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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May 22. 2020

천하의 곤궁한 백성인 노인을 시로 담아내다

금지된 욕망, 그리고 한문공부4

그 다음으로 「노인행老人行」이란 시에서 뜨거웠던 문제는 노인은 과연 결혼하여 자식까지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결혼도 하지 못한 독거노인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 이 시의 노인을 보고 있으면 영화 '워낭소리'의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노인은 미혼인가     


이 시를 해석하며 여러 번 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노인이 결혼하여 아이들까지 있다고 보긴 어려웠다. 우선 1구의 ‘치쌍비雉雙飛’라는 말을 통해 꿩이 쌍쌍이 날아가는 모습을 아련히 보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보였다. 보통 시에서는 쌍으로 나는 새를 묘사하여 자신의 외로움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을 펴곤 한다. 같은 작가가 쓴 「채련곡採蓮曲」에서도 ‘원앙쌍비鴛鴦雙飛’라는 구절을 써서 연밥 따던 처녀가 질투하는 모습을 형용했으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리왕의 「황조가黃鳥歌」에서도 새와 자신을 대조하며 자신의 외로움을 더욱 극대화시키고 있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치쌍비雉雙飛’는 자신의 홀로됨을 극대화하는 표현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더라도 아내나 자식들의 그림자는 조금도 엿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짧은 내용일지라도 어느 부분에선 그림자만이라도 등장할 법한데도 아무리 봐도 그들의 체취는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 구절에 이르러 돌밭을 가는 순간에 이르러 쇠발굽이 빠져 먕연자실하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자식들이 정말 있었다면 함께 농사를 지으며 도와줄 수 있을 텐데도 자식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바로 이런 세 가지 사례들을 통해 노인은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일흔 살이 된 노인으로 결론지은 것이다.                       





▲ 쌍쌍이 나는 새가 묘사된 건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미혼일 때와 기혼일 때의 해석 차이     


바로 이와 같은 결론 때문에 ‘남혼녀가지기시男婚女嫁知幾時’라는 구절이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바로 자신의 젊었을 적 이야기라는 걸로 유추하게 되었고 ‘젊은 시기에 손발이 동상 걸리고 얼굴은 매우 타는 힘겨운 생활 때문에 남자는 장가가고 여자는 시집가는데도 내가 어떻게 장가갈 생각이나 했겠는가?’라는 말로 풀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도 그다지 매끄럽진 않았기 때문에 스터디에서 이걸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스터디에 와서 이야기를 나눠 보니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가 자식을 시집 장가보내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했더라. 그렇게 해석하면 ‘아들 딸 시집 장가가는데 그때 언제인지 알 수 있으랴?’라는 말이 된다.                       





이처럼 노인의 현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완전히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김형술 교수도 여기에 대해선 충분히 생각할 만한 거리라는 걸 알려주며 여러 자료를 찾아보고 결론을 지어야 한다고 말해줬다.                




천하의 궁민이었던 노인을 보는 안쓰러운 성간의 심정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만약 노인이 미혼이라고 한다면 기혼일 때에 비해 비감은 더욱 짙어진다고 말해줬다. 노인은 왜 결혼도 하지 못한 채 늙어가야만 했던가? 그건 두 말할 나위 없이 가난했기 때문이다. 가난하니 손발이 동상 걸려 트고 얼굴이 새카매지도록 일만 해야 했고 그저 무릎만 가릴 정도의 홑옷 누더기만 걸치고 근근이 살아야했던 것이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라도 살아갈 수 있었다면 동네처자를 자연히 만나게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히도 젊은 날에 징집되어야 했고 고향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백발이 성성해지고 만 것이다. 즉, 그의 젊음은 가난과 군역에 완전히 희생당하고 말았다. 이 얼마나 서글픈 이야기인가? 그런데도 새로운 세계를 열겠다며 정도전 같은 신진사대부들이 의기투합하여 열어젖힌 조선이란 사회는 전혀 책임도지지 않고 일말의 가련하게 여기는 마음조차 가지고 있지 않으니 분통이 터질 만한 일이다. 

『맹자孟子』에서 ‘환과고독鰥寡孤獨’을 말하며, 이들이야말로 ‘천하의 곤궁한 백성들로 하소연할 곳도 없는 사람들이니 문왕이 정치를 펴고 인정을 베풂을 반드시 이 네 명의 사람들에게 급선무로 했었다(天下之窮民而無告者. 文王發政施仁, 必先斯四者)’라고 말했다. 노인이 미혼인 상황이라면 노인이야말로 ‘독’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먼저 돌봐야할 궁민窮民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궁민으로서의 노인을 보는 성간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그러니 이와 같은 시를 남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리라.           



▲ 정치를 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돌봐야 할 네 부류의 사람들. 환과고독.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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