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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포착

[포착20] 물방울 산

by 무딘
[ 베란다 창 위 물방울 산]


20에서 2만 헤르츠

귀로 붙잡을 수 있는 소리

귀가 그려낼 수 없다고

세상이 조용한 건 아니다.


빨강에서 보라

무지갯빛 가시광선

빨강과 보라 밖에 있다고

빛이 소멸된 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연약할 뿐

다만 우리가 편협할 뿐

다만 우리가 부실한 오감(五感)으로

우물 위 하늘을 가늠하려 들 뿐


베란다 창밖으로

비가 무섭게 들이치면

어김없이 솟아오르는

물방울 산


펜스에 튀겨 버려지는 빗방울이

세상에 없던 능선을 그린다.

멀리 산 그림자를 겹쳐대면

명장의 산수화 못지않다.


때로 어떤 일들은

불행을 통해 얼굴을 드러낸다더니,

네가 그렇구나.

늘 곁에 있었는데

있는 줄도 몰랐구나.


나는 또 어떤 '없는 것'들과

함께하고 있을까.

나는 또 어떤 '없는 것'들에게

무례를 범했을까.

세상이 내게 준 게 뭐가 있냐고

진상을 부려가며.

가진 것보다 채울 것이 더 많다고

악다구니를 써가며.


문상을 왔다.

상주의 부운 눈에서

사라진 걸 본다.

늘 곁에 있었는데

불현듯 없어진 걸 본다.


나는 후회하지 말아야지.

나는 '없는 걸' 꼭 기억해야지.


생선 전을 꼭꼭 씹는데도

가시가 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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