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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un 22. 2016

학생들과 등산하기 위해선 교사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검단산 트래킹 2 (16.06.17)

이번 트래킹 장소로는 검단산이 정해졌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세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회장인 지민이와 부회장인 현세가 계획을 짜야한다. 아무래도 현세는 ‘이건 모두의 일이기에 내가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나 몰라라 하기에, ‘이건 모두의 일이기에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민이 혼자 도맡아서 짜야했다.                



▲  등산계획을 세우게 됐다는 게 신기하다. 뜻하지 않았지만 그 계획대로 흘러가는 게 신기할 뿐이다.




회장 지민이가 검단산 트래킹 계획을 짜다

     

지민이는 계획을 짜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지, 목요일 아침에 학교에 오자마자 검단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래도 오자마자 나에게 와서 이야기를 꺼낸 것은 검단산이란 장소를 내가 추천했을 거라고 짐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의 짐작은 어느 부분에선 꽤나 과학적인 추론이라 할 수 있었다. 

지민이는 2013년 4월에 단재학교 영화팀에 들어왔고, 그땐 영화팀이 한참 등산을 할 때였다. 그래서 자연히 ‘등산 계획=건빵’이란 생각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 들어보는 산 이름을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관악산, 청계산, 아차산, 북악산, 북한산, 남한산과 같은 서울 근교의 산들은 거의 다 가봤지만, 검단산은 산 이름만 들어봤지 가보질 못했다. 그래서 지민이에게 “거긴 가본 적이 없어서 아는 게 없어”라고 알려줬다. 



▲ 지민이는 단재학교에 오자마자 주구장창 산을 탔고, 급기야 지리산 종주까지 하게 됐다.



지민이도 나도 처음 가보는 산이기에 기본적인 것부터 조사를 해야 했다. 어떻게 등산로까지 갈 수 있는지, 그리고 뭘 할 것인지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짠 것이다. 지민이는 저번 트래킹 때 남한산 계곡에서 재밌게 놀았기 때문인지, 이번에도 계곡에서 쉬면서 놀았으면 하더라. 

그래서 정보를 찾아보니, 그다지 정보가 많지 않았다. 남한산 계곡 같은 경우는 꽤 유명하여 서울 근교에서 계곡을 가고 싶은 사람들이 별 부담 없이 찾는 장소다. 그러니 정보가 많은데 반해, 검단산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올려놓은 정보를 검색하다 보니, 계곡 같은 곳은 있지만 물놀이를 할 만큼 깊은 곳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검단산은 계곡을 바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오르다 보면 있다고 하더라. 그러니 오전 중엔 정상까지 올라가고, 오후에 하산하면서 계곡이 있으면 거기서 쉬도록 하자”고 말했다.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젠 현장에서 부딪혀가며 상황을 만들어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 우린 2번 코스를 따라 올라서, 오전엔 호국사까지 갔다.



            

제 시간에 모이는 학생들 그러지 못하는 학생들

     

오늘은 천호역 6번 출구에서 10시에 모이기로 했다. 과연 이번엔 아이들이 제 시간에 나올까? 그리고 지훈이와 준영이는 나올까?

야외활동을 할 때마다 늘 늦거나, 아예 나오지 않는 아이들이 문제가 되곤 한다. 그래서 어제 회의를 할 때 지각 10분당 500원씩 벌금을 걷기로 한 것이다. 이젠 어느 정도 약속한 시간에 늦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그게 좀처럼 되지 않아 벌칙으로 제재를 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 지도 3~4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여전히 기본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절로 씁쓸해질 수밖에 없다. 흘러간 시간만큼 확연한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태도만은 바뀌길 바라는 마음은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이날은 지각하는 아이들이 없었다. 민석이와 현세가 약간 걱정되긴 했지만, 벌금이란 게 무섭기 때문인지, 마음을 굳게 잡았기 때문인지 제 시간에 맞춰서 나왔다. 이런 경우처럼 잘 나오지만 어쩌다 한 번씩 늦는 경우는 그나마 이해가 된다. 누구에게나 피치 못할 사정이든, 갑작스런 상황 같은 것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석이와 현세의 경우 요즘 지각이 부쩍 늘긴 했지만, 그래도 아예 빠진다던지, 시간을 전혀 지키지 않는다던지라는 막무가내의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나름 자신들이 지키려는 선 자체는 있기 때문이다. 



▲ 약속 시간에 늦으면 제 시간을 지킨 아이들만 손해를 본다. 그래서 회의를 할 때 지각 벌금은 늘 중요한 안건이 된다.



