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어 놓은지도 모르는 선에 맞춰가는 삶.
앞으로의 학교 생활이, 군대 생활이, 회사 생활이 힘들어질까 봐 역겨운 걸 보고도 토하지 못했다. 한 낱 가벼운 내 정의감 따위로는 고일대로 고인 어느 그 문화를 바꿀 수는 없을뿐더러, 나는 한순간에 병신, 사회부적응자, 왕따 등으로 고립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그게 무서웠기 때문에. 시원하게 토하고 나서 입 좀 헹구고 개운하게 양치도 하고 빈 속도 채우고 싶었는데, 밀려 나오는 그 토악질을 애써 삼키며 역겨움을 견뎌내 왔다.
그래서 나는 특별히 못나지도, 특별히 잘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사람'으로 살 수 있는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누렇게 무르익어 가는 나이가 됐음에도 나는 '의견'이 없었다. 회사 점심시간에 먹고 싶은 것조차도 말하기 어려울 만큼 항상 남들이 원하고, 남들이 하자는 것만 줄곧 따라가고 있었다.
어느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세상에는 착한 사람보다 나쁜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착한 사람이 좋아 보이는 것이다.
만약 이 세상에 전부 착한 사람만 있었다면 착한 사람들은 빛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우리의 눈앞에서 어떤 건장한 남성들이 흉기를 들고 금은방을 털고 있고, 안에 갇히게 된 금은방 주인은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상황이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갈 수 있겠는가? 용감한 소수가 되어 빛날 수 있겠는가?
만약 내가 어린 시절부터 고립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아닌 걸 보고 아니라고 말하며 살았다면 금은방 안으로 고민 없이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또, '그저 그런 사람'으로 살지 않을 수 있었을까?
오늘만큼은 제육볶음 말고 혼자 순두부찌개 먹으러 가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다칠 위험이 있음에도 금은방 주인을 구하러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수많은 나쁜 사람들 틈에서 착한 사람으로 빛을 내는 사람이고 싶다.
고립되는 것보다 살아있음을 못 느끼는 것을 더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누가 정해놓은지도 모르는 모든 암묵적 '룰'에 갇혀 살지 않고 싶다.
나는 '보통'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