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를 했다.
계획대로 착착 진행됐는데
계획 안에 없던 일이 일어났다.
철렁 내려앉는 가슴,
작동을 멈춘 뇌,
주인을 거부하는 손.
달갑지 않은 기억이 되살아나,
오늘을 난도질했다.
누가 죽은 건 아니잖아.
실수 안 하는 이가 어디 있어.
그러면서 크는 거야.
내가 뱉었던 말들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하등 쓸데없다.
상한 건 자존심인걸.
자존심 빼면 시체인 내가,
변명하고,
해명하고,
굽실거려야 하는 걸.
당당하게 늘어놨던 '지적질'이,
떠벌이의 '헛발질'이 되는 걸.
그렇게 아집의 안갯속을 헤매다,
간신히 다시 붙든 이정표
'이것도 인연이다.'
원인과 조건이 만나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뿐.
계획하든 안 하든,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될 뿐.
연기(緣氣)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비로소 마음을 다잡는다.
내 안에 숨어있던
욕망을 본다.
실수는 어느새
회초리가 된다.
창 밖 산등성이에,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누가 또 산에서 담배를 피웠냐고
욕을, 욕을 했다.
그 위로 노을이 질 줄
누가 알았으랴.
저토록 아름다울 줄
누가 예상했으랴.
인생은 그런 건가 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나 보다.
그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