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0(일)
스터디는 9월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예전에 『소화시평(小華詩評)』을 할 때처럼 3시간 정도 진행되며 6~7개의 문장을 보는 정도로 힘들게 진행되진 않지만 빠지지 않고 잘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스터디 발표를 맡게 되었고 작품은 허격의 「힐양리(詰楊吏)」로 결정되었다. 지금은 단어장도 마련이 되었고 왠만한 산문작품들도 거의 해석했다 싶었기 때문에, 새로운 문장을 보는 게 부담스럽지만은 않다. 새로운 문장에 나오는 전고(典故)들은 이미 태반이 이미 마련해놓은 자료들에 실려 있기에 그걸 참고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기양양하게 한시에 달려들어 읽기 시작했다. 왠만하면 읽을 때 어느 정도의 글을 쓴 윤곽이 보이게 마련인데, 이상하게 이 시는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감조차 잡히지가 않더라. 생소한 전고들이 한 가득 들어 있는 데다가 한시의 길이도 길다 보니 어느 곳에서도 방향을 잡기가 힘들었다.
이런 게 바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른다’는 말이겠지. 호기롭게 달려들었다가 보기 좋게 주저앉아야 했으니 말이다. 스터디를 준비할 수 있는 날은 스터디가 끝난 화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5일의 시간이 주어져 있었다. 한 작품을 준비하기에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이렇게 감조차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다가 제대로 준비하지 못할 게 뻔했다.
물론 해석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한다거나, 임용 시험을 앞둔 지금 비관적인 생각을 한다거나 하진 않는다. 당연하지만 한문공부를 다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력이 없는 게 너무도 당연한 것이며, 오히려 이런 식으로 감조차 잡지 못할 문장을 공부하게 되는 건 행운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터디를 하면 좋은 점이 있다. 더욱이 나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한 사람과 한다는 건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엉터리로 해석을 해가고 어설프게 내용을 이해해서 갈지라도 그걸 바로 잡아주고 그에 대해 함께 고민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해석본을 봐가며 스터디를 준비하지 않고 내 실력 그대로를 노출하며 준비하게 된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문장을 보는 데도 도무지 내용이 뭔지도 모르겠더라. 5~6번 정도를 훑어봤는데도 제대로 해석되는 부분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데 어느 단서 하나조차 잡고 있지 못한 상황이라 마음은 조급해졌다. 그래서 이때쯤엔 조금이나마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참고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조시대 서사시』라는 책엔 해석도 잘 나오지만 그보다 더 값진 주들도 달려 있다. 그러니 한문 원문을 공부하는 사람에겐 이만한 책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주(註)는 모두 참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될 수 있으면 주조차 보지 않고 내가 풀어가고 싶었는데 도무지 풀릴 기색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재밌는 사실은 겨우 주(註)만을 참고했을 뿐인데, 매우 많은 부분들이 풀렸고 어느 정도 내용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조금이나마 감을 잡고 해석을 하기 시작했고 머리 속에 그려지는 내용으로 이야기를 전개해가며 해석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더 재밌는 사실은 조금 실마리가 풀렸다 하더라도 풀리지 않는 게 더 많다는 사실이다. 중간중간에 턱 하니 막히는 부분이 있었고 ‘도대체 이런 구절은 왜 쓰여 있는 거지?’라는 한탄마저 나올 지경이었다. 1/3만 해석한 채 2/3는 그대로 방치하고서 시간을 더 보내야만 했다. 마음은 빨리 해석을 마치고 싶은데도 전혀 해석이 안 되니 멈춰서야 했던 거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그저 시간과 함께 이 문장을 곱씹어야 하는 것이고, 여러 가지로 생각을 갈무리 지으며 뭔가가 떠오를 때까지 몰아붙여야 한다. 보고 또 보고, 마치 드라마 제목처럼 이 시와 친해지도록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이런 우여곡절을 통해 스터디 준비의 마감날인 어제 점심 때쯤에야 가까스로 마칠 수 있었다. 물론 어색하게 해석된 부분은 어색하게 해석된 그대로 놔둔 채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최선을 다해 해석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해석 자체가 어설픈 게 사실이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솔직한 지금의 내 실력일 테니 부끄럽게 생각하진 않으련다. 그리고 이렇게 끈기를 가지고 해석이 될 때까지 해석본을 보지 않은 것에 박수를 보낸다.
해석을 모두 마치고 관련된 문제를 3개나 출제한 후 자료를 배포하고 나니 5일 간 긴장하고 있던 것들이 풀어졌다. 얼마나 이 시에 해석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었는지 알 만한 순간이었다.
이 스터디는 올해 5월부터 시작하여 벌써 10회나 진행되었다. 그 기간 동안 내가 발표한 한시는 성간이 쓴 「노인행(老人行)」과 송순이 쓴 「전가원(田家怨)」, 두 작품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한시의 길이도 짧을뿐더러 내용도 어렵지 않아 준비를 하는데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다가 이번에 제대로 어려운 작품을 만나 며칠 끙끙 앓다가 끝내고 보니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들더라. 공부란 알기 위해, 해석하기 위해 애쓴 만큼 그만큼 더 값어치 있게 다가오며 그만큼 나의 실력으로 쌓여간다는 걸 말이다. 물론 그런 과정을 겪어내는 건 결코 쉽지 않지만 이런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면 한문에 있어서 더욱 자신감이 붙을 것이다. 그런 기대를 품으며 공부할 수 있다면, 한문 문장을 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이번 주 화요일의 스터디가 무척이나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