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섬 & 춘천여행 3 (16.05.11~13)
10시까지 왕십리역 경의중앙선 승강장으로 모이기로 했다. 지훈이와 현세는 조금 늦게 왔고, 준영이는 바로 가평역으로 온다고 하더라. 오늘은 작년 1학기 마무리 여행이었던 유명산 여행 이후 오랜만에 상현이도 함께 가기로 했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상현이 어머니에게 “12번 출구로 왔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요?”라고 전화가 오더라. 그래서 태기와 성민이와 함께 12번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거긴 선상역사로 들어오는 곳이니, 당연히 승강장 위에 있었고 우린 그걸 알 리가 없었다. 그러니 한참을 헤맨 후에 승강장에서 위로 올라가야 12번 출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바로 올라가 보니 개찰구 바로 앞에 상현이와 어머님이 서있더라. 상현이를 데리고 다시 승강장으로 내려오니, 그 사이에 늦었던 지훈이와 현세는 도착했고, 마침내 우리의 1학기 전체여행은 본궤도에 올랐다.
춘천에 가기 위해서는 왕십리역에서 중앙선을 타고 상봉역까지 간 후에, 상봉역에서 경춘선을 갈아타고 가야 한다. 2010년에 경춘선이 복선화되기 전엔 청량리역에서 경춘선 기차를 탈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2010년에 복선전철이 운행된 뒤론 더 이상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없어지게 되었고, 전철은 상봉역에서, ITX는 용산에서 출발하는 형식으로 이원화 되었다. 예전처럼 경춘선이 출발하던 청량리역도 아니고, 사람들이 많이 환승하는 왕십리역도 아닌 어중간한 상봉역이 경춘선 출발역으로 정해진 것이다.
그래서 경춘선을 애용하는 시민들은 출발역을 청량리역으로 환원해주던지, 아예 용산역까지 진입할 수 있도록 해주던지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나의 경우엔 경춘선 기차를 타본 적이 없으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 순 없지만, 적어도 왕십리역과 같이 네 개 노선이 겹치는 곳이 출발역이 아닌 것은 불편하게 느껴지고, 지하철 노선도를 잘 알지 못할 땐 착각하기도 했었다. 얼핏 보면 경춘선과 중앙선을 헛갈려서 ‘왕십리에서도 춘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구나’라고 착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년 겨울 민들레 읽기 모임에 참석하러 마석역에 가려 할 때, 왕십리에서 경춘선 전철을 타러 기다렸었다. 그런데 왕십리역에 도착하여 상황을 보고 나서야, 거기선 한 번에 춘천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부랴부랴 상봉역으로 갔던 경험이 있다. 이렇게 착각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출발역을 왕십리역으로 늘려주던지, 원래대로 청량리역을 해주던지 하면 좋을 것 같다.
경춘선은 지상으로만 달리기에 5월의 따스한 햇살이 만든 짙은 녹음을 음미하며 여행을 할 수 있다. 아침에 부산을 떠는 바람에 몸은 긴장되어 있었고, 피곤에 절어 있었지만, 그 순간 맑은 햇살과 온화한 기온은 온몸으로 받으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쯤 되니 ‘우울한 사람은 햇살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더욱이 어제 비가 와서 세상은 빗방울로 목욕을 한바탕 하고 난 뒤라 더 맑고 선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에 잔뜩 들떠 있는지, 여느 학생들처럼 들떠서 깔깔 거리며 웃고 떠들고 있다. 그리고 걔 중에 몇 명은 스마트폰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이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현세는 이 날 ‘tunes holic’이란 게임에 빠져 하루 종일 이 게임만 할 기세였고, 성민이는 늦게 ‘쿠키런’이란 게임에 빠져 어떻게든 ‘탐험가맛 쿠키’를 모을 기세였다.
어찌 보면 이게 자유분방하고 그저 노는 게 한참 좋을 때인 학생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세상에 대한 관심보다 주위 친구에 대한 관심이 많고, 장소를 이동하는 여행보다 한곳에서 친구와 오순도순 얘기하며 노는 것이 좋을 때이니 말이다.
햇살이 가장 좋은 5월에, 이런 아이들과 늦봄의 풍광을 여유롭게 누리며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이다. 가는 길에 보니 저 멀리 청평댐이 보인다. 2009년도에 한참 도보여행을 할 때 신청평대교를 건너며 청평댐을 봤었다. 그걸 무려 7년이나 지나서 이젠 전철을 타면서 보는 것이니, 기분이 남다르다.
1시간 정도를 달려 가평역에서 내렸다. 당연히 가평역 앞에서 승태쌤과 준영이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준영이는 보이지 않고 승태쌤만 계시더라.
