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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un 29. 2016

단재학교에서 전체여행이 중요한 이유

 남이섬 & 춘천여행 1 (16.05.11~13)

단재학교의 1년 학사운영 중 큰 행사이면서 중요한 행사를 꼽으라면, 단연 각 학기마다 진행되는 전체여행학습발표회라 할 수 있다.                






많아진 대안학교와 협소해진 교육철학이 위기를 부르다

     

대안학교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대안학교는 제도권 학교에 대한 회의감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텍스트 위주 교육, 성적이란 단일 잣대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교육, 개인의 특성을 무시한 획일적인 교육,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 아닌 정답 맞추기식의 교육에 반대하여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15년이 넘는 대안교육의 역사는 수많은 오해와 작은 기대 속에서, 너무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들으며, 아이들의 인생을 상대로 실험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들으며 첫 출발을 할 수 있었다.



▲ 숱한 오해와 작은 기대 속에 출발한 대안교육운동이 어느덧 15년을 넘었다.



하지만 15년의 시간이 흐르며, 대안학교는 엄청나게 불어났고, 스펙트럼 또한 다채로워졌다. 대안교육운동이 시작된 이후에 이상이 현실과 부딪히며 다른 방향으로 변하기도 했고, 역사가 쌓이며 흐름이 다양하게 나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대안학교란 무엇인가?’라고 말한다면, 단순명료하게 말할 수 없게 되었고, 말하는 사람마다 다양하게 말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대안학교는 15년의 세월 동안에 훨씬 많이 생겨났기에 성장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젠 유명인들이 대안학교를 열었다는 말을 듣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으며, 주위에서도 ‘대안학교에 다닌다’는 말을 듣는 게 어렵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만큼 대안학교가 교육의 장으로서 자리매김했으며 제도권 학교가 독점함 완고한 교육의 틀을 깨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분명 양적인 팽창을 했고, 그게 나름 의미가 있다는 것은 맞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면밀히 분석해보면 종교계통의 대안학교가 비약적으로 늘게 된 것일 뿐, 획일화된 교육에 비전을 제시할만한 대안학교는 점차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시간이 흐르며 현실의 욕망만을 추구하는 교육의 틀은 더욱 강고해졌으며, 대안교육도 그런 교육을 깨지 않고 얼렁뚱땅 뒷받침하는 정도의 역할만을 하게 되었다. 이런 현실이기에 다양성을 추구하는 대안교육 진영은 급속히 위축되어 갔으며, 그에 따라 대안교육에 대한 기대감마저 꺼져가면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 종교계열의 대안학교가 비약적으로 늘며, 오히려 다양성 측면에서 많은 부분이 후퇴했다.




대안학교는 개별성을 중시하며학생 맞춤형 학교다? 

    

대안교육 진영 내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가 있지만, 대안학교에 보내는 학부모의 관점 변화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초기의 학부모들은 ‘경쟁의 교육이 아닌 상생의 교육을, 지식을 맹목적으로 암기하는 교육이 아닌 사고하고 이해하는 교육을 시키고 싶습니다’라는 관점을 지녔지만, 지금의 학부모들은 ‘이상적인 것들은 필요 없고 그저 내 아이에게 맞춤형 교육을 해주세요’라는 관점으로 변했다. 학부모들은 더 이상 남다른 교육적인 이상을 바라지도, 다양한 관점에 따라 아이를 기를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취업이 국가적인 과제가 되고, 청년 실업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현실적인 위기감은 이상을 완전히 제압하고 억눌러버렸다.



▲ 사회에 불안정 요소가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사람은 안정적인 것을 찾는다. 그게 학부모의 요구에도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학부모들은 대안학교라고 하면, 학생 개개인의 취향과 특기를 살려 ‘개인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곳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제도권 학교가 일방적인 하나의 교육과정만을 운영하여 학생들이 억눌리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들러리로 전락하게 만들어 ‘탈학교 학생’이 늘어나게 되었으니, 대안학교에선 이런 문제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해결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제도권 학교엔 바랄 수 없는 학생 개개인의 필요needs에 맞춰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운영했으면 한다.               



▲ 학업 중단의 이유가 제도권 학교의 문제였기 때문에, 대안학교는 그런 문제점을 완전히 고치길 바란다.




학생 맞춤형 학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학교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면, 정말로 맞는 말처럼 들린다. 제도권 학교의 문제점 때문에 대안교육 운동이 일어났으니, 그런 문제점을 면밀히 파악하여 고치기만 해도 좋은 학교가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와 같은 생각의 기저엔 소비자와 공급자 마인드가 깊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비자가 원하는 교육상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건 곧 내 아이에 맞춤식 교육활동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런 얘기는 학교에서 학부모를 상담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듣게 되는 말이다. 그 분들은 한결 같이 일반학교와 다른 대안학교의 특성을 ‘내 아이 개인에게 맞춰서 커리큘럼도 만들 수 있고, 그 감정도 받아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여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 우린 돈을 주고 교육 상품을 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육을 상품으로 생각하는 마인드가 당연시되고, 그런 생각으로 교육의 틀을 만들려 하면 할수록 교육은 황폐화되고,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우치다 타츠루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           



제가 알고 있기로 ‘교육 서비스’는 최근에 우리 어휘 세계에 들어온 말이자, 교육을 비즈니스 모델로 생각하는 사람이 처음 사용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모델에서는 교육활동의 콘텐츠는 ‘교육상품’이고 교사는 그 상품의 공급자, 보호자와 학생은 고객의 입장이 됩니다. 교육자라면 이런 모델 안에서 교육을 논하는 말은 절대로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상품거래’에 비유해서 말하는 것은 교육의 자살 행위입니다.

