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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화건 Mar 18. 2023

습관의 날개도 털갈이가 필요하다

'N.H. 소.우.주.'지기가 금연을 결심하여 건강을 손에 쥐고...

누군가 저에게 "어떤 사람이세요?"라고 질문을 한다면 솔직히 좋은 면만 부각해서 이야기할 겁니다. 굳이 첫인상 나빠질 이야기를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요즈음 같이 속도전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첫인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질문을 바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무얼 하고 계세요"라고 물어온다면 습관에 대해서 이야기할 겁니다. 좋은 삶을 만드는데 좋은 습관만큼 중요한 게 없다 믿으니까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죠

운도 좋았지만 노력의 결과로 좋은 습관을 여럿 가지고 있습니다. 잘 살고 있다는 상징 같아서 생각할 때마다 기분 좋게 해 주네요


그래서인지 제가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웬만해서 남에게 제 주장을 내세우는 성격이 아닌데도 서슴없이 무언가를 권하게 되더군요. 바로 좋은 습관 많이 만들어두라고요. 개인적으로 기분 좋은 경험을 해서인지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가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물론 제가 습관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기에 조심하려고는 하지만 좋은 건 좋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습관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좋은 습관을 가지는 것만큼 나쁜 습관을 떨쳐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시간을 내서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태도와 행동 중에 안 좋은 습관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더라고요. 지금껏 떨쳐내지 못한 나쁜 습관들이 여전히 많지만 결국에는 뿌리친 것들도 몇 있습니다. 남들은 별거 아니라 할지 모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대견스럽다는 말 외에는 해줄 말이 기억나지 않네요. 그러니 당연히 자랑해야겠죠


그건 다름 아닌 "금연"입니다. "금연"


금연을 시작하니 이전까지는 제가 했던 걸 되려 받는 입장이 되더군요. 사람들을 만나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금연하고 있어요"라고 말해야 할 때가 생기더라고요. 매번 비슷비슷한 질문을 받게 되었죠. "언제부터 하셨어요?" 가끔은 "왜요?"라는 질문을 받았죠

그 답으로 지금까지는 "그냥 갑자기 끊고 싶어서 끊었어요"라고 얘기해 왔는데 좀 더 솔직해져야겠네요


개인적으로 나름 오랜 시간 담배를 피워왔지만 금연에 대한 욕구는 그다지 큰 편이 아니었죠. 흡연자들이 새해 목표를 세울 때 꽤 많이 금연을 이야기한다고 하던데 저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금연을 생각한 적은 있었어도 거창하게 새해 목표로까지 정할 이유나 필요를 느끼지는 못했으니까요

아참 이런 경우는 있었네요.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무 이유 없이 금연하자 했다가 반나절 만에, 또 한 번은 그냥 만사 귀찮다는 생각에 이참에 담배도 끊자 했다가 열흘 정도 유지하다가 포기한 적은 있었죠

3000일을 달성하다

충동적으로 한 금연 도전이 실패인지 포기인지로 끝난 후에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노는 거 좋아하며 살지만 이제 체력이 술과 담배를 같이 하기에는 무리야. 이팔청춘도 아니고. 하나는 정리해야 하는데 뭘 정리할까?' 술과 담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해가 안 가겠지만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결정은 못하고 하루하루 심한 숙취에 고생하며 지내고 있었죠. 생각과는 다르게 생활은 아니 정확히 나쁜 습관은 늘 그렇듯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속에서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나 봅니다


준비도 못 했는데 그날은 느닷없이 찾아왔습니다. 평소처럼 줄기차게 담배를 소비하며 국가 재정에 기여하던 평범한 날이었죠. 다 늦은 시간에 결국 사달이 나버렸지 뭡니까. 동네 가게는 이미 문을 닫았고, 담배를 사기 위해선 길을 건너갔다 와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죠. 다른 날 같으면 별생각 없이 담배를 사러 나갔을 겁니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날은 "담배가 뭐 대단하다고 이 시간에 내가 그런 수고를 해야 하는 거야. 됐다! 필만큼 폈다! 오늘로 Bye Bye 하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희한하게도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미련이나 아쉬움을 느껴본 적이 없네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렇죠. 저라도 믿기 어려울 테니까요. 수십 년 담배를 피다가 그렇게 하루 만에 어려움도 없이 금연을 했다니 쉽게 믿기는 어렵죠. 

