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May 21. 2020

공부가 하고 싶다

금지된 욕망, 그리고 한문공부1

시험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공부하고 싶다’라는 말이 얼마나 황당한 말인 줄 알 것이다. 그건 마치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했더니 서울대 들어갔어요.’라는 말이나 ‘열심히 살았더니 기우가 집을 사서 아버지가 지하실에서 나왔어요(영화 『기생충』).’라는 말처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말이다. 

공부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해야만 하니 하는 것이고, 재미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결과를 내야하니 하는 것이다. 그러니 때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렇게 볕도 좋고 꽃도 한가득 핀 날에 좁은 책상에 틀어박혀 책과 씨름이나 하고 있나’라는 자괴감이 들고, ‘내가 합격만 해봐라 책엔 더 이상 손도 대지 않는다’는 희망을 꿈꾸기도 한다. 이처럼 공부를 하려 맘먹은 때부터, 시험을 위한 공부를 시작한 때부터 공부는 하기 싫고 언제든 관두고 싶은 것이 되기 마련이다.                



▲ 좁은 공간에 갇혀 세상을 만나는 순간들이다.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는 때라 어쩔 수 없다.




금지된 욕망     


재밌는 실험이 있다. 이른바 ‘하지마!’라는 실험이 그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부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하면 그 말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머릿속엔 ‘코끼리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 설화에 담겨져 있듯 “절대 뒤를 돌아봐선 안 돼!”라고 하면 평상시 잘 돌아보지도 않던 사람이 이때만큼은 이상하게도 뒤를 돌아보고 싶어지게 된다. 그러니 성경에선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는 와중에 그곳을 탈출하던 롯의 가족은 뒤돌아보지 말라는 신의 명령에 따라 잘 도망가는 듯했지만, 결국 금지된 욕망을 참지 못하고 롯의 아내가 뒤돌아보아 소금기둥이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됐던 것이다. 



▲ 금기를 어기면 그에 따른 형벌을 받게 된다. 소금기둥으로 변한 롯의 아내.



또한 판도라의 이야기도 이와 마찬가지다. 제우스는 신 헤파이스토스(공예기술자, 대장장이)를 불러 여자인간을 만들도록 하자 판도라Pandora(모든 선물을 받은 여자)라는 여자를 만들어낸다. 그러자 제우스는 판도라의 탄생을 축하하며 상자를 주면서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는 금기의 말을 남기게 된다. 그런 금기의 말은 판도의 뇌리 속에 깊숙이 박혔고 열어보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욱 자신의 발걸음을 상자 앞으로 끌어들이는 마력을 갖게 했다. ‘도대체 저기에 뭐가 있기에 열어보지 말라고 한 거야?’라는 작은 호기심은 들불처럼 타올라 존재를 뒤덮기 시작했고 결국 프로메테우스의 동생과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와중에 어느새 커질 대로 커진 궁금증을 스스로 참지 못하고 상자를 열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자 그 상자에 있던 온갖 나쁜 감정들, 질병들과 같은 것들은 모두 다 빠져 나왔을 때 화들짝 놀라 상자를 닫는 바람에 마지막 남아있던 희망만이 상자 속에 고이 남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세상엔 희망을 뺀 부정적인 감정들과 온갖 질병들만이 창궐하는 암흑세상이 된 것이다. 

이처럼 ‘~하지마!’라는 언명은 단순히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욕망을 낳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차라리 그 말 자체를 하지 않았다면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볼 일도, 판도라가 상자를 열어볼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금기어로 제시된 순간부턴 오히려 크나큰 욕망으로 돌변해 깨고 싶고 범하고 싶은 것이 된다.                



▲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의 그림 『판도라Pandora』, 1896년 작품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올해 전 세계는 코로나 전염병으로 유래 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사람은 대중과 만나서 함께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이 시기만은 사람을 가급적 만나지 말라고 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협동학습이 학생들의 정서발달 및 인지발달에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던 사람들도 지금만은 개별학습을 하며 교사 중심의 강의식 수업이나 온라인 수업을 하도록 권장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처럼 코로나는 사회의 기본 가치조차 한순간에 바꾸며 하기를 권장하던 사회에서 ‘만나지 마!’, ‘모이지 마!’, ‘면대면으로 이야기 나누지 마!’와 같이 금지가 일상이 된 세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나 때가 되면 당연히 문을 여는 도서관이나 여러 공공장소들은 문을 닫기에 이르렀고 3월이면 늘 입실을 허용해주던 임용고시반은 여러 차례 미룬 끝에 결국 1학기 임고생 반원 모집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  코로나는  전세계를 바꿔놓았으며 함께 모여사는 것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올해는 1월까지 시험을 보느라 ‘공부’와 ‘합격’이란 생각 외엔 한숨조차 돌릴 여지가 없이 마구 달려야 했다. 당연히 시험이 끝나고 나니 긴장은 순식간에 풀릴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한문공부는 더 이상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였다. 더욱이 2월에 나온 최종 결과는 ‘불합격’이었으니 한동안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한동안 한문과는 척진 사람처럼 행동한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더욱이 임용고시반 모집은 3월에나 하게 되니 한 달 가까이는 놀 수 있다고 생각하여 원 없이 놀았고 정말 오랜만에 게임 삼매경에 빠져 ‘오리ori’ 1편과 2편을 모두 다 깨고 그토록 하고 싶었던 ‘블러드 스테인드(Bloodstained: Ritual of the Night)’까지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만큼 임용공부를 시작하면서 한 번도 맘먹어본 적 없는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고 마음을 다잡기 위한 휴지기를 둘 수 있었다. 



▲ 오랜만에 게임의 세계에 흠뻑 빠졌다. 동화 같지만 엄청난 컨트롤을 요구하던 게임.



하지만 그땐 몰랐다. 당연히 3월이 되면 임용고시반에 다시 들어가게 될 줄 알았고, 3월이 되면 다시 김형술 교수가 진행하는 한시 스터디가 진행될 줄 알았다. 그리고 그에 따라 마음을 다잡고 한문공부를 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예년이면 으레 진행되던 모든 것들이 좌초될 줄이야. 학교가 개강을 하지 않으니 김형술 교수의 스터디가 진행될 리 만무했으며 당연히 반원을 모집할 줄 알았던 임고반도 사실상 개점휴업을 하게 됐던 것이다. 그렇다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할 수 있냐 하면 위에서 말했다시피 열람실이 모두 문을 닫으며 그 또한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때 매우 재밌는 상황이 펼쳐졌다. 모든 게 금기가 되고 공부조차도 쉽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하지마!’라는 실험처럼 저절로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는 사실이다. 갑자기 한문이 죽도록 보고 싶어졌고 한시 스터디도 죽도록 하고 싶어졌다. 때론 봐야만 하니 보던 원문들도 해석을 하며 보는 재미가 있었으며 시간이 아까워 보는 척이라도 해야 했던 한문관련 서적들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작년까지처럼 임고반에 앉아, 도서관에 앉아 편안하게 공부할 순 없었지만 제한된 상황 속에서 하나하나 해나가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단지 아쉬운 건 한시 스터디가 언제 시작될지 모른다는 거였는데 하지만 이 또한 김형술 교수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하며 저번 주부터 시동을 걸어서 마침내 본격적으로 진행되게 되었다. 금지되었기에 공부가 하고 싶어진 인생의 아이러니, 올해의 공부는 이런 아이러니를 만끽하며 시작하게 됐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이렇게 적막이 흐르는 진리관이라니. 늘 불야성처럼 켜져 있던 임고반의 불도 벌써 몇 달째 꺼져 있다.


          

인용

목차     

매거진의 이전글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