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포착

[포착22] 꼭 쥔 두 손

by 무딘
[ 노부부의 꼭 쥔 두 손 ]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거,

남이 싸우는 거.

단점을 물어뜯고

비밀을 헤집어 파고

실수를 침소봉대해

화형대 위에 올려놓는 거.


그래 그런가,

누가 이혼한 이야기

누가 바람피운 이야기

누가 누구를 속이고 때리고 상처 입힌 이야기가

발에 차이듯 흔하다.

자판기 음료수처럼

버튼만 누르면 덜컥 나온다.


어찌나 보무도 당당한지

얼굴을 붉히는 내가

덜떨어진 사람 같다.

소나기에 흠뻑 젖은 박스처럼

애써 배운 말씀들이

어그러지고 뭉그러진다.


출근길을 거슬러 퇴근하는 어느 아침,

느릿느릿 언덕을 오르는

노부부를 봤다.

두 손을 꼭 쥔 모습이 낯설어

얼른 카메라를 들었다.


저 두 손안에

얼마나 많은 사연이 담겨있을까.

얼마나 많은 원망과

얼마나 많은 증오와

또 얼마나 많은 용서가 담겨있을까.


싸움과 원망과 악다구니가

매대의 상품처럼 팔리는 오늘을 보며

두 분은 어떤 말씀을 하고 싶을까.


어쩌면 꼭 쥔 두 손으로

말씀하고 계신 건 아닐까.


성질 급한 태양 아래

노부부의 뒤를 따라 걸으며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다.


당신들의 머리 앞

초록으로 뻗은 나무가

꼭 '하트'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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