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을 발견하는 순간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선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나 자신으로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유채꽃은 유채꽃으로, 억새는 억새로 태어나 자라난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는 나로서, 너는 너로서 말이다. 그러니 어쩌면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유채꽃은 싹이 나고 줄기가 올라오고 봉오리가 맺히고 꽃이 피고 그 꽃이 질 때까지 전부 유채꽃이다. 어느 한순간이라도 유채꽃이 아닌 순간이 있을까. 다만 꽃과 나무와는 다르게 사람은 때때로 자신을 잊고 헤매는 순간도 있는 것 같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무엇이 '나다움'을 안개처럼 자욱이 가려서 들여다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일까.
2017년 2월. 어쩌면 내 생애 큰 사건이 발생했다. 35년 동안 살던 서울을 떠나 제주도로 내려온 것이다. 인생에서 한 시기 정도는 자연이 아름다운 곳에서 지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제주를 여행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한 카페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제주에서 지낸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옥빛의 선명한 바다가 집 앞에 바로 있고 눈 앞을 가로막던 빌딩들도 하나 없이 뻥 뚫린 시야는 그렇게 가슴을 확 트이게 만들 수 없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자 처음의 이 감정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이미 서울에서 3년간 카페 매니저로 일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흔쾌히 일을 수락했지만, 주 6일 근무에 홀로 커피를 담당하는 것이 힘겹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없으면 커피를 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그리고 일을 함께 나눌 다른 동료가 없다는 것에 점점 압박감과 부담감을 갖게 되었다. 매일 그림 같은 바다를 보며 출근했지만 왕복 70km의 거리를 서둘러 가기 바빴고,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너무나 멋진 노을이 하늘에 펼쳐졌지만 그 노을을 보며 당장 드는 생각은 '난 지금 너무 배고프고 힘들어!'였다. 일주일에 단 하루 있는 휴일은 늦잠과 낮잠, 일찍 잠드는 것으로 훑듯이 지나갔다. 결국 그 해를 다 넘기기도 전에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카페에서 제공받은 차를 반납하고 버스를 타며 집으로 돌아오던 날, 떠오르던 감정은 '좌절'이었다. 한동안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제주를 찾은 지인들에게 연락이 와도 받고 싶지 않았다. 처음 카페에서 제안한 대로 모든 것을 완벽히, 그리고 더 크게 키워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완벽한 실패였다.
며칠 동안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그저 하릴없이 집 앞바다를 걸었다. 출근길마다 아름답게 보였던 바다를 눈으로만 볼 수 있었는데, 일을 그만둔 후에야 이렇게 직접 걸어볼 수 있다니 이걸 좋아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나 스스로도 모를 감정이었다. 자연스렇게 두 발은 사람이 몰리는 해변가보다는 마을 뒤편 조용한 포구길을 향했다. 오래된 바닷가 마을 사이로 난 길은 꼬불꼬불 엉켜있는 듯했다. 처음 걷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갈림길마다 내가 어느 방향으로 향했었는지 기억해야만 했다. 한동안 집과 집 사이로 난 길을 통과하다 보니 어느 순간 눈앞에 확 트인 바다가 펼쳐졌다. 예상치 못했던 극적인 전개에 순간 모든 생각이 사라졌다. 그저 '와!'하고 소리 없이 감탄을 지를 뿐이었다. 만조를 맞아 호수처럼 길의 양쪽을 채운 바다와 그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면 검은 돌과 그 틈 사이로 난 풀과 작은 꽃들이, 꺾어진 길을 따라가면 한쪽은 바다가, 다른 한쪽은 구름을 걸치고 우뚝 솟아있는 한라산이 보였다. 어느 쪽을 보아도 아름다운 풍경에 연신 고개를 돌려 번갈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길을 돌고 돌아 다시 내가 사는 집 앞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 처음으로 이곳이 제주라는 '여행지'가 아니라, 이젠 내가 사는 '동네'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산책로가 하나 생긴 첫날이었다.
자주 나가 걷기 시작했다. 윗마을 쪽으로도 아랫마을 쪽으로도 걸으며 길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좋아하는 산책로가 세네 개로 늘어났다. 몇 주 뒤 중고차를 하나 구입했다. 이젠 좀 더 멀리 나가보고 싶어졌다. 제주에 있는 수많은 오름들, 숲, 그리고 곶자왈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새별 오름, 용눈이오름, 따라비 오름처럼 잘 알려진 오름부터 저지 오름, 바리메 오름, 정물 오름 등 집에서 차로 30분 이내로 갈 수 있는 오름들까지 여러 곳을 다녔다. 그러다가 간 곳이 바로 제주 서부권에서 가장 높은 노꼬메 오름이었다.
