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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건하 Aug 18. 2020

아스날 팬이 된 이유

Day 18






16년쯤 되었다. 단 한번도 실제로 본 적 없는 아스날 이란 팀을 응원하게 된 게.

희미하게 기억이 난다. 2006년이었나, 베르캄프가 하이버리 스타디움에서 은퇴식을 하던 장면.

당시 7살이었던 나라서 베르캄프가 현역으로 뛰는 경기를 생중계로 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 98년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겼던 장면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혼자서 대한민국 선수들을 농락하듯 휘젓고 다녔기 때문이다. 상대팀 선수였지만 감탄을 숨길 수가 없는 그런 충격적인 선수였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그의 은퇴식 장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스날이란 팀에 관심이 생겼던 것이.


스타디움에 동상이 세워질만큼 엄청났던 베르캄프.



이미 그 시기의 아스날은 '티에리 앙리' 라는 월드스타가 여전히 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르캄프의 부재가 크게 와닿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1년 뒤 그 월드스타 마저 본인의 커리어를 위해 더 큰 무대로 떠나고 만다. 무려 바르셀로나. 덕분에 앙리가 아스날로 이적했을 때부터 떠나기 직전까지의 플레이 영상을 수도 없이 돌려보면서, 앙리가 아스날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되새기곤 했었다. 다시 돌려봐도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선수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렇게 유일하게 알고 있었던 앙리를 바르셀로나로 떠나 보내면서 나는 더 깊이 아스날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축구를 몰라도 앙리는 안다는 그 티에리 앙리.



아스날의 시즌리뷰 영상들을 찾아보다가 우연찮게 굉장히 수려한 외모를 가진 한 선수를 발견했다.

아스날은 그 당시 흑인선수들이 대부분이었던 걸로 기억나는데 그 중에 이렇게 잘생긴 백인 선수가 있어서였을까, 유독 눈이 갔다. 그는 바로 필드위의 모차르트, 토마스 로시츠키였다.   


개인적으로 잘생긴 외모 덕분에 그의 플레이 수준을 높게 예상하진 않았던 게 사실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이런 몹쓸 편견이 역겹다는 듯이 다이나믹한 그의 경기력은 베르캄프 이후 처음으로 나를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또 무안하게 만들었다.


필드위의 모짜르트라는 별명에 걸맞게 경기장을 휘젓고 다니는 그의 공격적인 패스&무브는 가히 환상적이었고 축구관계자들은 그를 보며 이미 월드클래스 반열에 올랐다고 할 정도로 실력있는 선수였다. 당시 감독이었던 아르센 벵거가 추구하는 일명 ‘벵거볼’ 에 가장 완벽하게 녹아들었던 선수이기도 했다.


허나 그가 더 큰 날개를 펼치지 못한 건 잦은 부상이었다. 일명 유리몸으로 분류되며 너무나도 많은 부상 때문에 선수생활에 비해 출전한 경기수가 터무니 없이 적었다. 무려 37번이나 부상을 당했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울 수 밖에.


더불어 감명 깊었던 건, 로시츠키가 도르트문트에서 아스날로 이적할 당시에 인터뷰를 했는데, 1년전에 어마무시한 클럽들로부터 제의를 이미 받았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스날에서 연락이  때까지 1년만  기다려보자고 했다고. 그만큼 아스날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래서 더 정이 갔던 것 같다.


필드위의 모짜르트, 토마스 로시츠키.



이런 감동적인 선수를 구단에서 몰라줄리가 없다.

구단 입장에서 오랜 시간 부상으로 누워있는 선수가 달가울 리가 없을텐데도 묵묵히 기다려주고 자국리그로 떠나는 그 순간까지 감사한 마음을 보였다.


토마스 로시츠키.

 선수가 나를 아스날 팬으로 만들었다.


그 이후로 볼 수 있는 경기는 다 챙겨보고 유니폼도 구매하면서 마치 내 삶의 일부가 된듯 아스날과 함께했다. 비록 코로나 사태 때문에 처음으로 런던에 가고자 했던 계획이 무산되긴 했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아스날 팬, 구너로 살아갈 것이기에 다음 기회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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