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함께 한 경주 여행

by 하정

시작은 자매 단톡방에서 시작되었다.

둘째 언니: 아빠가 이번에 결혼 50주년이라고 여행 보내 달라셔. 내가 숙소랑 렌터카 예약했어. 내가 숙소, 렌트비용 내고 다들 용돈 드릴래 아니면 여행비용 1/n 할까?

딸 넷에 아들 하나인 집이라 자식들이 여행비용을 해드리면 각자 큰 부담은 없었다.

"언니가 숙소, 렌터카 비용 내고 우린 15만 원씩 드리면 되겠다."

그러면 둘째 언니가 상대적으로 많은 돈을 내지만.

어쨌든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고 둘째 언니가 말했다.

"누구 부모님 모시고 다녀올 사람 있어? 연세가 있으셔서 걱정이 되네."

그도 그럴 것이 아빠가 80이 넘으셨으니 운전하실게 걱정이긴 했다. 난 혹시 직장에 휴가를 낼 수 있으면 가고 싶어 내가 휴가를 내보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흔쾌히 다녀오라고 했고 직장 휴가는 3일 받아 화수목 2박 3일로 부모님, 6살 딸과 경주로 향했다.


경주는 이전에도 여러 번 갔지만 이미 10여 년 전이라 또 가고 싶었다. 부모님 덕분에 남매들한테 여행비용도 지원받으며 경주를 가게 되니 너무 즐거웠다. 아이와 아침밥도 먹지 않고 KTX를 타기 위해 서울역으로 향했다. 서울역 맥도날드에서 맥모닝을 먹으며 오랜만에 가게 된 여행을 시작하고 싶었기에.

부모님께 전화드리니 열심히 오고 계셨다. 맥모닝을 먹은 후 시간이 남아 인근 마트에 들른 후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오는데 부모님과 마주쳤다. 그렇게 사람이 많은데 길에서 마주치기 쉽지 않은데 정말 보이지 않는 텔레파시가 있는 것 같다.


기차시간이 되어 KTX를 타러 승강장으로 갔다. 열차 중간 테이블석에 마주 보고 앉았다. 아이는 어린이집 안 가고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와 놀러 가니 신나서 연신 웃으며 조잘댔다. 아빠 핸드폰이 울리고(어르신들 특성상 전화를 빨리 안 받으며 벨소리도 매우 크다.) 아빠는 10여분 통화를 하셨다. 우리 옆 테이블에는 20대 초반 여성 4명이 커피, 빵 등 카페를 차려놓고 신나서 떠들고 있었다. 잠시 후 역무원이 옆테이블 여성들에게 조용히 해달라며 주의를 주셨다. 그리고 방송이 나왔다.


"승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 드립니다. 쾌적한 객실 분위기를 위하여 옆 사람과 대화할 때는 목소리를 낮춰 주시고, 전화 통화가 필요하실 때는 객실 밖 통로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휴대전화는 진동 모드로 설정해 주시고, 이어폰 사용 시에도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배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누군가 우리 아빠 통화 소리, 옆 자리 여성들 수다 소리 등으로 민원을 넣은 듯했다. 난 아빠에게

"아빠, 핸드폰 소리 진동으로 해. 그리고 전화는 도착하고 내려서 받아"라고 했다. 다들 조용히 가는데 창피하기도 했다. 아빠는 "알았어"라고 하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셨다. 그러고 얼마 후

"삐리리리 삐리리링~~~"

엄마 핸드폰 벨이 울리고 있었다.

'못살아 진짜.'

엄마는 받지 말라는 내 얼굴 표정을 보면서도 동네 친구분 전화라 어쩔 수 없이 받으셨다.

"여보세요?"

"언니 난데, 토종닭 두 마리에 15,000원인데 살래?"

"토종닭? 나 지금 여행 가는 중인데. 그거 뭐 해 먹지? 그래 알았어. 살게"


엄마 대화 소리를 듣는데 상대방 동네 아주머니 목소리도 들려왔다. 이 상황이 너무 웃기기도 해서 갑자기 웃음이 튀어나왔다. 엄마는 눈치가 보이는지 전화통화를 빨리 마무리했다.


경주역 도착 후 렌터카를 찾아 미리 알아둔 맷돌순두부집으로 향했다. 숙소 체크인 시간이 아직 안 됐고 배도 고프기에 경주에서 유명한 순두부집으로 향한 것이다. 아빠는 식당에 앉자마자

"아빠가 이번 여행 모든 식비를 낼 거야."

'? 뭐라고? 안 그래도 되는데.'

약간 당황한 나는

"아빠, 자식들이 이번 여행에 쓰라고 다들 돈 보내줬어. 그걸로 계산하면 돼."

그러자 아빠는

"아니야. 그건 너희 쓰고 이번 여행 식사는 다 아빠가 계산할 거야."

갑자기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아빠가 돈이 넉넉하지 않고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계신 걸 알고 있기에 이 상황이 더욱 황당했다.

