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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un 15. 2016

남한산 계곡에서 열정을 불사르다

남한산성 트래킹 3 (16.06.03)

아주 배부르게 밥을 먹고 계곡으로 가기 위해 산성로터리로 이동했다.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찾아오나 싶게 종점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나들이를 온 사람들까지 꽤 많은 사람이 있었다.                



▲ 버스를 타러 종점에 왔다. 덥지만 사람들은 어디를 가려는지 많다.




남한산 계곡은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초이쌤이 계곡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며 “걸어서 가면 1시간 정도 걸리는데, 버스를 타고 가다가 기사님에게 계곡이 좋은 곳에 내려 달라고 하면 거기서 내려주거든요.”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당연히 오늘 경로는 초이쌤이 잘 알고 있었기에 군말 없이 버스를 탈 준비를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엔 ‘1시간 정도면 소화도 시킬 겸 걸어가면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몽실몽실 피어나고 있었다. 단재 아이들은 극도로 싫어할 테지만 만약 내가 계획을 짰다면, 당연히 걸어서 가는 방향으로 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해 나의 판단은 잘못된 거였다. 아무래도 초행길이고 거리 감각도 없다 보니, ‘1시간 정도 걸린다’는 말에만 꽂혀서 그렇게 생각한 것인데, 실제론 그것보다 훨씬 멀었기 때문이다. 산성로터리에서부터 우리가 내리기로 한 오전리 마을회관까지의 거리는 6.1㎞나 된다. 걷는 시간상으론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거리인 셈이다. 물론 나 혼자 걷는다면 그 정도는 걸을 만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걸어야 하고 아이들 중에는 걷는 걸 엄청 싫어하는 아이도 있다 보니 그건 애초부터 원성이 자자한 계획일 수밖에 없었다.



▲ 결코 걸어서 가기에 만만한 거리는 아니다.



불연 듯 작년에 떠났던 변산여행이 떠올랐다. 그때도 펜션에서 격포해수욕장이나, 채석강에 가기 위해서는 2~3㎞를 걸어 다녔어야 했다.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님에도 여학생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재잘재잘 참새가 끊임없이 소리를 내듯 이구동성으로 불만을 토로했으니 말이다. 그땐 그래도 2박3일 일정의 여행이니 조금이나마 감내하려 했지만, 지금처럼 애초에 ‘계곡에서 쉬자’라는 컨셉으로 떠난 여행에서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얼마 걷지 않아 드러눕는 사태까지 발생했을 지도 모른다. 



▲ 폭풍해일주의보까지 발령된 그 날, 우린 우의를 입고 격포를 누볐다.



더욱이 애초부터 걷는 게 불가능했던 이유는 거리 외에도 도로 사정 때문이기도 했다. 계곡으로 가는 길 자체가 자동차만을 위해 만들어진 길이다 보니, 사람이 걸을 수 있는 통행로는 거의 없었다. 이 길을 걸어서 가려면 ‘목숨을 내놓고’ 가야 할 정도로 걷는 게 무척이나 사나웠고, 차는 수시로 오다보니 사고가 날 확률이 너무도 높았다. 만약 정말로 걸었다면 이건 흡사 ‘사람여행’ 때 당진으로 가는 길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인도 없는 차도를 걸을 땐 마이클잭슨의 춤과 같이 몸만 30도 가량 차의 반대방향으로 기울며 다니는 신공을 발휘했어야 하니 말이다. 이래저래 버스를 탄 것은 신의 한 수였다.                



▲ 인도가 없어 걷기엔 위험하다.




똘끼를 종점에 가득 채우다

     

계곡에 가기 위해서는 15-1번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이 버스는 10~20분 정도의 시간으로 배차되어 있는 9번 버스와는 달리, 45~80분 정도로 배차되어 있더라. 그래서 한참이나 기다려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 15-1번의 배차시간은 매우 길기 때문에 시간을 잘 확인해야 한다.



아이들은 정류장 의자에 삼삼오오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바빴는데, 에너지가 흘러넘치다 못해 뿜어져 나오는 태기와 성민이는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계곡에서 피서를 하자’는 컨셉에 맞게 돗자리를 세 개나 준비했는데, 바로 그걸 들고 게임을 한 것이다. 