이런 말이 있죠. "후회 없이 사랑한 후에는 미련이 남지 않는다" 저 역시도 이 case가 아닌가 싶네요. 오랜 시간 동안 지독하게도 담배에 매달려 살았기에 때가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금연을 선택할 수 있었고 미련도 남기지 않은 것 같아요. 이러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았죠. "남들도 열심히 피워요"

그렇죠. 다른 사람들도 열심히 담배를 피웠고 피우고 있죠


좀 창피해도 제 얘기를 해봐야겠네요. 얼마나 열심히 담배를 피웠는지요

대학 4학년 때였죠. 평범한 여름날이었습니다. 갑자기 오한이 들더니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병증이 느껴지더군요. 급히 병원에 갔고, 진찰을 받았는데 결과를 듣고 할 말을 잊었습니다. '폐결핵' 진단을 받았지 뭡니까

치료 기간 동안 제대로 지옥을 경험했었죠. 낮에는 그래도 견딜만했지만, 밤만 되면 고열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40도가 넘는 고열에 처음 며칠은 '살려달라' 기도를 했는데, 나날이 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이 심해지니 꺼내기도 힘든 애원까지 하게 되더군요. 결국에는 고열에 시달리다가 잠시 정신이 돌아오면 헛것이 보이는 경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담배 없이는 못 살겠더군요. 몰래몰래 숨어서 담배 몇 모금을 빨아들이면 목과 가슴은 아파도 마음은 엄청난 위로를 받는 듯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만큼 담배에 엄청나게 의존하며 살았던 건 확실합니다


그렇게 좋아했던 담배를 단칼에 끊는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솔직히 조금의 의심은 들더군요. 몸과 마음은 분명히 다르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날이 새자마자 곧장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금연센터로 가서 상담부터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날의 선택은 정말 탁월했네요. 특히 그날 받은 상담은 지금까지 금연을 유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른 누군가는 "에게~"라 할지 모르지만 제게는 터닝포인트가 되었으니까요 


대강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금연을 결심하고도 다시 담배를 피는 경우가 있어요. 혹여 그렇게 되더라도 실망하지 마세요. 그걸로 금연이 실패한 건 아니니까요. 많은 분들이 그 순간 포기하시는 데 절대 그럴 이유가 없어요. 다른 생각하지 말고 그때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요. 진짜 실패는 스스로 포기했을 때니까요. 그러니 부담을 내려놓고 시작하세요"

상담을 받고 나오는 데 마음이 정말 가벼웠습니다. 부담을 내려놓으니 미련이나 간절함이 많이 줄어들더군요. 언제든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면서요


이 경험이 다른 생활에도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치더군요. 마음먹기에 따라 상황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확실하게 체험한 귀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마음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금연을 시작했다고 바로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이 시작되는 건 아니더군요. 금연을 하니 우선은 주변 사람들의 반신반의하는 시선을 확신으로 만드는 것부터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으니까요. 일부는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몇몇은 유혹을 멈추지 않았죠. 장난 섞인 시험이 결심을 굳히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역설도 기분 좋게 경험할 수 있었죠. 시간이 지나며 해결되는 문제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것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담배를 기호품이 아닌 소통을 돕는 도구라는 그릇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렇다 보니 금연을 하게 되면 혹시나 소외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죠

 