태기 같은 경우는 이번엔 매우 예외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새벽에 창문을 열고 선풍기까지 틀고 자는 바람에 감기몸살이 걸려서 오늘은 쉬겠다는 문자를 보내왔으니 말이다. 잘 나오던 아이가 어쩌다 한 번 정도 상황에 따라 빠지는 건 그래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약간 우려스러운 점은 요즘 이런 저런 이유로 학교를 하루 정도 빠져도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져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현세는 감기 때문에 무려 3일이나 학교를 결석했으며, 나머지 아이들 중에도 약간 몸이 안 좋으면 하루쯤은 빠져도 된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 태기가 이날 빠져도 된다고 생각한 데엔 이런 분위기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와는 달리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역시나 지훈이와 준영이었다. 지훈이는 여태껏 트래킹을 할 땐 늦는 경우는 있었어도 아예 빠지는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저번 트래킹부턴 아예 나오지 않았으며, 요즘은 낮과 밤이 뒤바뀌었다며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준영이의 경우도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참석하는 것이 좌우될 정도이니 절로 걱정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10시에 모여 20분 정도를 기다리다가 결국 전화를 해봤는데, 두 사람 모두 전화를 받지 않더라. 그건 곧 ‘나오지 않겠다’는 무언의 표시였기에 우린 검단산으로 그냥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 나머지 아이들은 시간에 맞춰서 잘 모였다. 민석이는 어제 저녁에 컴퓨터를 감금당했다는 비보를 알리며 비통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올해 들어 지훈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 휩싸이면서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전엔 학교에 다니는 의미를 찾지 못해 빠지는 날이 많았다면, 지금은 학교에 있는 게 시간낭비처럼 느껴져 빠지는 날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자기는 지금 수능시험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학교는 수능시험을 위한 공부는 시켜주지 않고 연극과 영화, 기타와 같은 ‘씨잘데기’ 없는 공부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학교에 나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게 됐고, 그에 따라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저번에 이어 이번까지 트래킹을 아예 빠져버렸으니, 지훈이의 그런 생각은 더욱 더 굳어진 듯했다. 

준영이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제 시간에 맞춰 등교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쓸모없는 거라 여기지도 않는다. 그러면 당연히 제 시간에 맞춰서 나오면 오죽 좋겠냐 만은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몸이 맘대로 되지 않다 보니, 그걸 잘 지키지 못한다. 그래도 저번에는 늦게라도 계곡으로 찾아서 왔으니, 이번처럼 자신의 집 근처 산(준영인 하남에 산다)으로 가는 상황에선 더 쉽게 나올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번엔 아예 나오지 않았다. 정말로 무슨 생각인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 미래에 대한 불안에 잠식 당하면, 그로 인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산을 오르기 전부터 삐걱대다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달려서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 정류장에서 내렸다. 처음 가는 길이기에 지도를 꼼꼼히 찾아보며 가야 하지만, 그런 걱정을 전혀 하지 않는다. 버스엔 등산복을 입고 탄 사람들이 꽤 있었기에 우린 그들을 졸졸 쫓아다니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애니메이션고등학교 옆길을 따라 조금 더 가니, 청계산 입구에 아웃도어 매장이 즐비하듯이 이곳도 아웃도어 매장이 많더라. 그곳에서 조금 더 걸으니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왔다. 





이때부터 한 학생이 “감기도 된통 걸린 데다가, 다리까지 아프거든요. 그래서 아침에 트래킹을 간다고 나오려 하니 엄마가 무슨 트래킹이냐며 쉬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도 저는 오늘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는 줄만 알고 간다고 하고 나왔어요. 그래서 오늘은 산을 못 오를 거 같아요.”라고 운을 뗐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걸어서 올라갈라 치면, “더 이상 못 가겠어요. 그래서 아까 양해를 구했잖아요”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어제 지민이와 계획을 세웠다시피 오전에는 천천히 정상까지 오르고 오후에는 계곡에서 쉬자는 것이었는데, 차질이 빚어지게 되었다.



  

▲ 초입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고 경사도 급하지 않아 좋았다.



              

한 아이의 불퉁거림이 전체 분위기를 망치다

     

초입길은 경사가 급하지도 않았으며 험하지도 않았다. 길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산책을 하듯 편하니 걸으면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아이로 인해 전체의 분위기는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 걸으라 치면 “더 이상 못 걷겠어요”, “그래서 제가 못 걷는다고 양해를 구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무시할 수가 있어요”라는 말로 의기를 꺾어버렸으니 말이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선 화가 치밀어 오른다. 계속해서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제대로 올라가려 맘먹은 아이들의 의욕마저도 깔아뭉개버리니 말이다. 역시나 아이들과 힘든 순간을 함께 해쳐나가려면 교사에겐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나마 지리산 종주 때나 자전거 여행 때는 힘들긴 했어도 아이들이 서로 상부상조하며 힘을 보태줬기 때문에 힘을 보충해가며 극복할 수 있었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오로지 나의 에너지로만 이 상황을 이해하며 극복해야 하니, 더욱 힘이 드는 것이다. 



