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4일
달력에 적힌
이름을 바라보네
지는 달 아래
제 책상 위에는 달력이 하나 있습니다. 누군가와의 약속이나 해야 할 일들을 적어놓곤 합니다. 스마트폰이 있기는 하지만, 일정을 전체적으로 보고 싶을 때는 아직까지 책상달력이 저에게 더 편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억하고 싶은 사람의 기일을 적어두기도 합니다. 지난주 화요일인 10월 27일은 가수 신해철 씨의, 다가오는 11월 6일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란 1인 밴드로 활동했던 이진원 씨의 기일입니다. 이 두 분의 음악이 삶의 고비마다 위로와 격려가 되었었고 1년에 하루 정도는 이들을 기억하고 떠올려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개그우먼 박지선 씨의 부고.
처음에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평소 그녀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떠올리기 어려운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관련 기사와 영상을 한참 찾아보다가, 문득 미안한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 사람의 개그를 단지 소비했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이면에 있었을 그녀의 노력과 어려움을 나는 어찌 그리 보지 못했던 것인지...
그녀의 이름을 달력에 적어놓으며 먹먹한 마음에 한동안 창밖의 달만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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