첫 번째는 참참참을 해서 걸릴 경우 돗자리로 뺨을 때리는 게임이었다. 솔직히 이런 게임을 할 땐 처음엔 장난처럼 시작되지만, 어느 누가 열을 올리며 세개 때리면 그때부턴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곤 한다. 게임을 하다가 처음엔 태기가 걸려서 성민이가 때릴 땐 장난처럼 살짝 때렸다. 이때만 해도 이 게임엔 ‘살아 있는 우정이 감도는’ 밋밋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기어코 성민이가 걸렸고 태기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강스메싱을 날리며 ‘우정파괴’의 살벌한 게임을 방불케 했다. 물론 돗자리이니 엄청 아프진 않겠지만,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고 맞는 느낌은 흡사 귀신이라도 본 것마냥 오금이 저려왔을 것이다. 그때부터 처절한 복수혈전은 시작되었고 드디어 성민이가 때릴 순간이 왔다. 이때는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강스매싱을 날려 복수극은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오기가 생긴 태기가 다시 한 번 결투를 신청했지만, 이번에도 불행하게 성민이가 이겨서 때릴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런데 이 때 태기는 “이제 게임 그만 하자”며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첫 번째 게임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고, 연이어 두 번째 게임으로 접어들었다. 두 번째 게임은 ‘돗자리 난투극’이라 표현하면 맞을 것이다. 중세시대의 기사들에겐, 막부시대의 사무라이에겐 칼이 있어서 합을 겨루며 실력을 따졌다면, 요즘 시대의 학생들에겐 돗자리 한 자루로 자웅을 겨루는 것이다. 둘은 아주 재미나게 돗자리를 서로 부딪치며 놀고 있지만, 곁에서 보는 우리들은 “저런 저런 저건 어린아이들도 요즘은 하지 않는 장난인데”하며 안타까워했고, 반면에 모처럼 보는 진기한 장면에 넋을 빼놓기도 했다. 무료할 수밖에 없는 그 시간이 태기와 성민이로 인해 밝아졌고 유쾌해졌다. 그 덕에 한참을 기다려야 했던 그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을 받았다.                






남한산에서 뜻하지 않게 인디아나존스를 연출하다

     

버스를 타고 ‘오전리 마을회관’에서 내려서 근처에 계신 분에게 “계곡으로 가려면 어떻게 하나요?”라고 승태쌤이 물어보니, 1㎞를 걸어가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우린 그때부터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이곳에서 걷는다는 건 여러모로 위험했다. 인도도 거의 없을뿐더러, 차들도 꽤 빠른 속도로 달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군말도 하지 않고 열심히 걷기 시작한다. 수풀을 헤치고 차를 피하며 비포장도로로 걷는 그 모습은 흡사 오지를 탐험하던 ‘인디아나존스’ 같은 느낌이었다. 비문명 세계를 탐험하던 인디아나존스와 비문명과 문명의 경계를 걷는 우리의 모습이 같을 순 없겠지만, 이런 식의 트래킹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으니 말이다. 2014년에 영화팀만 떠났던 도보여행의 확장판 같은 느낌도 들어서인지 기분이 매우 좋았다. 이 길에 사람이 걷도록 인도만 확장된다면 언제든 다시 걸으며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한산 계곡에서 노닐다

     

1.4㎞를 걸으니, 매점 같은 게 하나 보이고 조금 더 걸으니 계곡 쪽에서 사람 소리가 났다. 거기서 내려가니 꽤 괜찮은 그늘이 있더라. 그래서 우린 그곳에 돗자리를 펴고 한껏 여유를 누릴 채비를 했다. 



▲ 걸은 보람이 있다. 좋은 자리에서 우리는 쉴 수 있었다.



