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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un 25. 2016

검단산이 준 선물

검단산 트래킹 4 (16.06.17)

승태쌤이 ‘가고 싶은 사람만 정상까지 가보는 건 어때?’라고 제안하자, 평상에 누워 한갓진 시간을 보내던 아이들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그 제안에 콧방귀를 뀌며 볼멘소리를 할 줄만 알았는데,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아이들의 반응에 나 또한 기분이 좋아졌다.                 



▲ 승태쌤의 제안에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안 하는 건모두 해선 안 돼

     

하지만 변수는 있게 마련이다. 아마 그냥 그대로 진행됐다면 오전부터 다리가 아프다며 불만을 제기하던 아이와 그 아이만 혼자 남길 수 없다며 함께 남겠다고 자진한 아이, 그리고 승태쌤만이 호국사에 남았을 것이고, 나머지 아이들과 나는 정상까지 올랐을 것이다. 

그런데 오전부터 불만을 제기하던 아이는 ‘자신만 놔두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려 한다’는 점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등산준비를 하는 아이들을 따라 함께 일어서며, “이렇게 되면 어떻게 저만 여기에 있어요?”라고 불퉁댔다. 그러자 아이들과 승태쌤은 이구동성으로 “너만 남겨 둘 순 없어서 한 학생과 선생님 한 분도 같이 남아 있기로 했잖아. 그러니 여기서 편안하게 쉬고 있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한 번 못마땅하게 여긴 아이는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어선다. 분위기가 냉랭해지니, 오르려 준비하던 나머지 아이들은 뻘쭘해지고 말았다. 그래서 다른 아이 한 명도 자진하며 “그럼 저도 남아 있을 게요”라고 외쳤지만, 그 또한 전혀 소용이 없었다. 



▲ 오전에 오를 때도 제대로 걷기보다 거의 쉬면서 조금 걸었을 뿐이다.



보통 이런 상황에선 아이들이 자신을 위해 함께 남아준다는 사실이 감사하고도 미안해서 “난 그냥 여기에 있을 테니, 너희들은 얼른 다녀와”라는 말을 하거나, 함께 기다려준다는 아이에겐 “그래도 이렇게 함께 남아준다고 해서 고마워”라는 말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게 하이틴 소설에 나오는 닭살 오르는 장면이기만 할 뿐, 현실은 전혀 로맨틱하지 않았다. 그저 그 아이는 이런 상황을 만든 선생님만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자기 때문에 정상에 오르고자 맘먹은 아이들의 발이 묶이길 바라진 않았겠으나, 결론적으론 그런 모양새가 되고 만 것이다. 이건 곧 ‘내가 하길 바라지 않는 일은, 아무도 해선 안 돼’라는 생각이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상황이니 가겠다고 일어선 아이들조차 어리둥절해하며 그대로 자리에 다시 앉을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시작되려던 분위기는 깔아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성민이만이 그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상에 오르겠다고 일어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 아이만 혼자 보낼 수는 없기에 나도 그 아이의 뒤를 따라 나섰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선 ‘넌 안 갈 거지. 그럼 난 갔다가 올게’라고 생각하여 움직이는 아이만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 나는 이곳을 떠났으니, 아이들이 뭘 하고 있었을진 모르지만. 아마도 이런 모습대로 놀고 있었을 거다.




하류가 되길 지향하다 

    

