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 당했데.
탁자를 치우던 아내가 둘째에게 말했다.
때마침 거실을 지나던 나는
귀를 의심한다.
이것은 어느 나라 문법인가.
불쌍한 일을 당했다는 것인가
불쌍한 일은 당하는 게 맞긴 한데
'불쌍'과 '당하다'가 어울리는 조합이긴 한데
참을 수 없는 이 어색함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틈만 나면 이름을 바꿔 부르더니
드디어 '범부의 언어'를 초월하는 것일까.
부상 당했다겠지, 엄마.
그제야 깨어지는 어색함
이윽고 피어나는 쾌감.
'불쌍'과 '당했다'를 성의 없이 묶은덕에
기묘한 재미가 알을 깼다.
그녀의 천부적 재능이
또다시 미지의 문을 열었다.
퇴근길
무심코 길을 지나다
낯선 쓰레기포를 본다.
분명 쓰레기포인데
실은 쓰레기포가 아니다
쓸모가 다한 현수막을 이으니
없던 쓸모가 생겼다.
원래 창조란 그런 건가 보다.
진짜 재미란 그런 건가 보다.
그래 꿈을 놓은 나도
다른 꿈을 꿔본다.
아직은 힘껏
펜을 쥐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