'뭐지? 왜 저러시지? 아빠라서 그런가? 자존심인가?'

아빠 마음을 알리 없는 나는 아빠가 저러시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진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긴 사람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 추측은 하겠지만.


그렇게 식사 후 언니가 예약해 준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코오롱 호텔로 이번 APEC때 시진핑이 묵은 후 유명해진 곳이라고 했다. 호텔은 오래되고 방도 옛날식이어서 처음엔 조금 실망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편의시설등이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신기하게 밤에 잠이 잘 왔다. 온도 습도가 적정한 건지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동궁과 월지'로 향했다. 10여 년 전에 낮에 가본 곳인데 야경이 아름다워 꼭 밤에 가보고 싶었기에 해가 진 후 그곳으로 향했다. 6시쯤 되었지만 해가 져서 그런지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아빠는 이곳저곳 감상하시느라 뒤늦게 오시고, 나와 엄마, 딸은 앞서 먼저 갔다. 아직 1월이라 그런지 많이 추웠다. 여기저기서 엄마, 아빠, 딸아이 사진을 찍어주며 한바뀌 돌고 나왔다.


이후 인근에 있는 첨성대로 향했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0여분 걸어가니 첨성대가 보였다. 첨성대 역시 은은한 조명이 비추고 있어 낮에 볼 때와 또 다른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옆에 7시 30분에 미디어쇼가 있다고 입간판에 쓰여 있었다. 7시 15분이라 15분만 기다리면 되니 신나서

"우리 7시 반에 미디어쇼 하는데 보고 가자"라고 말했다. 그러자 딸아이가

"엄마, 너무 추워" 그런다.

그러자 옆에서 엄마, 아빠가

"너무 춥다. 그거 꼭 봐야 되니? 차에서 보면 안 될까? 숙소로 돌아가자." 그러신다.

'잉? 뭐지?'

갑자기 왜 노약자라고 하는지 이해가 갔다. 난 아직 젊지만 부모님은 80대, 70대 우리 아이는 이제 만 5세도 안 됐으니.

다들 달달 떨며 숙소로 돌아왔다. 자매톡방에는 실시간으로 식사, 여행지 등 사진을 올렸다. 돈을 지원받고 온 여행이라 의무감으로 실시간 보고를 했다.


아빠는 본인이 식사비를 다 내신다 하셨지만 연신 낮에 먹은 게 아직도 소화가 안 됐다며 저녁을 안 먹어도 되겠다고 하셨다. 물론 나도 배가 막 고프진 않았지만 그래도 안 먹으면 아쉬운 상황이라 애매하긴 했다. 결국 아빠와 나는 호텔 로비에 있는 편의점에서 전복죽, 과자, 떡볶이, 막걸리(아빠가 매우 좋아하심) 등을 사 와서 숙소에서 먹게 됐다.

'뭐야. 아빠는 본인이 산다면서 식사비 아끼는 거야 뭐야.'

좀 짜증이 났다.

말도 안 되게 숙소에서 편의점에서 산 음식을 두고 먹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게 뭐야. 자식들이 돈 보내줬는데 맛있는 거 사 먹지도 못하고."


다음날 아침에는 불국사에 가기로 했다.

"내가 불국사 인근 식당 알아보니깐 버섯전골이랑 떡갈비 파는 데 있네. 여기 괜찮은 거 같아. 여기 갈까?"

그랬더니 아빠가 그러신다.

"아빠는 국물 있는 거 먹고 싶다. 곰탕, 순댓국 이런 거"

"국물?"

아빠는 아침에 꼭 국을 드신단다. 그래. 그럼 순댓국은 먹고 싶지 않고 곰탕을 알아보기로 했다.


일단 불국사로 향했다. 진짜 수학여행 때 가보고 몇십 년 만에 가는 거 같다. 딸아이 책 읽어주면서 책에서 봤던 곳을 실제로 가니 설레고 빨리 보고 싶었다. 하지만 바람이 불고 너무나 추웠다. 하늘은 너무 맑았지만. 불국사에 올라가 석가탑, 다보탑을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책으로만 보던 것을 실물로 보는 기분이란.

딸아이에게도 신나서

"하은아. 이게 석가탑이야. 이게 다보탑이야" 연신 설명을 했다. 그런데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너무 추워"

그러자 엄마, 아빠도

"너무 춥다.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가자."

다시 한번 느꼈다. 어르신과 어린이와 여행하는 게 쉽지 않구나.

장점도 있었다. 어딜 가나 65세 이상, 미취학 아동 무료라 입장료는 나만 내면 됐다. 또한 다들 체력적으로 힘들어해서 조금 보고 이동하고 하니 나도 몸이 많이 힘들지 않고 편했다. 나름 장점이 있었다.


다들 춥다고 하니 바로 옆에 생긴 불국사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날씨가 추우니 실내 관광 위주로 해야겠다.