이걸 보고 있으면, 당연히 우치다쌤이 쓴 『하류지향』이란 책이 떠오른다. 이 책에선 공부도 하지 않고 일도 하지 않는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우리나라도 점차 공부를 통한 계층상승이 불가능해지고 취업도 덩달아 힘들어지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공부도 하지 않고 노동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일본은 오래전부터 그런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이에 대해서 우치다쌤은 노동주체로 설 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결과가 드러나는 공부나 노동을 할 수 있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소비자마인드를 가진 소비주체로 자신을 형성하였기에 공부나 노동은 결코 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자기 혼자만 공부를 하지 않고 노동을 하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하지 못하도록 주도면밀하게 분위기를 망치고 유도한다는 점이었다. 모두 다 열심히 할 때 자신만 하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문제가 되지만, 모두 다 하지 않도록 한다면 자신도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 고무줄 놀이를 할 때 고무줄을 끊고 도망가는 게, 게임을 망치는 것이다. 물론 그게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처럼 이 아이도 교묘하게 이런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으며, 무언가 하려는 아이들을 막아 세워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그래야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정상에 함께 오르며 느꼈던 소감을 이야기할 때 자신만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으며, 남아 있을 때에도 ‘하지 못했다’는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머지 아이들은 그곳에 남는 바람에, 성민이와 나만 오르게 됐다.                 



▲ 이런 이유로 성민이와만 정상에 오르게 됐다. 아쉽다. 아쉬워~




2013년 지리산 종주 이후 최초의 등산다운 등산을 하다

     

호국사에서 나와 드디어 본격적인 등산을 하기 시작했다. 오전엔 그 아이가 ‘힘들어요’라며 분위기를 망치는 바람에 등산다운 등산을 하지 못하고 거의 천천히 걷다가 끝나는 식이었으니, 이제야 제대로 등산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정표를 보니 정상까지 2.6㎞라고 쓰여 있더라. 지리산을 종주하며 알게 된 사실은 평지와 달리 산에선 두 배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평지엔 4㎞를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다면, 산에선 두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2.6㎞면 아무리 빨리 걸어도 1시간 정도 잡아야 갈 수 있는 거리다. 그렇기 때문에 모처럼만에 마음을 다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다. 



▲ 지리산 종주를 갔었던 그 때, 그 느낌을 이번에 검단산을 오르며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지리산 종주를 다녀온 이후엔 좀 힘든 산을 올라본 적은 없었다. 학교에서 트래킹이란 커리큘럼이 생기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등산을 가자던 영화팀의 계획은 자연히 사라지게 되었고, 그에 따라 나도 등산을 하지 않게 되었다. 가봐야 아차산에 가는 정도인데, 아차산은 산이라기보다 언덕이라 하면 맞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무려 3년 정도가 지난 지금에야 등산다운 등산을 하는 것이니, 지레 겁부터 났다. 검단산에 대해 아는 건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전주 모악산 정도 높이의 산이라는 건 알고 있고 그게 만만치 않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기 때문이다.                



▲ 모악산도 꽤 힘든 산인데, 검단산도 모악산에 비견할만한 산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등산을 하며 한 걸음의 중요함을 배우다 

    

초반의 길은 약간 경사져 있긴 해도 충분히 한 걸음씩 꾸준히 올라가면 갈만한 정도였다. 오랜만에 다리에 힘을 꽉 주며 성실히 걸어간다. 

도보여행 때도 그랬지만, 등산을 할 때도 느껴지는 건 ‘한 걸음의 중요함’이란 것이다. 도장을 찍듯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간다. 보기엔 아무 것도 아니고 별 것 없어 보이지만, 그게 쌓이고 쌓이면 목포에서 시작하여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국토를 종단할 수 있게 하며, 화엄사에서 시작하여 천왕봉까지 지리산을 종주할 수 있게 한다.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낸다. 



▲ 한 걸음씩 걷다 보니, 목포에서 고성까지 걷게 됐다.



요즘 아이들은 성실의 미덕을 얕잡아 보고, 별 것 아닌 것 같은 작은 행동들을 쓸데없는 짓으로 폄하한다. 그러니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은 하지 않고, 거대하고 엄청난 일만을 꿈꾸며 그런 일들만 하려 한다. 하지만 그런 거대하고 엄청난 일은 환상일 수밖에 없다. 그게 한껏 멋들어져 보이고 구미를 당긴다 해도, 작은 일을 소홀히 한 사람에겐 그런 일이 손에 잡힐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상을 꿈꾸며 허황된 일들에 매진하기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일들을 찾아 성실히 해나갈 일이다. 그게 쌓이고 쌓이면 어마무시한 내공이 되고, 실력이 된다. 

