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포착

[포착21] 보란 듯이 기괴하기

by 무딘
[기괴한 나무]


기괴하다.


인간의 욕심이 어깨를 자르면

수긍하고

받아들이고

꺾일 줄 알았나 보다.

인간이 허락한 길을 따라

얌전히 피어날 줄 알았나 보다.


보란 듯이 기괴하기,

인간의 무지(無知)를 향한

자연의 답인가.


잘라놓은 팔뚝을 피하고

베어놓은 허벅지를 돌아

목덜미 한가운데서

잃었던 생을 뻗는다.

더 치열하게

더 제멋대로

더 독하게


더 이상 살갑지 않은 그는

초록이 몽울지는 서까래가 아니라

핏빛 독을 머금은

메두사의 머리칼.

마주치는 인연 모두가

그 앞에 돌덩이가 된다.


새 날의 해가 뜨면 어김없이,

나에게 칼 끝을 겨누는

가시 그리고 또 가시.

불현듯 살을 베고

갑작스레 눈을 찌르는 너희도

나의 욕망이 만든 것일까.


내 뜻대로 자라주길 바라며

너의 어깨를 비튼 탓일까.


보란 듯 기괴한 오늘이

나의 과오를 먹고 자랐다면,

어쩔 수 없겠지.

눈물을 떨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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