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이력이 눈에 들어오지 않음.

by 황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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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요한 회사였다. 그토록 잔잔함을 추구하는 나지만 이런 환경에 수시간동안

노출되면 도시소음이 필요할 때도 있다. 몸이 베베 꼬일 때쯤 테라스로 나갔다.

차 지나가는 소리, 까마귀가 우는 소리, 흡연자들이 떠드는 소리, 공사하는 소리.

그렇게 5분 정도 소음을 즐기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오는데, 막내가 다가와 봉투하나를 주며 말했다.

"방금 어떤 어르신이 이력서를 주고 가셨어요. 꼭 좀 읽어달라면서 잘 부탁드린다고 하고 가셨어요."

건네받은 이력서는 한 장이었다. 얼핏 봐도 온통 엉망인 띄어쓰기와 문법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인적사항을 적어 놓은 첫 줄을 읽자마자 왈칵, 눈물이 나기 직전의 뜨거움이 온몸에 퍼졌다.

196x 년 생, 우리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셨고,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의 이력들을 나열해 두셨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긴 한 줄, '희망보수 : 100만 원'.

덤덤한 척 계속해서 읽어 내려갈수록 어르신의 절실함은 더 진하게 묻어 있었다.

우리 회사의 호기심이 많으며,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더 이상 평정심을 잃고 싶지 않아서 읽기 싫어질 때쯤 끝이 났다.


어르신의 엉망진창인 타이핑, 달랑 한 장뿐인 A4용지 출력, 누가 있을지도 모르는 사무실로의 발걸음, 자식보다도 어린놈에게 간곡히 부탁드린다는 인사 그 모든 것들에 얼마큼의 간절함이 응축되어 있는지 나는 모른다. 최저임금의 절반도 안 되는 금액을 희망한다는 그 불씨는 감히 내가 똑바로 볼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눈부셨다.


나는 이 이력서를 대표님께 전달하지 않았다.

대신 눈에 잘 띄는 내 책상 한편에 그 불씨를 켜두었다.

나도 눈부신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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