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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un 21. 2016

건빵, 산에 살어리랏다

검단산 트래킹 1 (16.06.17)

시간은 자꾸만 흘러간다. 하지만 웃긴 점은 흘러가는 시간에 대해 의식하지 않으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가버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노래 가사에 많이 등장하는 게 ‘가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 같은 걸 거다.   



▲ 13년 10월 5일 한강에서 찍은 사진. 흐르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흔히 흐르는 강물로 표현되곤 한다.



             

살아지는 시간 살아가는 시간에 대해 

    

2016년이 밝았고 단재학교는 1월 마지막 주에 개학하며 2016학년도 1학기를 시작했다. 개학한 이후에 많은 변화들이 있었고, 많은 일정들이 있었다. 그렇게 닥쳐 있는 일을 하나하나 진행하다 보면 시간은 금세 흘러가게 마련이다. 어찌 보면 시간을 빼곡히 채워갔다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보냈다고 해서, 그 시간이 제대로 기억 속에 남게 되는 건 아니다. 곱씹지 않으면 시간은 기억의 저편으로 흐릿해져 사라져 가기 때문이다. 그저 주어진 대로 맹목적으로 살아내는 것이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도 모르면서 살아내는 것이기에, 이런 시간을 ‘살아지는 시간’이라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불연 듯 ‘지금 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하는 생각에 멈칫 하게 된다. 맹추위로 수도가 동파되었던 겨울이 지나가고 모기가 달려드는 여름이 다가왔음에도 무신경한 듯, 익숙한 듯 아무런 감흥도 없이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흘러 옷차림도 바뀌었고, 그에 따라 무수한 신경의 변화도 있었으며, 무언가를 하고 있는 만큼 바쁘게 살아왔지만, ‘지나간 건 시간이고 남은 건 허탈함’뿐이라 할 수 있다. 



▲ 계절은 그렇게 변했지만, 의식하지 않으면 묻혀 버린다. 그러나 그걸 의식할 때 느껴지는 감정은 허탈감이다.



허탈함이란 삶을 돌아본 자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다. 시간에 치이지 않고 삶에 눌리지 않는 그 순간에 우린 허탈함, 씁쓸함, 공허함이란 감정을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지만 그 최선이란 게 내 삶을 지탱해주거나 안도감을 주지 못한다고 느낄 때,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해나갔지만 그게 나에게 위안을 주지 못한다고 느낄 때 찾아온다. 바로 그런 감정이 느껴질 때, 지금까지 살았던 방식만이 정답이 아니며,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다르게 살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린다. 시간을 되돌아보며 내 생각에 따라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기에, 이런 시간을 ‘살아가는 시간’이라 표현할 수 있다. 

올해 들어서 격주 금요일마다 떠나는 트래킹을 이렇듯 기록하는 이유는 시간을 살아지려는 게 아니라,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어디든 떠나며, 일정에 따라 무엇이든 하게 되기에, 이런 식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반추해볼 수 있을 때 기억은 아련한 추억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의미를 담을 수 있게 된다. 그럴 때 우린 ‘살아간 시간’에 대해 다시 한 번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고, 놓치고 있던 순간들을 되살릴 수 있게 된다.                



▲ 이건 어떻게 보면 흘러가는 시간을 부여잡고자 하는 발버둥인지도 모른다. 부질없다 할지라도,해보련다.




검단산이 트래킹 코스로 정해지기까지

     

이번 트래킹의 목적지는 처음으로 산으로 정해졌다. 지금껏 트래킹을 시작하며 둘레길을 걸은 이후에 산을 간 적은 없었다. 천변에서 농구를 하거나, 공원에서 산책이나 런닝맨을 하거나, 계곡에서 쉬는 활동을 했을 뿐이다. 트래킹이라 하지만 거의 쉬는 것 위주로 활동하게 된 데엔 아이들 중에 걷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산은 엄두도 못 내게 되었고, 그나마 산 둘레길을 걷는 트래킹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검단산’으로 정해지며 참으로 오랜만에 산이 트래킹 코스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등산을 그렇게 싫어하는 아이들이 산을 트래킹 코스로 정한 이유는 순전히 무관심과 우연 때문이다. 3월에 첫 트래킹 코스를 정하며 1학기 트래킹 코스를 모두 정했었다. 그때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하나씩 의견을 내기 시작했고, 그 의견 중엔 ‘검단산’도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하나의 코스로 ‘검단산’이 나왔다면 바로 반발을 했을 텐데, 수많은 의견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서인지, 너무도 먼 미래의 일이란 생각 때문인지 아이들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얼렁뚱땅 그 의견은 사장되지 않고, 아이들의 무관심과 빨리 회의가 끝났으면 하는 마음속에 채택되기에 이른 것이다.                