다행히 같이 일하는 이들이나 자주 보는 사람들과의 관계 설정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 없었죠. 말이 거창해서 그렇지 같이 술자리 할 때 서로를 배려하는 방법을 찾는 건 어렵지 않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았네요. 진짜 문제는 자주 만나지 않는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느냐였습니다. 금연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말 모임이 잡혔는데 잠깐 고민을 했습니다. 모임의 성격상 참석자가 모두 남자다 보니 조금 걱정이 되더군요. 대부분 담배를 피울 것 같은데 흡연 Time에 멀뚱멀뚱 혼자서 뭘 해야 하나 생각하니 참석이 내키지 않더라고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거고 그중에 가까운 이도 생각나지 않았으니까요. 그럼에도 1년에 한 번 만나는 모임인데 놓치지 말자 생각해서 참석을 결정했습니다

 

모임 장소로 가며 '있다가 재미없으면 적당히 시간 때우다 나와야지'하고 생각했습니다. 모임이 시작되고 언제나처럼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더군요.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이 눈빛을 교환하는 게 보이더군요. 올 게 왔구나 싶었습니다. 우르르 일어나 흡연이 가능한 외부로 나가더군요. 그런데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거의 전부가 흡연 행렬에 동참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생각보다 많은 아니 절반 정도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더군요.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발견했다는 묘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고, 기분 좋게 끝까지 모임을 즐겼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겪으며 얼마나 우물 안에서 살았는지를 실감했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한 뼘은 큰 것 같아 뿌듯함을 느꼈으니 금연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음이 확실합니다

금연을 자축하며 작성한 글

담배를 피우며 잃었던 감각을 금연 덕분에 되찾게 되어서 생활에 활력을 되찾은 것도 빼놓으면 섭섭하겠네요. 담배를 멀리하고 얼마가 지나니 후각과 미각이 살아나더군요.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가며 굉장한 일이란 걸 알게 되었죠. 음식의 맛을 제대로 알고 즐기게 되니 삶이 엄청 풍요로워지더군요. 게다가 예전엔 젬병이었던 요리에도 취미가 붙더라고요. 음식을 만들어 보니 그 과정의 노고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게 되면서 감사할 일이 하나 더 늘어난 것도 금연이 준 큰 혜택이라 할 수 있겠네요


웃지 못할 경험도 해야 했죠. 그때까지 옷들을 보호하기 위해 조금은 예스럽게 '나프탈렌'이란 걸 쓰고 있었는데요. 그전까지는 담배 냄새에 다른 냄새들이 다 덮였었는데, 금연하고 나서 결국 사달이 나더군요. 지인들과 노래방에 갔다가 망신 아닌 망신을 당하고서 비싸도 세련된 제품을 사용하는 계기가 되었죠

 

반면에 일상생활에서 편의를 많이 느끼게 되는데요. 공동주택에 살다 보니 흡연과 관련된 민원이 상당히 많이 발생하나 보더라고요. 사흘이 멀다 하고 흡연과 관련된 에티켓을 지켜달라는 방송이 나오니 모를 수가 없죠. 아직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면 수시로 밖으로 나갔을 거고, 주변 눈치를 보면서 담배를 피웠을 텐데... 지금은 정말 평안하게 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큰 장점입니까

 

또 좋은 점을 꼽으라면 수시로 작은 산들을 오르며 마음과 몸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데요. 뉴스를 통해 산불로 인한 피해들을 보게 되면 신경이 쓰였는데, 이제는 그런 걱정 안 하고 편하게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지금은 거의 눈에 띄지 않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산에서 숨어 흡연하는 사람들을 봤었거든요. 보면서 많이 불편했고, 예전에 담배를 필 때 남들도 그렇게 봤겠구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며 금연을 선택한 게 왜 그리 기특한지 모르겠네요

 

제가 살며 한 일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기특한 결정인 "금연"을 아직도 고민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적극 적극 추천해 드리고 싶네요

"지금 여기에서 소중한 걸 우선하며 주인 되는 삶"을 살기 위해 나쁜 습관 하나 내려놓은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기특한 날을 살게 되니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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