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28 - 15.10.7(수)
이화령 정상에서 미션을 하고 싶었다. 이화령은 한민족의 대줄기인 백두대간 중 한 곳이기 때문에, 그 영험한 기운을 받아 할 수 있는 미션을 구상하고 있었다.
문경새재는 영남과 한양을 잇는 주요 길목으로 영남선비들이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선 이 고개를 넘어야 했었다. 그런데 근대 이후 도로가 발달할 때 그나마 낮은 산이었던 이화령에 길을 만들어 문경새재보다 더 사람들이 자주 다니게 되었다고 하더라.
그런 내용을 알고 보니, 소통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 전에 어머님들에게 “이번 여행 중 아이들이 했으면 하는 미션이 있으면 알려주세요.”라고 문자를 보내니, 민석이 어머니께서 “부모에게 이번 여행에서 느낀 특별한 점 셀프 비디오 찍어 보내기. 별로 좋아하진 않겠지만요~~~”라고 답장을 보내주셨다. 그렇다면 ‘다른 어떤 장소보다 이화령 정상에서 이 미션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이 바라신 대로, 어찌 보면 자식의 진솔한 마음을 담아 이화령의 정기와 풍경과 함께 담아 전해드릴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할 때 가장 강조하는 게 있다. 그건 다른 무엇보다도 “자식과 감정의 벽이 쌓여 있지 않아 편하게 대화가 될 때, 자주 대화해주세요”라고 말이다.
부모, 자식 간엔 미묘한 감정이 섞여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까지는 대화를 하려 하지만, 막힌다 싶으면, 안 된다 싶으면 아예 말문을 닫게 되어 있다. 보통 다른 관계는 그런 상황에 놓이더라도 다른 주제를 이야기한다거나,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 노력해보지만, 이상하게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선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건 ‘부모님은 내 마음을 알거야’라는 기본적인 믿음이 있는데, 그게 현실에서 깨지면서 극도로 실망한 나머지 마음의 벽을 쌓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럴 때 자식이 할 수 있는 의사표현은 화를 낸다거나, 욕을 한다거나, 아무 말도 안 한다거나 하는 정도의 일방적인 방법들뿐이다.
그래서 그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았다면, 부모의 욕망은 내려놓고, 자식에 대한 ‘완벽한 상’은 접어두고, 지금 눈앞에 보이는 자식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한 상태로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된다. 그럴 때 자식도 부모와 대화를 하며 감정의 벽을 쌓고 아예 대화를 차단하는 상황까지 가지 않으며, 부모들도 ‘그럼에도 나름 이야기하려 노력하는 구나’라는 믿음이 생기니 말이다.
지금 내 아이가 조금 말썽을 피우고, 학교 성적도 좋지 않으며, 공부 외에 딴 데 정신을 팔고 다닐 지라도, 부모와 격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면 마음 놓으셔도 된다. 그 아이에겐 불만이나 세상에 대한 거부감은 없이, 그저 해맑은 정신만 있기 때문이다. 그걸 부모로서, 교사로서, 어른으로서 잘 지켜주고 인정해주면 그 아이는 언제든 날개를 펴고 날갯짓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미션은 ‘부모님에게 영상편지 쓰기’로 정했다. 민석 어머님이 좋은 소재를 줬고, 이화령의 광활한 풍경이 번뜩이는 진심을 줬다. 그러니 아이들이 잘 버무려서 그걸 담아내면 된다. 과연 어떤 영상이 만들어질까?
작년 남한강 도보여행 때도 편지 미션을 진행했다. 그 때 아이들에게 “비내교차로 부근에 어머님들이 친히 행차하셔서, 선물을 묻고 가셨어”라고 운을 뗐었다. 그랬더니 일순간에 아이들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며 잔뜩 기대하는 눈초로 바뀌더라. 몇 가지 힌트를 던져주며 찾게 했더니, 쏜살 같이 달려 찾기 시작한다. 결국 4번째 힌트까지 듣고서야 찾을 수 있었는데, 그건 아이들이 생각하는 상품권 같은 선물이 아닌 ‘부모님의 정성스런 편지’였다고 하더라. 아이들은 금방 전까지의 해맑은 표정은 사라지고, 실망 가득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롤 등급 강등 당한 아이에게 “게임 그만하고 공부해라”라고 채근하는 것처럼 “이번 미션은 부모님께 답장을 써 드리는 것입니다”라고 했으니, 아이들의 넋은 있고 없고 할 수밖에 없었다.
억지스런 감동을 쥐어짜는 듯한 연출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군대에서 몸이 가장 고될 때, “엄마가 보고플 때♬♬~”라는 노래를 부르게 해서 힘들어서 그저 나던 눈물을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착각하게 만들거나, 캠프파이어를 하며 부모님께 편지를 쓰게 하는 등등의 연출 등이 그렇다. 그렇다고 진정 뜨거운 마음이 샘솟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든 억지감동을 만들어야 하니 말이다.