▲ 3월에 1학기 트래킹 전체 일정을 정할 땐 아이들도 깊이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검단산이 정해졌다.




하라니까 산에 오르다 

    

실로 오랜만에 등산이 트래킹 코스로 잡히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영화팀의 경우엔 2012년과 2013년 2년 동안 자주 등산을 갔었다. 그땐 단재학교에 초임교사로 근무하던 시기였고 하나하나 영화팀의 방향을 잡아가던 시기였으니, 등산이 영화팀 커리큘럼에 들어가기까지 내 생각이 절대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부턴 그 이유에 대해 말해보도록 하겠다. 



▲ 과거 영화팀 등산 기록들.



전주 사람에게 친숙한 산은 뭐니 뭐니 해도 모악산이다. 학창시절엔 학교에서 모악산으로 자주 소풍을 갔기에 등산을 하게 됐다. 그 당시 남학생들은 ‘누가 정상에 빨리 올라가나?’라는 경쟁 속에서 등산을 했다. 그러니 아이들은 오르기 시작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쉴 새 없이 달리듯 올랐다. 이러하니 나에게 등산이란 ‘오르라고 하니까 힘들어도 참고 오르는 것’일 뿐이었다. 그래도 등산을 마치고 내려올 땐 나름 뿌듯하고도 상쾌한 기분이 감돌았고 ‘콜라 한 병을 사서 마시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콜라와 환타를 한 병씩 사서 배불리 마셨던 추억이 있다. 

이처럼 당시 등산이란 학교에서 하는 것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했던 것이고, 별로 좋은 기억 따위는 없었다.  



▲ 전주에서 맘만 먹으면 갈 수 있지만, 처음에 갈 때만해도 마지 못해 가는 정도였다.



              

재밌기에 산에 오르다 

    

힘들지만 참으며 오르기만 했던 곳이 재밌는 곳으로 바뀌게 된 것은, 대학생 때부터였다. 대학에 가선 더 이상 학교 차원에서 등산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런 상황이니 자연히 산과는 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해본 게 등산’이고 돈도 별로 없는 대학생이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등산이니, 자연스럽게 산을 찾게 됐던 것이다. 산에 오르며 여러 감정을 느꼈기에, 그 감정을 느끼고 싶을 땐 자연스럽게 산을 찾았다. 더 이상 아이들과 경쟁을 하듯 빠르게 오르지 않고 친구들과 오순도순 얘기하며 오르는 맛도 있었고, 그 시간을 오롯이 느끼며 순간을 음미하는 맛도 있었다. 


▲ 2004년 3월 1일에 모악산에 올라 찍은 사진.


아마도 그때부터 등산의 묘미를 알게 됐던 것 같다. 학창시절에 어쩔 수 없이 오르던, 경쟁적으로 오르며 괴로움을 느끼던 곳이 아닌,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도 만끽하고 속에 담아뒀던 이야기도 함께 나누는 즐거움을 느끼는 곳으로 변한 것이다. 그때부터 산을 억지로 찾아다니게 되었으며, 즐기며 오르게 되었다. 그래서 산은 놀이터이자, 친교의 장소가 되었다.                



▲ 모악산 정사에서 전주시내를 굽어보다.




