람들을 어르고 데리고 다니며 소위 양아치짓을 서슴지 않았던 반면에, 그의 동생 안평대군은 문장과 그림을 좋아하는 학자적인 기질로 이미 사대부들과 두루두루 친교를 맺고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수양대군보다 더 왕위를 찬탈하기 쉬운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양대군과 대립각을 세운 인물로 ‘안평대군’이라 해도 잘못된 답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영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실질적인 실력자를 말해야만 정답으로 인정된다. 그러자 재익이가 뭔가 스쳤는지 설단현상Tip of the tongue을 보이며 “김~~~종~~~~~”이라 외쳤고, 현세는 어부지리로 그걸 낚아채며 “김종서!”라고 정답을 말했다. 이로써 ‘문종’으로 실추된 자존심을 ‘김종서’로 회복하는 ‘역전의 명수’다운 뒷심을 발휘했다.



▲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영상의 한 장면. [관상]은 이리상 수양과 호랑이상 김종서의 대결로 그린다.



셋째는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주도한 주요 인물은?”이다. ‘아니, 수양대군만 알면 됐지, 그 밑의 하수인까지 알아야 된다는 말인가?’라는 불만이 나올 정도로 아이들은 백지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역사상식이 풍부한 재익이는 “그 목 삔 새X가 있잖아요”라고 단서를 집어냈다. 그러더니 “한성희.... 한희성(답이 왠지 어떤 컴퓨터 브랜드를 말하는 거 같으다~~ 쩝!)”이라 외친다. 분명히 무언가 떠오르긴 했지만, 명확하지 않은 거였다. 그럼에도 답이 나오지 않자, “한강변에 압구정이란 정자를 지은 대세가가 있다고 했잖아”라고 힌트를 줬다. 그 힌트를 듣고 무언가 번쩍 떠올랐는지 민석이가 “한명회!”라고 외치더라.

한명회는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권력의 중심에 오를 수 있었으며, 세조부터 3명의 왕을 모시며 권력을 달콤함을 누렸다. 그가 지은 정자에 명나라 사신인 예겸이 ‘압구정’이란 이름을 지어줬으며, 성종은 시까지 지어 내려줄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권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히 알만 하다.



▲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영상의 한 장면. '압구정'은 지금은 핫플레이스지만, 조선시대엔 권력을 나타내주는 상징적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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