처음엔 체력 단련도 할 겸 정상까지 난 길을 오르내렸다. 그러다 지도를 보니 노꼬메 오름은 큰 노꼬메 오름과 작은 노꼬메 오름 두 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두 오름 모두를 가보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큰 노꼬메 오름을 거쳐 작은 노꼬메 오름까지는 잘 타고 내려왔지만 문제가 하나 생겨났다. 바로 차를 세워둔 큰 노꼬메 오름 주차장이 내가 내려온 작은 노꼬메 오름에서 약 7km나 떨어져 있던 것이었다. 뒤로 돌아가 오름 두 개를 다시 한번 더 타기에는 몸이 지쳤고, 7km나 되는 도로를 걸어가기에는 길이 위험했다. 고민을 하던 순간, 눈 앞에 오름 안내 지도가 보였다. 하늘에서 찍은 사진이 낮은 해상도로 인쇄된 안내도에는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두 오름을 이어주는 길 하나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 번 이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얼마 뒤 작은 오솔길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단 길의 방향은 오름 정상으로 향해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길의 한쪽으로 돌담이 이어져있었다. 한동안 걸어 나가다가 이 돌담길에 대한 설명문을 찾았을 때, 이 길이 바로 두 오름을 이어주는 길이 맞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이고 길의 정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허리까지 껑충 올라온 처음 보는 크기의 고사리와, 쑥쑥 자라 있는 그래서 제주에서는 쑥대낭이라고도 부르는 삼나무와 그리고 나무줄기부터 뿌리까지 그 옆 돌까지 뒤덮은 초록의 이끼와 그 이끼 위에 손을 올렸을 때 와 닿던 포근한 감촉까지.. 마치 무언가 새로운 발견을 해낸 사람처럼 가슴은 두근거렸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걷고 나갔다. 무사히 주차장으로 돌아와 뒤를 돌아봤을 때 노꼬메 오름의 두 봉우리가 보였다. 다시 오고 싶은 오름, 다시 걷고 싶은 돌담길을 찾은 순간이었다.
그 뒤로도 매 달 노꼬메 오름을 찾아갔다. 가도 가도 질리지 않으니 참 신기한 일이었다. 같은 길을 걸어도 매번 새로웠다. 언제나 새로운 꽃과 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멈추지 않는 변화, 그 자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예전에 쓰다가 멈춘 시를 다시 적어보고픈 마음이 일었다. 지금의 이 감상을 이 새로운 발견을 글로 표현해보고 싶어 졌다. 그렇게 매주 한 편의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무렵부터였다.
그러는 사이 지인의 권유를 받아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4일 근무에 3일이 휴무였다. 돈은 좀 적게 벌더라도 일주일에 3일이란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시간을 활용해 일을 하면서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내가 좋아하는 오름과 숲, 곶자왈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러다가 한껏 걷고 싶은 날에는 한라산 둘레길을 찾았다. 한참을 걷다가 지칠 때쯤 나무를 등 뒤에 대고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이따금씩 흔들리는 나뭇잎도 들려오던 새소리도 모두 멈춘 것만 같은 그 고요한 순간을, 그리고 여름이 되면 밤바다에 들어가 두 귀는 물에 잠긴 채 두 눈은 하늘에 떠있는 별과 달을 보며 물에 몸을 맡긴 채 그저 둥둥 떠있는 그 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때때로 삶이란 바다 위에 자욱한 안개가 끼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 타인의 기대와 요구에 무리하게 나 자신을 맞추려고 하거나, 때로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좌절과 슬픔이 닥쳐올 때이기도 하다. 그렇게 되면 '나다움'이 가려지게 된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면 '나다움'을 잊어버리고 만다. 어쩌면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한 가지, 또는 내가 '좋아하던' 한 가지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씨앗에서 무성한 가지와 잎이 생겨나듯, 내가 좋아하는 하나를 찾고 둘을 찾고 나면 자연스럽게 그 뒤로는 다른 새로운 것들이 뻗어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렇게 넓혀진 세계가 바로 나다움을 보여줄 청사진, 바로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