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 중원폭포 여행 5
기상청에 따르면 비는 내일 새벽부터 내린다고 하던데, 하늘은 벌써부터 흐릿흐릿하여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만 같다.
아이들은 도착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로 씻었다. 그리고 나오는 족족 약속이나 한 듯이 쇼파에 달려와 차례차례 앉아, 자연스럽게 텔레비전 리모컨을 잡고 채널을 훑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이게 예전과 달라진 광경이다. 예전엔 채널을 넘길 필요도 없이 게임채널을 켜고 당연하다는 듯 ‘롤 중계’를 봤었는데, 최근엔 ‘오버워치’라는 다른 게임에 푹 빠지기도 했고 3년 내내 롤만 하다 보니, 관심도 예전만 못하다. 그래서 『동네변호사 조들호』, 『닥터스』를 조금씩 보며 채널을 수시로 바꾼다.
어느덧 어둠이 찾아왔다. 살짝살짝 빗방울이 떨어지긴 하지만, 아직은 많이 내리진 않는다. 주인아저씨는 숯불을 두 군데에 붙여줬다. 지금까진 하나의 숯불로만 구웠기에 잘 몰랐지만, 막상 두 군데서 굽다보니 고기 굽는 속도도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할 수가 있어서 좋더라.
이번 고기파티에서 관심 있게 보고 싶은 부분은 뭐니 뭐니 해도 ‘고기를 아이들이 구우려 할까?’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고기를 굽는 일은 교사의 일이었다. 물론 때때로 ‘고기를 굽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아이가 나와 도와준 적은 있어도, 그 외엔 교사가 했던 것이다. 물론 이건 학교여행 때 그렇다는 것이고, 영화팀에서 지리산 종주를 했을 때나 남한강 도보여행을 했을 때는 민석이가 도맡아서 목살을 맛있게 구워줬었다. 이걸 보면, 상황에 따라 아이들도 자신의 일처럼 하려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올해 1학기에 떠난 남이섬 여행 때는 지금까지와는 매우 다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여태껏 이런 광경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기에, 그 때는 정말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그 광경을 보게 됐으니, 이것이야말로 ‘교사된 행복’이 아닐까 싶다. 그땐 불도 손수 우리가 붙인 다음에 구워야 했는데, 거실에서 놀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기 때문이다. 불을 붙일 때는 누가 더 부채질을 잘 하나 경쟁을 하기도 했고, 고기를 굽고 나르는 일도 아이들이 손수 했다. 그 덕분에 나는 편안하게 식탁에 앉아 느긋이 고기파티를 즐길 수 있었고, 배불리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물론 이때 고기를 굽던 민석이는 고기를 거의 못 먹었다는 것이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바로 이 광경이야말로 1학기 전체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고, 이번 여행에서 어떻게 아이들이 반응할지 기대하게 만든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원랜 6시 30분부터 고기를 굽고 파티를 하려 했는데, 빨리 숯불을 만들어주셔서 시간이 앞당겨졌다.
그래서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식탁이 있는 곳을 나간 것이다. 이미 한쪽에선 승태쌤이 고기를 굽고 있었으며, 다른 쪽은 성민이가 맡아서 굽고 있었다. 거실에서 놀다가 나간 아이들은 그런 상황을 보고 자연히 고기를 굽는 사람 곁에 달라붙어, 잡담도 하며 바통 터치를 할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모두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뿐, 고기를 굽던지 말던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민석이가 성민이 옆에 있기에, 이번에도 민석이가 고기를 구우려나 보다 생각했는데, 마카로니를 구워 먹기 위해 서 있는 거더라. 확실히 1학기 여행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보다 못해 “성민이만 고기를 굽고 있으니, 누군가 교대를 해줘”라고 말을 했다. 그건 ‘1학기 여행처럼 함께 고기를 굽도록 하자’는 뜻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에도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현세만 반응을 보이더라. 결국 성민이 다음엔 현세가 이어받아 조금 고기를 구운 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기에 내가 구울 수밖에 없었다.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이 상황이 매우 아쉽게 느껴졌다. 함께 돌아가며 고기를 굽고, 같이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이들은 “지금 익은 고기들을 바로 먹지 않으면 식을 텐데, 그러면 맛이 없어져요”라는 말을 하며 당장 먹기만을 바랄 뿐이고, 다른 것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으니 말이다.
역시 두 군데서 고기를 구우니, 고기를 굽는 속도는 엄청 빠르더라. 그와 비례하여 고기는 ‘스마트폰 건빵 눈에 보이지 않게 감추듯(학교에서 건빵이 스마트폰을 압수하는 역할을 하기에)’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흔히 중고등학생 시기를 ‘돌도 씹어 먹을 정도로 소화력이 왕성한 시기’라고 하는데, 계곡에서 신나게 놀다왔기 때문인지 고기가 사라지는 속도는 우사인볼트급이었다. 더욱이 아이들은 고기만 좋아하다 보니, 채소 따위엔 눈길도 주지 않고, 오로지 고기에만 젓가락질을 집중하는 신공을 발휘했다.
식구食口라는 말은 ‘함께 밥을 먹는 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예전엔 적어도 저녁 식사만큼은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먹곤 했다. 물론 그 자리에서 나오는 말(“요즘 성적이 어떠니?”, “밥 먹는데 깨잘깨잘 먹지 마라”, “누가 밥 먹는데 얘기하냐”)이 유쾌하거나, 가족의 화목을 도모할 수 있는 말만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함께 밥을 먹으며 무의식중에 ‘우린 가족’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더 이상 예전처럼 ‘꼭 밥을 같이 먹어야 해’라는 인식 자체는 희미해져 버렸다. 부모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에 바쁘고, 아이들은 한 자라도 더 공부하기 위해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자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 함께 밥을 먹지 않으면 식구라 할 수 없다. 그저 한 공간에 살아가는 ‘동거인’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고 그만큼 가족 공동체라는 의미는 매우 약해졌다.