도보여행이나 등산은 바로 이런 진리를 몸으로 체득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이런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 누군가 억지로 가르쳐주지 않았을지라도 ‘한 걸음의 중요함’을 몸소 배우게 된다. 그러니 등산이야말로 인생의 중요한 공부방법이라 말할 수 있다.                



▲ 산을 오르면 몸으로 익히게 되는 게, '한 걸음의 중요성'이다.




강철체력 성민이의 등산법

     

성민이는 역시나 체력이 장난이 아니다. 나를 항상 앞질러 갔으며,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달려서 나를 앞서 갔기 때문이다. 이날 기온은 30도가 넘는데도 성민이는 입고 온 검은색 긴팔 잠바를 벗지 않고 맹렬히 올라갔다. 그건 방풍 잠바였으니 얼마나 더웠을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절대 지치지 않았으니 ‘강철체력’이라 불릴 만 했다. 그래서 성민이가 평소에도 등산을 많이 했을 거라 짐작하며, 몇 번이나 등산을 해봤냐고 물어보니, 2~3번 남한산을 타본 게 전부라고 하더라. 그 중 한 번만 마천역에서 서문까지 올라봤을 뿐, 나머지는 오르다 말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민인 산을 많이 타서 체력이 좋다기보다, 원래 좋은 체력을 타고 났다고 보면 되겠다. 

성민이는 등산을 할 때에도 앞에서 먼저 간다. 뒤에서 가면 진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인지, 무리의 맨 앞에서 선발대 같은 모양새로 가는 것이다. 그러다 한 번씩 그늘에 앉아 쉬기도 하는데, 조금 쉬었다가 일어서면 산을 날렵하게 뛰어서 올라간다. 물론 전체 등산로를 뛰어 오르는 건 아니지만, 일정 구간까지 뛰어 오르고 쉬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니 하산하던 등산객들은 성민이가 뛰어서 오르는 모습을 보고 “이야~ 체력이 장난 아니네. 역시 젊음이 좋긴 좋아”라는 말을 한 것이다.                



▲  강철체력 성민이의 등산기.




모처럼만에 체력의 한계치를 느껴보다

     

초반부터 중반 코스까진 완만한 경사의 등산로가 계속 되었고, 때론 평지와 같은 곳도 있어서 충분히 오를 만했다. 

하지만 정상을 500m 남겨둔 곳에서부터인가 갑자기 급경사로로 바뀌며 오르기 힘들어졌다. 조금 걷다가 너무나 힘들어서 어디가 끝인지 올려다보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 끝도 없는 급경사로를 무작정 올라야 하니,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차오른다. 



▲  급경사구간이다. 성민이도 힘든지 멈춰서 있다.



그 순간 지리산 장터목대피소에서 천왕봉을 오를 때의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던 순간이 떠오르더라. 이것이야말로 소위 ‘자신과의 싸움’이며 ‘몸무게와의 사투’라 할만 했다. 경사가 어찌나 급한지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도 숨이 턱턱 막히며 더 이상 못 갈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정상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걷다 쉬다를 반복하며 오르는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에 나란 존재의 한계치를 온 몸으로 느끼게 된다. 도보여행과 같이 몸으로 하는 여행에서 이런 경험을 하곤 했었다. 더 이상 못할 것 같고, 너무나 힘들어 주저앉아 포기하고만 싶던 순간 말이다. 심할 때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  천왕봉으로 가는 길. 여기서 정말 엄청 힘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지나고 나면 언제 그런 비관적인 생각이 어렸냐는 듯이 추억이 되고,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어린다. 가장 힘들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멈춰버리면 그 순간은 최악의 순간으로 기억되지만, 그 순간을 넘어서서 전체적인 여행의 흐름에서 보면 그때의 힘듦은 오히려 여행의 즐거움처럼 기억되니 말이다. 그렇기에 한계치가 느껴지는 순간에 우린 포기하지 말고, 지나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스스로 훌쩍 컸다는 느낌과 함께, 예전엔 미처 몰랐던 자신의 장점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 이렇게 끝이 없을 것 같은 길도 오르고 또 오르면 끝이 나온다. 그게 삶이다.




