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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Apr 04. 2019

연암의 글에 반하다

연암 박지원이 알려준 한문공부의 재미 2

지금껏 길게 말했던 ‘본질로서 글 읽기’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해준 사람이 바로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이다.                




잘 안다고 착각했다     


웃긴 것은 이때까지 연암의 글을 여러 번 읽어왔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땐 시험을 보기 위해 뜻을 해석하기에 바쁘다고 생각한 나머지 막상 속뜻을 알려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호질虎叱』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허위의식을 여지없이 비판하는 내용이었을 뿐이었고, 『허생전許生傳』은 조선 경제의 빈약함을 드러내는 내용이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정해진 정답만을 찾아가는 식으로 글을 읽었으니, 연암과 마주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과정을 지나 다시금 글로 만난 연암은 상상을 초월하는 깊이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니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정도전, 송시열)이 내세우는 ‘문이재도文以載道(글이란 자질구레한 것을 적는 용도가 아닌, 옳은 도리만을 적는 용도여야 한다)적인 글’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문이재도론조선시대의 미디어법     


아래의 글은 ‘문이재도적인 글’이 어떤 글인지 조선의 실제 건국자인 정도전鄭道傳(1342~ 98)이 설명하고 있는 글이다. 참고하여 보도록 하자.           



해와 달과 별은 하늘의 무늬이고, 산과 천과 풀과 나무는 땅의 무늬이며, 시서와 예악은 사람의 무늬이다. 그러나 하늘은 기로 드러나며 땅은 형체로 드러나며 사람은 도로 드러내는 것이기에 “글이란 도를 싣는 그릇이다”라고 한 것이다. 

사람의 무늬가 올바른 도를 얻으면 시서와 예악의 가르침이 천하에 밝아져서 해와 달과 별의 운행이 순조로워지고 만물이 골고루 다스려 진다.  

日月星辰天之文也; 山川草木地之文也; 詩書禮樂人之文也. 然天以氣; 地以形; 而人則以道. 故曰文者, 載道之器, 言人文也, 得其道, 詩書禮樂之敎, 明於天下, 順三光之行, 理萬物之宜. -鄭道傳, 「陶隱文集序 


         

이 글에서 인간의 무늬는 글이란 양식을 통해 표현되며 그 글이 제대로 표현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천지자연의 흐름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단순히 황당한 논리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만큼 글이 지닌 힘을 자각하고 있다고 보아야 맞다. 조선의 학자들은 자연과 자연의 일부인 인간을 늘 연결 지어 사고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문이재도적인 글’은 나름 글에 대한 하나의 관념을 체계화한 문장론이라 할 수 있다. 즉, 하나의 문장론으로 보자면 손색이 없을 정도로 괜찮은 문장론이란 이야기다. 하지만 조선이 임란(1592~98)과 호란(1636~37)을 겪은 후에 소중화小中華를 중시하는 왜곡된 성리학이 문학의 모범으로 자리 잡으며 ‘문이재도적인 글’만 써야하고 나머지 방식의 글은 극심한 탄압을 받게 되었다는 점이 문제다. 한 가지 형식의 글이 특권적인 위치에 오르자 다른 양식의 글들을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 낙인찍혔을 뿐 아니라 현실적인 불이익까지 감당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글의 생기발랄함은 사라져 갔고, 하나 같이 대의만을 드러낸 글만이 자리하게 되었다. 더욱이 이러한 글들은 논술 답안지처럼 정형화되어 누가 썼는지 분간이 힘들 정도로 엇비슷한 내용만을 담게 되었던 것이다.                



▲ 정도전이 문이재도론을 말했던 의도와는  달리 조선중기엔 모든 문장론을 옥죄는 기준점이 되었다.




연암의 글 속엔 연암이 살아 있다     


이런 식의 글만이 유행하던 조선 후기에 연암은 문이재도적인 글을 쓰지 않고, 일상의 자질구레한 이야기부터 인간의 다양한 정감까지 자유롭게 써나가자는 패사소품체稗史小品體로 글을 썼다. 물론 그의 글은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다. 매우 유학자처럼 천리를 운운하는 글이 있는가 하면 『열하일기』 같이 파격으로 점철되어 그의 친한 친구들까지도 받아들일 수 없어 원고를 태워버리려 했던 글도 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이니 연암은 정조를 비롯한 양반들에게 미움을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연암의 글엔 연암만의 문사철이 살아 숨 쉬며 그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살아 있었다. 글이 생기 가득하여 읽는 순간 가슴이 뛰고, 유머 가득하여 절로 웃음이 나며, 삶의 절박함을 절실히 표현하여 가슴 조리며 읽게 된다. 이쯤 되면 연암이 피력한 ‘아프게 하지도 않고 가렵게 하지도 않고 구절마다 호황되며 우유부단하다면, 그런 글을 어디에 쓸 수 있겠는가?不痛不癢, 句節汗漫, 優游不斷, 將焉用哉 -『過庭錄』4’라는 문장관이 결코 빈말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니 연암의 글에선 연암의 뜨거운 가슴과 쿵쾅쿵쾅 뛰는 심장소리가 느껴져서 희열을 느끼며 그의 글을 탐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은 어찌 보면 연암의 글을 읽으며 느낀 감정을 공유하자는 취지로 쓰게 되었다. 다음 편부터는 문학의 발생조건, 그리고 그런 이론들을 토대로 연암의 글이 지닌 특징과 시대에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런 과정을 함께 하며 우린 연암 선생님을 통해 한문공부의 재미를 물씬 느끼게 될 것이다. 



         

▲ 열하일기는 당시의 문제작일 뿐만 아니라 절친들까지도 이해하지 못한 과격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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