▲ 그래서 조금 걷다가 쉬었다, 걷다 쉬었다를 반복했다.



승태쌤은 이대로는 정상까지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바로 근처에 계곡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도 물어보니, 정상 바로 밑에 있다는 분도 있었고,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있다는 분도 있었다. 그래서 등산로에서 벗어나 계곡이 있을 만한 곳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험지의 느낌이 물씬 났고, 길 또한 평탄치만은 않았다. 그런 길을 아이들과 천천히 걷고 있으니, 꼭 오지를 탐험하는 것 같더라. 밀림을 탐험하는 대원들처럼 한 줄을 늘어서 검단산의 깊숙한 곳을 헤매며 다녔다. 그러다 계곡을 발견하긴 했는데, 물이 거의 말라 시원한 느낌은 하나도 없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승태쌤은 “조금만 더 가면 호국사라는 절이 나오니, 거기까지 가서 쉽시다”라고 말을 했다. 



▲ 계곡을 따라 가는 느낌. 꼭 인디아나존스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다.



얼마 걷지 않으니 호국사라는 이정표가 나오더라. 조금만 가면 절이 나온다는 것이니, 우린 그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바로 절이 나오지 않고 꽤 멀었다. 이런 상황이니 아까 그 아이의 불만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당연히 계단을 따라 올라갔고, 다행히도 거기엔 평상이 설치되어 있어서 거기에 앉아 점심 먹을 준비를 했다. 



▲ 호국사로 올라가는 길. 이곳은 화장실과 주차장이 있는 곳인데, 여기서 밥을 먹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으면 무엇이든 뚫지 못하랴 

    

점심시간은 그 어느 시간보다도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불퉁거리는 소리도, ‘그만 올라가자’는 이의제기도 없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이땐 아이들이 싸온 도시락을 함께 나누어 먹었고, 서로 서로 챙겨줬기에 그 모습이 정말로 보기 좋았다. 

이때 규빈이는 밥을 먹으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넘치는 에너지를 숟가락 끝에 담아 밥을 푸려던 찰라 오죽 에너지가 넘치고도 넘쳤으면 숟가락이 도시락통 바닥을 뚫고 튀어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이걸 흔히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정신을 하나로 통일하면 어떤 일이든 이루지 못하랴)’라고 하는데, 규빈이의 경우는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으면 무엇이든 뚫지 못하랴’라는 거였다. 이 상황에 규빈이도 깜짝 놀랐지만, 그걸 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을 뿐만 아니라, 폭소가 터져 나오기까지 했다. 얼마나 자신의 얘기에 심취했으면 숟가락이 통을 뚫는데도 그걸 전혀 몰랐던 걸까 웃겼기 때문이다. 



▲ 얼마나 열변을 토했으면, 숟가락이 도시락통을 뚫고 나왔다.



밥을 다 먹고 나선 그곳에서 우린 정말 아무 것도 부럽지 않은 여유를 만끽했다. 가만히 누워 평상으로 불어오는 산바람을 음미하며 ‘아무 것도 안 할 자유’를 누리며, 한가로운 시간을 즐겼다. 



▲ 아무 것도 안 할 자유를 만끽하다. 밥 푸지게 먹고 자유로운 시간 만끽하기.





목차 

    

1. 건빵산에 살어리랏다

살아지는 시간 & 살아가는 시간에 대해

검단산이 트래킹 코스로 정해지기까지

하라니까 산에 오르다

재밌기에 산에 오르다

살기 위해 산에 오르다

아이들과 오르는 기쁨을 느끼러, 검단산에 가다    

 

2. 학생들과 등산하기 위해선 교사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회장 지민이가 검단산 트래킹 계획을 짜다

제 시간에 모이는 학생들 & 그러지 못하는 학생들

산을 오르기 전부터 삐걱대다

한 아이의 불퉁거림이 전체 분위기를 망치다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으면 무엇이든 뚫지 못하랴

  

3. 짐작치 말기나답지 말기

일상의 단조로움을 깨는 제안에 아이들의 반응은?

‘당연히 그럴 것이다’의 함정

아이들의 반응에 나다움은 무너져 내렸다

나다움이 아닌, ‘우리 속의 나’를 찾다

  

4. 검단산이 준 선물

내가 안 하는 건, 모두 해선 안 돼

하류가 되길 지향하다

2013년 지리산 종주 이후 최초의 등산다운 등산을 하다

등산을 하며 ‘한 걸음의 중요함’을 배우다

강철체력 성민이의 등산법

모처럼만에 체력의 한계치를 느껴보다

아쉬움이 많지만, 그래도 뿌듯했던 검단산 트래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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