아쉬움이 많지만그래도 뿌듯했던 검단산 트래킹

     

12시 50분에 호국사에서 출발하여 오르기 시작했고 정상에 도착한 시간은 1시 47분이었다. 거의 한 시간동안 걸어서 도착한 것이다. 정상에서 남한강변을 내려다보니, 팔당댐과 두물머리가 보이더라. 안개 같은 게 껴있어서 가시거리가 좋진 않았지만, 힘들게 올라온 만큼 뿌듯했다. 거기서 5분 정도 쉰 다음에 내려오기 시작했다. 



▲ 두물머리와 팔당댐이 보인다. 정상에서 보는 맛.



등산로까지 내려와서 시간은 보니 3시더라. 그렇다면 검단산은 일반적인 속도로 올라가면 1시간 30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고, 1시간 정도면 내려올 수 있는 산인 것이다. 등산 시간으론 그렇게 부담이 되는 산은 아니며, 조금이라도 산을 좋아한다면 충분히 올라볼만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트래킹은 함께 시간을 보내기보다 각자 개인플레이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 점이 아쉽다. 모두 다 함께 산에 오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이런 경험들은 함께 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오랜만에 등산을 하며, ‘한 걸음의 중요성’에 대해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고, 한계치를 넘어서는 게 어떤 것인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등산은 단순히 산에 간다는 의미이기보다, 나 자신과 더욱 친해지기 위해 간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 하산하고 검단산의 전체 모습을 본다. 좋다.




과거 트래킹 기록보기        


14.03.21 서울 둘레길 트래킹

14.09.29 중랑천 트래킹

14.10.17 율동공원 트래킹   

14.11.14 여의도 트래킹

15.07.10 남산트래킹

16.03.11 통인시장 트래킹

16.03.25 롯데월드 트래킹

16.04.09 어린이대공원 트래킹

16.04.23 평화의 공원 런닝맨

16.06.03 남한산성 트래킹



목차 

    

1. 건빵산에 살어리랏다

살아지는 시간 & 살아가는 시간에 대해

검단산이 트래킹 코스로 정해지기까지

하라니까 산에 오르다

재밌기에 산에 오르다

살기 위해 산에 오르다

아이들과 오르는 기쁨을 느끼러, 검단산에 가다    

 

2. 학생들과 등산하기 위해선 교사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회장 지민이가 검단산 트래킹 계획을 짜다

제 시간에 모이는 학생들 & 그러지 못하는 학생들

산을 오르기 전부터 삐걱대다

한 아이의 불퉁거림이 전체 분위기를 망치다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으면 무엇이든 뚫지 못하랴

  

3. 짐작치 말기나답지 말기

일상의 단조로움을 깨는 제안에 아이들의 반응은?

‘당연히 그럴 것이다’의 함정

아이들의 반응에 나다움은 무너져 내렸다

나다움이 아닌, ‘우리 속의 나’를 찾다

  

4. 검단산이 준 선물

내가 안 하는 건, 모두 해선 안 돼

하류가 되길 지향하다

2013년 지리산 종주 이후 최초의 등산다운 등산을 하다

등산을 하며 ‘한 걸음의 중요함’을 배우다

강철체력 성민이의 등산법

모처럼만에 체력의 한계치를 느껴보다

아쉬움이 많지만, 그래도 뿌듯했던 검단산 트래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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