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서 부는 바람
‘그래, 딱 저 횡단보도 끝자락까지만 우울하자.’
차를 두고 걸었다. 걷기엔 다소 거리가 있음에도 무작정 걸어가고 싶었다. 제발 어느 누구라도 ‘왜’ 냐고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내가 왜 이런 기분을 갖게 되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내 안의 문제를 바깥 어느 누구에게도 탓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나조차도 모를 우울함이 갑작스레 밀려와 걷다가 눈물이 맺히고 아무런 표정도 지을 수 없는데 이걸 누가 해결해줄까.
어느 누가 위로랍시고 연락해주고 말걸어주는 것 자체가 우울버튼이다. 나를 가엾게, 안타깝게 여기지 말아줬으면. ‘또 지랄이네, 지긋지긋하다.’ 라며 당신들끼리 토론하지도 말길. 내가 피해를 준 것도 아니잖아. 그냥 두면 아무 일 없던 듯 돌아갈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냥 두고 언제나처럼 당신들 하던 일 하며 잘 지내줬으면 좋겠다.
내 안에서 부는 바람이다. 창문은 내가 닫고 싶다.
부디 햇살이 느껴져 활짝 열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