그에 반해 우리들은 주5일 동안 점심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이렇게 함께 모여 고기를 먹으니, ‘제2의 식구’라 할 만하다. 이렇게 먹을 땐 예전 부모들처럼 식사예절을 가르치거나, 어른들이 할 법한 잔소리를 하지 않아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왁자지껄 떠들며 밥을 먹을 수 있으니 최고의 순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즐거운 고기파티 시간이 끝났다. 즐겁게 먹고 맛있게 먹은 만큼, 어찌 보면 치우는 그 순간도 중요한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모두 함께 맛있게 먹도록 애써서 준비를 한 것이니, 치울 때도 함께 도우며 치워야 한다. 그래야 즐거운 시간이었던 만큼, 그 기억은 퇴색되지 않고 오래도록 남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배가 찬 아이들은 서서히 자리를 뜨기 시작한다. ‘누군가 하겠지’라는 생각인지, 아예 관심이 없는 건지 거실로 들어가 텔레비전을 킨다.
저번 후기에서도 말했다시피 가장 기본적인 일들은 그걸 했다고 해서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으며, 칭찬해주지 않고, 했다는 사실조차 종종 잊게 되는 일들이다. 그러니 소홀히 하게 되고, 아예 하지 않게 되며, 한다는 것을 ‘시간 낭비’로 여긴다. 설거지하는 일, 청소하는 일, 정리하는 일, 눈을 치우는 일 등이 모두 그렇다. 하지만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바로 그런 기본적인 일들을 하는 사람(이걸 동섭쌤은 ‘칭송받지 못하는 교사’라고 표현했다)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아무런 문제없이 돌아가며, 사람들도 각자의 일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치다쌤은 그런 의미에 덧붙여 아주 본질적으로 ‘의미 없어 보이는 것 안에 의미가 있음을, 허무하게 변해버리는 것 안에 생명의 본질이 있음을 알게 되거든요.’라는 말을 한 거다. 이번엔 그러지 못했지만, 다음 여행엔 좀 더 이런 기본적인 일들에 충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모두가 함께 즐거운 여행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저녁을 먹고 난 시간부턴 완벽한 자유시간이다. 몇몇의 학생은 마당에 나와 배드민턴을 치며 더부룩해진 배를 안정시켰으며, 거실에선 티비 삼매경에 빠졌다. 처음엔 마블빠인 현세가 추천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조금 보다가, 나중엔 『동네변호사 조들호』를 첫 편부터 마지막 편까지 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예전엔 여행을 오면 밤이 가장 뜨거웠다. 밤새도록 게임을 하며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엔 게임을 하며 함께 즐기기보다 그냥 텔레비전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니, 아쉽긴 하더라. 아이들은 “마피아나 진실게임이나 너무 자주 하다 보니, 이젠 너무 지겨워요”라고 말을 할 정도로 많이 하긴 했다.
호기롭게 ‘조들호’에 도전장을 던진 아이들은 열심히 보기 시작했으나, 새벽이 깊어지자 하나 둘씩 잠을 자기 시작했고 민석이만 새벽 5시까지 홀로 남아 버티다가 결국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정말로 비가 엄청 내리더라. 기상청의 예보가 제대로 적중했고 바람까지 불어 기온은 한결 더 내려가 있었다.
이곳은 12시까지 퇴실을 하면 되니 여유가 있다. 그래서 9시 30분에 남학생들을 깨웠고 아침 먹을 준비를 하도록 했다. 여학생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유부초밥과 주먹밥과 찐 계란을 만들어 내려왔더라. 여행엔 늘 이런 감사의 손길들이 있다. 감사한 마음으로 아침밥을 맛있게 먹었다.
이제 우린 비를 뚫고 집으로 가면 된다. 여름처럼 뜨겁고 날씨가 좋았다면 오전에도 물놀이를 하고, 오후에 퇴실하고 난 후에도 물놀이를 한 후 가려 했다. 하지만 기온이 급격히 내려간 데다, 비까지 내리고 있으니 그럴 수는 없었다. 이렇게 폭염에 시달리던 2016년의 여름은 끝자락에 들어섰고, 단재학교 2학기는 시작점에 들어선 것이다. 끝과 시작은 그렇게 오묘하게 교차되며 삶이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 이번 학기에도 우리 신나게 살아보자.
목차
‘또 놀려구?’라는 말
여행은 놀이가 아닌 공부다
떠나자, 계곡으로
첫 번째 변수, 준영이의 아르바이트
두 번째 변수, 기온의 급격한 변화
1년 만에 다시 용문역을 찾아가다
여행의 기쁨이 무너진 순간에 교사의 숙명을 느끼다
슬펐다가 기뻤다가 엉덩이에 뿔난 사연
경의중앙선은 경춘선과 다르다
용문 5일장이 서던 날, 용문행 전철에 몸을 싣다
용문시장에서 맛 본 짬뽕맛은?
잘 먹기 위해 집을 떠나오다
날씨는 선선해졌지만, 그래도 우린 물놀이를 하려 한다
아이들의 놀이본능도 꺾어버린 날씨
선배들 먼저 자리를 뜬 사연
여행 중엔 모든 게 놀이가 된다
너무도 현실적인 풍자, 금수저 & 흙수저론
과정은 무의미성 속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
모두의 파티였고, 모두의 축제였던 1학기 고기파티
굽는 사람 따로, 먹는 사람 따로
함께 먹는 사람이기에, 우린 식구예요
먹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놀이와 대화가 빠진 유별했던 저녁 시간
여행은 끝났으나, 우리의 2학기는 이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