규빈이는 거침없이 물에 들어가 고기와 다슬기를 잡기 시작했고, 민석이와 현세, 지민이도 쭈뼛쭈뼛 물 근처로 다가갔다. 신발을 신고 왔기에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는 듯하더니, 급기야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고 들어간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몸을 사리기 시작하면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온갖 행복들, 그리고 감정들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아예 몸을 던진 사람은 모든 것을 느낄 수 있고 맛볼 수 있다. 나의 경우엔 이런 경험을 중학교 2학년 때 할 수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나왔을 때 폭우가 내렸다. 돌풍이 불고 한꺼번에 많은 양의 비가 내리다 보니 무릎까지 물이 찰 정도였다. 당연히 우산을 펴고 가지만 폭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우산이 뒤집힐 듯 세찬 바람이 불어옴에도 우산은 절대 놓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덜 젖기 위한 고군분투라 할만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과연 이렇게 우산으로 막고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예 우산을 접어버렸다. 젖지 않으려 애쓰기보다 아예 쫄딱 맞고 비를 즐겨보자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순간엔 묘한 해방감이 감돌며 비에 온몸이 젖는 만큼 시원하다는 생각과 함께 행복하다는 생각까지 들더라. 아마도 이런 것 때문에 이병률씨는 『끌림』이란 책에서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라고 말한 걸 거다.  



▲ 열정은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



이 순간 물놀이를 하고 있는 네 명의 아이들은 그처럼 완전히 젖어서 재밌게 놀고 싶은 마음과 젖지 않도록 발버둥치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발만 담그고 장난처럼 물장풍을 조금씩 날리며 젖지 않도록 노력한 걸 테다. 하지만 민석이와 규빈이는 그게 어느 정도 무너질 기색이 보였다. 물장난이 과격해지는가 싶더니, 기어코 인정사정없이 물을 끼얹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젖었지만, 그래서 툴툴 댔지만, 그래도 이 순간을 가장 알차게 보낸 아이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옷이 젖었기에 집에 가는 내내 꿉꿉했다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마도 두 사람에겐 그 순간의 그렇게 뜨거운 열정은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진한 추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 진한 추억의 순간. 열정 가득하던 그 순간의 스케치.




마지막까지도 긴장을 풀 수 없던 남한산 트래킹

     

배차 시간이 길기에 우린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다가 시간에 맞춰 버스정류장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하필 그때 규빈이와 지민이는 화장실에 간다며 부리나케 달리는 것이다. 버스는 눈앞에 보일 정도로 가까이 왔기에 우린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놓치면 80분 정도를 다시 기다려야 하니 말이다. 버스가 가까이 왔을 때 우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통사정을 했고, 다행히 아이들도 거의 그 시간에 맞춰 버스에 왔기에 난처한 상황까지는 발생하지 않았다. 

보통 트래킹을 가면 3시 30분엔 끝났는데, 이번 같은 경우엔 꽤 멀리 가기도 했고 버스배차 시간도 길어서 끝나는 시간이 많이 늦춰졌다. 하지만 이렇게 야외활동을 나와 신나게 놀고 갈 수 있었기에 후회는 전혀 없다. 이제 다시 트래킹이 시작된 이상 다음 트래킹도 이번처럼 재밌게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디 다음에 계곡을 가게 되면 모든 아이들이 물에 들어가 신나게 놀 수 있기를 바란다. 



 ▲ 함께 했기에 즐겁던 그 날이 이렇게 끝났다.




과거 트래킹 기록보기        


14.03.21 서울 둘레길 트래킹

14.09.29 중랑천 트래킹

14.10.17 율동공원 트래킹   

14.11.14 여의도 트래킹

15.07.10 남산트래킹

16.03.11 통인시장 트래킹

16.03.25 롯데월드 트래킹

16.04.09 어린이대공원 트래킹

16.04.23 평화의 공원 런닝맨





목차     


1. 험난한 남한산성 가는 길

한 달 만에 트래킹을 가다

삼가 민석이의 넋에 애도를 표합니다

모임시간에 늦는 아이들에게 고함

9번 버스는 안전장치 없는 롤러코스트?     


2. 남한산성에서 여유를 부리다

맛살 하나를 먹어도 행복하던 시절의 이야기

밀림을 헤치고 국청사로 산책가다

태기와 성민이의 남한산성 탈출

아이들이 고기만 좋아하나, 배고플 땐 아니거든

    

3. 남한산 계곡에서 열정을 불사르다

남한산 계곡은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똘끼를 종점에 가득 채우다

남한산에서 뜻하지 않게 인디아나존스를 연출하다

남한산 계곡에서 노닐다

마지막까지도 긴장을 풀 수 없던 남한산 트래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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