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0일(목)
화보에 나오는 아스타나Астана는 엄청나게 번화하고 높은 건물이 즐비한 곳이었다. 그래서 97년에 수도를 이전하며 건설된 신도시답게 역 부근도 신도시의 위용이 드러나리라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역 근방에 다다랐음에도 허름한 공장만 보일 뿐, 높은 빌딩과 신도시의 깔끔한 모습은 어디에도 볼 수 없더라. 그래서 조금 실망했다.
하지만 이런 첫인상조차 기본적인 상식도 없는 나의 소치였을 뿐이었다. 아스타나는 수도 이전부터 이미 있던 도시였으니 말이다. 아스타나는 알마티 북쪽으로 1318㎞ 떨어져 있으며, 이심강Ishim River(시베리아 벌판에서부터 아스타나 한 가운데로 흐르는 강)의 동쪽에 위치한 소도시였다. 우리가 도착했던 역은 수도가 되기 이전에 건설된 역이었기 때문에 구도심에 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주변에 보이는 것들은 낡고 오래되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카자흐스탄은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했다. 이미 밝혔다시피 알마티에 모인 CIS 대표단이 독립을 선언함으로 소련은 붕괴되었다. 독립되면서 지금까지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Nursultan Nazarbayev(1940~ )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나 조선이 건국되면, 수도 이전 문제가 부각되곤 했다. 특히 무신세력으로 얼떨결(?)에 정권을 쥔 태조 이성계의 경우, 수도 이전 문제는 더욱 절실했다. 수도 이전은 여러 정치적인 의미를 지닌다. 왕건이나 이성계의 경우, 토호세력을 견제해야할 명분이 있었다. 그러려면 그들이 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그 당시의 수도에서 아등바등해서는 승산이 없다. 그럴 때 단행할 수 있는 조처는 수도를 옮기는 것이다. 자신의 왕조가 지닌 색채를 계획도시 속에 녹여낼 수 있으며, 중심지를 옮기면서 호족세력의 힘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 때문에 천도遷都 문제는 민감한 문제인 것이다.
카자흐스탄도 1997년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수도를 옮겼던 것은 여러 다양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첫째, 가장 단순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가시적인 성과물을 한 도시 전체에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이건 여느 정치인이든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것이리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열심히 한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 가시적인 성과물을 내어 인지도를 높이고 싶으니 말이다(실제 청계천 복원공사로 누군가의 인지도는 급상승했듯이). 이처럼 카작 대통령도 한 도시 전체에 자신의 정치적인 이상과 성취를 가시화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양이란 도시가 정도전이 생각한 유교의 이상을 가시화한 공간이었다면, 아스타나의 신도시는 나자르바예프가 꿈꾸는 카자흐스탄의 이상을 가시화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카자흐스탄의 분리독립을 막고 러시아와의 화친을 도모하기 위해 천도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은 “카자흐스탄 북부를 러시아에 귀속시켜야 한다”는 말로 국경문제를 제기했고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담판지어 다시는 그런 얘기가 나오지 못하게 했단다. 하지만 수도가 남쪽으로 치우쳐 모든 경제, 정치, 문화가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도 이전 문제가 대두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북부에 살던 민족의 대부분은 슬라브 민족이며 북부에 텅스텐, 석유 등 자원도 풍부하기 때문에 자원도 지키고 카자흐스탄이 분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도를 옮겼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마치 연암이 쓴 『열하일기』에서 말한 상황과 비슷해 보인다. 여름이면 청나라 황제는 열하의 피서산장으로 휴가를 떠나곤 했다. 얼핏 보면 수도를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휴식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연암은 그 속내를 간파하며 ‘이번에 내가 열하의 지세를 살펴보니 열하는 천하의 정수리 같았다. 황제가 북쪽으로 거동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골통을 깔고 앉아서 몽골의 숨통을 움켜잡자는 것이었을 뿐이다(今吾察熱河之地勢, 葢天下之腦也. 皇帝之迤北也, 是無他, 壓腦而坐, 扼蒙古之咽喉而已矣. 『熱河日記』 「黃敎問答」)’라는 말한다. 이처럼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천도와 청나라 황제의 피서가 속내에선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만들어진 신수도 아스타나를 보기 위해 우리들이 온 것이다. 과연 어떤 곳일지 정말 궁금하다.
역에서 나와 혜린이와 잠시 헤어져야만 했다. 혜린이는 속이 좋지 않아, 굴심쌤 언니댁에서 쉬며 저녁을 먹으러 갈 때 같이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역 밖으로 나오니 우리의 발이 되어줄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타고 시내 한복판에 들어섰다. 21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곳에도 카자흐스탄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구도시는 역시나 오래된 도시 같은 느낌이 났다. 하지만 이심강 서쪽의 신도시는 전혀 다른 세상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