『교사를 춤추게 하라』, 우치다 타츠루 저, 박동섭 역, 민들레출판사, pp 63  


        

교육이란 비즈니스와 달리 지금 당장 투자했다고 해서 결과가 곧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언제 그 결과가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르며, 심지어 기대와는 달리 완벽하게 다른 형태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니 교육은 비즈니스와는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그런 교육활동을 펼쳐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이란 이름의 폭력만 자행되니 말이다. 

우치다쌤의 위의 말에 충분히 공감하기에 단재학교는 완전히 학생만을 위한 학교도 아니며, 개개인의 모든 요구 사항에 맞춰주는 학교도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저 제도권 학교에 비해 학생 수가 적기 때문에 아이들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좀 더 자연스럽게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학교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유토피아는 아니기에 갈등도 있고 상처도 입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갈등이 빚어진 이후의 모습이 다르다. 제도권 학교는 학생 수도 많고 나가야할 진도도 있기에 그런 갈등은 자질구레한 것으로 여겨 묻어두고 넘어가려는 반면, 단재학교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함께 갖고 이해하고 해결해나가려 노력하려 한다. 늘 시간에 쫓겨 즉각적인 해결책을 바라는 것과는 달리 시간을 넉넉히 주고 그 과정을 소중히 여긴다.                



▲ 학생 회의를 하며 갈등이 생긴 문제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누는 아이들.




단재학교에서 여행을 가고발표회를 하는 이유?

     

저번에 트위스트 교육학 강의를 들었는데, 그때 동섭쌤은 학교의 목표를 ‘성숙한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라 정의하며, ‘성숙이란 어떤 하나의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전엔 절대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 바로 성숙입니다’라고 정의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건 교육의 목표임과 동시에 단재학교의 목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육의 성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성숙한 인간이 되는 길은 이전까지 도무지 알 수 없고, 전혀 들리지 않던 말이 들리고 이해될 정도로, 자신의 지적도량형이 커지는 일이니 말이다. 그럴 때에 자신이 현재 얼마나 아는 것이 없으며, 자신이 안다고 자부하던 게 얼마나 볼품없는지 깨닫게 되고, 그만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 자신의 도량형을 키우기 위해 우린 도전하고 배우고, 여행하고, 발표한다.



그렇다면 결국 우린 어떤 상황에서 나의 지적도량형이 작다는 것을 느끼게 될까? 그건 뭐니 뭐니 해도 삶이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놓였을 때, 인간관계가 틀어졌을 때 절감하게 된다. 그럴 때 지금껏 자부해왔던 안다는 인식, 계획대로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볼품없고 부질없는 것이란 걸 알게 된다. 바로 이런 상황을 몸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활동이 여행과 학습발표회라 감히 말할 수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계획을 세우지만, 여행을 하는 내내 계획은 수시로 어그러지고 사람관계는 상황에 따라 둘도 없이 친해졌다가 원수처럼 미워졌다가를 반복하며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어쩌면 여행이란 틀어진 상황 속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할 수 있나 시험하는 장인지도 모른다. 



▲ 전체여행은 어찌 보면 계획이 완전히 틀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학습발표회 또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연습하고 준비하지만, 현장의 긴장감은 그런 준비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무대에 올라 앞도 분간할 수 없이 쏟아져 내리는 조명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지금 내가 뭐 하는 것인가?’, ‘잘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나를 뒤흔드니 말이다. 결국 학습발표회의 가장 큰 적은 ‘잘해야 한다’는 기대감이고, ‘돋보여야 한다’는 자기우월감이며, ‘실수해서 쪽팔리면 어쩌지’하는 긴장감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감정이 있기에 아무리 반복적으로 완벽하게 연습했다 할지라도 상황에 따라, 순간에 따라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실수할지 아무도 모른다. 



▲ 단재학교는 시험을 보지 않는다. 그 대신에 시험만큼 중요한 학습발표회를 한다.



이런 이유로 여행을 하고 나면, ‘내가 고수해왔던 가치관, 안다는 의식이 모두 쓸모없구나’라고 느끼게 되고, 학습발표회를 마치고 나면 ‘실수 또한 포용할 수 있을 때, 오히려 더 편하게 공연할 수 있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단재학교는 이런 두 활동을 가장 중요한 행사로 늘 진행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전체여행은 한 학기에 한 번 이상은 가려하며, 학습발표회는 일 년에 한 번은 하려한다. 그런데 2016학년도 1학기 전체여행은 예년과는 다르게 5월 중순에 떠나게 됐다. 보통은 개학과 동시에 떠나거나, 검정고시가 끝난 직후에 떠나는 식이었는데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다음 여행기에선 5월에 전체여행을 떠나게 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단재학교 1학기 전체여행인 남이섬, 가평 여행기를 담아내도록 하겠다. 



▲ 이제 남이섬으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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