살기 위해 산에 오르다 

    

그렇던 등산의 개념은 2007년을 계기로 또 한 번 변모하게 된다. 여유를 누리기 위해, 자연을 만끽하기 위해 오르던 등산이, 나를 살리기 위한 등산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2007년 2월에 졸업은 했지만 임용엔 보란 듯이 떨어지며 미래도 꿈도 없이 공부에만 매진하던 시기를 보내야 했다.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공부를 하는 그 마음을 아는가? 그리고 그 결과를 혼자만 짊어져야 하는 힘겨움을 아는가? 누가 보기엔 ‘돈도 벌지 않고 공부만 하니 팔자 좋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넉넉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결과도 불투명한 공부를 한다는 건, 피를 말리는 일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정신은 피폐해져 갔고, 불안증은 커져만 갔다. 바로 그때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고,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했다. 아마 그때부터 모악산에 자주 올랐던 것 같다. 그건 당연히 ‘살기 위한 발버둥’이라 할 수 있다. 등산을 하며 땀을 쭉 빼고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맹목적으로 걷다보면, 수만 가지 생각으로 혼란스럽던 머리와 온갖 불안으로 답답하던 가슴은 언제 그랬나는 듯이 멀쩡해지곤 했다. 거기에 정상까지 오르며 느꼈던 성취감은 덤이었다. 이랬기 때문에 그때부턴 미친 듯이 한 달에 두 번씩 모악산에 찾아갔던 것이다. 



▲ 2009년도에 정상에 올라 찍은 사진.



이렇게 산에 오르던 중 단연 최고는 2009년 임용고시가 끝났을 때라 할 수 있다. 2008년 임용고시에선 1차 합격자 발표 때 떨어지긴 했지만 가능성을 봤기에 2009년 임용고시엔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선지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1차 시험을 끝냈다. 그러니 시험이 끝났음에도 시원한 마음보다 착잡함이 어렸다. 어찌나 답답하고 막막하던지 이대로는 그냥 집에 갈 순 없었다. 그래서 차를 몰아 모악산으로 간 것이다.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우의를 챙겨 입고 무작정 올랐다. 그래야만 미칠 것 같은 마음이 정리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건 그만큼 등산의 개념이 많이 바뀌어서, 더 이상 내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 산에 대한 이런 감성이 얽히고설켜 2013년엔 지리산을 종주하게 했다.




아이들과 오르는 기쁨을 느끼러검단산에 가다

     

나에게 등산의 개념이 이렇게 바뀌어 갔듯이, 아이들에게도 그런 변화가 있기를 바라며 등산을 커리큘럼으로 넣은 것이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엔 ‘힘든 걸 뭐 하러 해?’, ‘올라가면 내려올 걸 뭐 하러 해?’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테지만, 어떤 식으로든 경험해본 것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 

오랜만에 산이 트래킹 코스로 잡히니 기쁘기도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오를 생각에 행복하기도 했다. 이게 바로 검단산 트래킹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 정말 오랜만에 아이들과 산에 오르게 됐다. 기대되는 산행기는 이제 시작된다.





목차 

    

1. 건빵산에 살어리랏다

살아지는 시간 & 살아가는 시간에 대해

검단산이 트래킹 코스로 정해지기까지

하라니까 산에 오르다

재밌기에 산에 오르다

살기 위해 산에 오르다

아이들과 오르는 기쁨을 느끼러, 검단산에 가다    

 

2. 학생들과 등산하기 위해선 교사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회장 지민이가 검단산 트래킹 계획을 짜다

제 시간에 모이는 학생들 & 그러지 못하는 학생들

산을 오르기 전부터 삐걱대다

한 아이의 불퉁거림이 전체 분위기를 망치다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으면 무엇이든 뚫지 못하랴

  

3. 짐작치 말기나답지 말기

일상의 단조로움을 깨는 제안에 아이들의 반응은?

‘당연히 그럴 것이다’의 함정

아이들의 반응에 나다움은 무너져 내렸다

나다움이 아닌, ‘우리 속의 나’를 찾다

  

4. 검단산이 준 선물

내가 안 하는 건, 모두 해선 안 돼

하류가 되길 지향하다

2013년 지리산 종주 이후 최초의 등산다운 등산을 하다

등산을 하며 ‘한 걸음의 중요함’을 배우다

강철체력 성민이의 등산법

모처럼만에 체력의 한계치를 느껴보다

아쉬움이 많지만, 그래도 뿌듯했던 검단산 트래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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