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포착

[포착23] 어긋난 경계선

by 무딘
[ 제 위치를 잃은 맨홀 ]


테이블 끝 5분의 3만큼 삐져나온 컵처럼,

집 현관에 한 짝만 뒤집어진 운동화처럼,

도마 위 자르다 말고 내려놓은 식칼처럼,

불편하다.

저 어긋난 경계선이.


가볍기라도 하면

은근슬쩍 돌려놓고 싶다.

저는 얼마나 불편하겠나.

팔 나오는 자리에 목을 끼워 넣은 기분,

노약자석에 앉아

멀뚱이 선 임산부를 바라보는 기분,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단 둘이 마주 앉은 기분,

단전에서부터 불편함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그런 기분 아니겠나.


기왕지사에 일 하는 거

조금만 더 섬세할 것이지.

선 하나 맞추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일해놓고 일 안 한 것처럼

일하고도 굳이 욕먹길 바라는 것처럼

어찌 저리도 무심했을까.


콧잔등을 찌푸리며 버스를 타려는데,

버스가 한참 늦는다.

아니, 출근 시간에 배차를 어찌했길래,

앞 뒤 차 간격이 이렇게 엉망일 수가.

불붙은 불편함이

재차 부글부글 끓는다.


아,

아,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어긋난 건 경계선이 아니구나.

불편한 건 맨홀이 아니구나.

나구나.

내 마음이구나.


'프로 불편러'라는 집사람의 핀잔이,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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