실제로 편지 쓰기 미션을 받고 아이들이 보인 반응은 ‘당혹스러움’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편안한 여행도 아니고 계속 걸어야 하는 힘든 여행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감정까지 혹사해야 되니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죠’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인터뷰할 때, 민석이는 “부모님이 편지를 쓰셨는데, 거기에 어떤 식으로 답장을 써야 해요. 그냥 ‘그러셨어요~’라고 답장을 보낼 수도 없고. 부모님이 너무 구구절절 말씀하셔 가지고, 답장을 쓰기가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엄마 사랑해요’라고 적지 않았나 싶어요”라고 말하며 연출된 상황이 얼마나 힘든지를 표현했다.
그래서 이번엔 글로 써야 하는 게 아닌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감정적인 부분을 표현해야 한다는 어색함은 있지만, 그래도 글로 쓸 때보다 훨씬 편하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에게 만약 이런 미션이 주어졌다면, 카메라 구도는 어떻게 할지, 어떤 말을 할지 고민을 할 것이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해도 되는 이야기도 어떻게든 생각을 다듬어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바로 달려들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그 영상은 한결 긴장되고 무거운 영상이 될 것은 뻔하다. 그건 그냥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지 못하는 나의 심리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놀이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솔직히 진지하지 않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걸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건강하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듯 한 명 한 명 달려들어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민석이는 몇 번이고 되풀이 하여 찍었고 재익이는 한 번 재촬영을 했으며, 현세와 준영이는 한 번에 바로 찍었다. 구구절절하지만 그렇다고 판에 박힌 말만 하지도 않았다.
현세는 말을 하다가 말문이 막혔는지, “할 말 없으니까, 키워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하여 한바탕 웃음을 줬고, 재익이는 엄마랑 같이 다시 이화령에 오고 싶다는 말로 ‘저 녀석이 저런 말도 다 하네.’라는 감동을 안겨줬으나 곧바로 “물론, 차 타고!”라는 반전으로 넋을 빼놓았으며, 준영이는 “엄마 아빠 안녕! 집에 가서 봐~ 빠빠~”라며 하이쿠 같은 간단의 미학을 보여줬고, 민석이는 일반적인 영상 편지 형식을 따라가며 ‘저 녀석이 웬일로 진지하게 하지?’라고 의문스러워할 즈음에 “특히나 엄마 밥이 맛있다고 느껴질지 꿈에도 몰랐어요”라는 깨알 같은 디스정신dis spirit을 잊지 않았아 배를 잡고 구르게 만들었다.
아이들에겐 영상 찍는 미션이 어떤 진지하고 무겁고 어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그런 놀이정신을 나는 사랑한다. 그리고 놀이정신 그 가운데에, 진심도 열정도 함께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미션까지 완료했으니 이젠 이화령 고개를 내려가면 된다. 자전거의 좋은 점은 내려갈 땐 속도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으며,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쾌감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올라올 때 힘들었던 만큼 내려갈 땐 완전 짜릿했다. ‘티 익스프레스’의 최고 속도는 100km가 넘는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위적인 속도이며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기에 무섭긴 하되 정신은 없다. 하지만 다운힐 라이딩의 최고속도는 60km지만 모든 걸 내가 컨트롤할 수 있기에 무서움보단 짜릿함이 느껴진다.
올라갈 땐 50분 정도가 걸렸는데, 내려올 땐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행촌교차로 인증센터가 보여 아이들은 그곳에 인증도장을 찍으러 갔고, 나는 잠시 짐을 정리하기 위해 가방을 풀었다. 그 때 확인해 보니, 펑크패치용 본드가 공구가방에 흘러 굳은 상태더라. 월요일에 펑크를 늦은 저녁까지 때웠었는데, 그 때 뚜껑을 잘 닫지 않고 넣었었나 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걸 버려야 했다. 그 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설마 이제 여행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데, 펑크가 나겠어’라는 생각과, ‘오늘은 충주 시내로 들어가니 자전거점에서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때 잠시 스쳤던 생각이고, 곧 다시 달리게 되면서 ‘본드가 없다’는 사실은 감쪽같이 잊고 말았다. 하지만 그 별 것 아닌 것 같은 사건이 다음 날 엄청난 일을 불러일으키게 되니, 삶은 그래서 모르는 거란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늘 준비해야 한다’는 판에 박힌 결론은 내리고 싶지 않다. 누구든 그 일을 경험하고 싶어 경험하는 경우는 별로 없지 않은가. 단지 어떤 일이든 내 예상과 다르게 겪을 수밖에 없고, 그걸 극복해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 순간에 주위의 사람들과 그걸 얼마나 잘 극복해 나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차라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밍밍한 여행이 되어 아무 기억도 없는 것보다 그런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간 기억이 있는 게 훨씬 여행의 의미에 맞다고 할 수 있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5일차 3번째 여행기에서 보기로 하자.
이제 다시 소조령이라는 산을 올라야 한다. 다시 이를 악물고 저속기어로 바꾼 후 페달을 밝는다. 어느덧 우린 영남지방을 벗어나 충청도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