시간이 11시 50분이 넘었기 때문에 점심밥부터 먹기로 했다. 그래서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에서 내렸다. 예전 가평역은 터미널 바로 뒤편에 있었기에 훨씬 접근성이 좋았을 것이지만, 지금은 조금 외곽에 있기에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
그곳에서 아이들에게 뭐 먹을지 물으니, 중화요리를 먹자는 의견과 닭갈비를 먹자는 의견으로 양분됐다. 하지만 터미널 바로 근처에 닭갈비집이 보였기에, 거기서 먹기로 했다. 그런데 이날은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음식점은 열지 않은 상황이었다. 원래 매주 수요일마다 쉬는 것인지, 아니면 장사가 안 되어 문을 닫은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래서 터미널 옆쪽을 바라보니, 닭갈비집이 있더라. 가격도 1인분에 9천원이면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고, 아주머님도 “이곳은 다른 곳에 비해 양도 많아요”라고 말하시니, 이래저래 정말 맘에 들었다. 4명씩 한 테이블에 앉았는데, 우리 자리엔 태기, 지훈이, 상현이가 함께 앉았다. 이 나이 때 아이들이 그렇듯이 ‘닭 한 마리는 거뜬히 먹을 수 있을 정도이고, 심지어 돌까지도 우지끈 씹어 먹을 정도로’ 먹성도 좋고 소화력도 최고일 때라, ‘부족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먹다 보니, 누구 하나 부족함 없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양이 정말로 많았다. 닭갈비를 한참 먹고 있을 때 준영이가 왔다.
우린 먹는 것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태기는 “닭갈비는 다 먹지 말고, 조금 남겨놔야 해요. 조금 있다가 볶음밥을 비빌 때 닭갈비가 있어야 더 맛깔나거든요”라며 재차 강조하더라. 그래서 닭갈비를 조금 남겨 놓고 닭갈비를 시켰는데, 그곳 아저씨는 남은 닭갈비와 채소는 모두 개인접시에 덜어주시고 밥만 볶았다나 뭐라나. 암튼 2012년에 『다름에의 강요』라는 영화를 촬영하러 춘천애니메이션박물관에 들러 닭갈비를 먹어본 이후 3년 만에 다시 먹어보니, 역시 맛있긴 하더라.
작년에 가평 도마천으로 1학기 마무리 여행을 왔을 때, 마트에서 장을 보면 펜션까지 무료로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게 매우 이색적인 상황처럼 느껴져서 ‘여기선 이런 식으로 마트에서 픽업 서비스까지 해줘야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가 보다’라는 생각을 얼핏 했었다. 그런데 펜션 뿐만 아니라 남이섬 선착장에 갈 때도 이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여긴 ‘마트를 이용하여 어느 정도의 금액 이상을 쓴다면 당신이 가고 싶은 곳까지 픽업해 드립니다’라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가평은 자가용이 없는 대학생들이 여행을 와서 1박 2일 동안 머물다 가는 곳이다 보니, 마트들도 이런 식의 영업 전략을 만들게 됐을 것이다. 그런데 궁금한 점은 이런 식의 ‘마트 픽업 서비스’는 가평에서만 볼 수 있는 걸까? 아니면 다른 유명 관광지에도 있는 걸까?
초이쌤은 여학생들과 마트에 남이섬에 머무는 동안 먹을 것들을 사러 갔다. 그 때 남학생들은 마트 주차장에서 뙤약볕이 내리쬐는데도 불구하고 공을 차며 놀기 시작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뻘뻘 날 지경이었는데, 아이들은 지치지 않는지 서로 공을 패스해주며 놀더라. 보통 때 같았으며 ‘가만히 있을래요’, ‘볕이 너무 뜨거워요’라는 군소리를 하며 극렬히 저항했을 텐데, 이날은 아무 말도 없이 신나게 놀기만 했다. 그럼에도 지훈이와 준영이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마트 의자에 앉아 오후의 나른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장을 다 보고나선 마트에서 지원해주는 버스를 타고 남이섬 선착장까지 이동했다. 그곳은 티비에서 익숙히 보아오던 곳이니 만치, 번지점프대나 짚와이어가 낯익었다. 평일인데도 역시나 사람들은 정말로 많더라. 주차장이 유료 주차장이었기에 버스는 갓길에 우리를 내려줬고, 우리는 싸온 짐들을 양손에 바리바리 들고 선착장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건 마치 캠퍼스의 낭만을 느끼러 가평에 MT를 온 것 같은 모양새라고나 할까. 아이들에게 어찌 보면 이번 여행은 꼭 대학생이 된 것 같은 선체험의 장인지도 모른다. 지금 경험한 것들이 어느 순간 다시 이곳에 왔을 때 새록새록 떠오르며 한껏 추억으로 인도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