불국사 박물관은 크진 않았지만 불국사에 대한 설명 자료와 보물들이 전시돼 있었다. 또한 사람이 많지 않아 아이가 자유롭게 보기 좋았다. 아이는 처음 보는 것들이 신기한지 연신

"엄마, 여기 와봐"

"할머니 일루 와봐요. 할아버지 일루 와봐요"를 외쳤다.

'교육효과 아주 뛰어나군' 내심 기쁜 마음이 든다.


명인곰탕집에서 식사 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향했다. 날씨가 추워 실외관광은 불가능했다. 경주박물관에서는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 특별 전시를 하고 있었다. 이 전시는 특별히 매 시간별 입장권을 나눠주어 인원을 제한했다. 아무래도 얼마 전 APEC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신라 금관을 선물한 사건으로 유명세를 탄 것인지 몰라도 너무 사람이 몰릴까 봐 그렇게 진행하는 듯했다.


우리는 12시에 박물관에 도착했는데 신라 금관 전시 입장권은 3시 것을 받게 됐다. 박물관 내부로 가니 신라 시대 유물이 전시돼 있는데 요즘 팔아도 큰 문제없어 보일 정도의 유물들이 보였다. 어떻게 천몇 백 년 전에 이렇게 금관을 만들고 신발을 만들고 그릇들을 만들었는지 조상들의 뛰어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 사용하는 컵과 비슷한 유물도 봤다. 금으로 만든 장신구, 신발 등 신라시대 사람들의 기술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후 인근 커피숍에서 시간을 때우고 3시가 되어 신라 금관 전시장으로 향했다. 신라 금관 10개 정도 전시돼 있었는데 참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금관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었다. 3시간 기다린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못 봤으면 후회했을 듯하다.


이후 황룡사역사문화관으로 향했다. 그곳은 황룡사에 대한 자료를 전시해 놓은 곳이었다. 1층에서는 황룡사9층목탑에 대한 영상자료를 상영해 주고 있었다. 우리는 3D 안경을 쓰고 영상을 관람했는데 영상이 너무 잘 만들어져 눈앞에서 생생한 영상을 보는 기분이었다. 황룡사9층목탑은 현재 기술로도 복원이 어렵다고 한다. 진흥왕 때 궁궐을 지으려고 했는데 황룡이 나타나 궁궐이 아닌 절로 계획을 바꿨다고 한다. 한때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며 왕이 오는 절이었으나 고려 고종 25년(1238) 몽골 제국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절터에 복원 작업을 진행 중인 것 같다. 복원이 되면 정말 멋질 것 같다. 복원을 기대해 본다.

이후 미리 알아두었던 분위기 좋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값이 좀 나가는 곳이었기에 미리 부모님께 선포했다.

"이건 자식들이 보내준 돈으로 결제할 거야. 아빠는 그런 줄 알아"

아빠는 웬일인지 본인이 사겠다고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옛날 커다란 마당이 있는 한옥집을 식당으로 리모델링 한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넓은 마당과 통창으로 분위기가 좋았다. 스테이크, 샐러드, 파스타를 시키고 부모님은 와인을 주문해 드렸다. 부모님은 기분이 좋으신지 짠 하며 와인을 드셨다. 난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아 남매방에 올렸다. 그러자 언니들이

"이런데 좀 많이 가라. 엄마 얼굴이 확 폈네" 그런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계속 아빠가 본인이 산다, 국물 있는 음식이 좋다 이러면서 국밥집만 가"

집으로 돌아와 호텔 사우나를 갔다. 할인쿠폰으로 저렴하게 사우나를 다녀왔다.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 엄마는 연신 아쉬운지

"처음에 엄마, 아빠만 오는지 알고 3박 4일 해준다는 거 2박 3일로 바꾼 건데. 이렇게 너랑 하은이 같이 올 줄 알았으면 3박 4일 할걸" 그런다.

나 역시 휴가를 3일뿐이 안 써서 직장 출근도 해야 했기에 아쉽지만 여행을 더 할 수는 없었다.

"엄마. 2박 3일이 딱 좋아. 3박 4일 하면 짜증 나고 싸울 수도 있어. 다음에 또 오자" 그렇게 여행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마지막 날. 호텔 조식을 먹으러 갔다. 부모님은 조식 먹는다니 좋아하셨다. 난 부모님 몰래 조식비를 결재했다. 다행히 부모님은 조식비용이 숙박비에 포함돼 있다고 생각하신 듯했다. 조식을 먹으러 가니 손님이 많아 식당이 가득 찼다. 먹거리도 많고 통창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도 좋아 식사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식사 후 호텔 1,2층에 있는 전시장을 관람했다. 코오롱호텔은 <Time After Time>이라고 우리나라 70년대~80년대를 경험할 수 있는 전시장을 운영 중이다. 그곳에 가니 내가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 시절 문방구, 우체국, 약국, 영화관, 가정집, 다방 등 10개 방으로 구성돼 있었다. 또한 각 방에 도장 찍는 게 있는데 전부 찍으면 선물을 준다. 아이는 선물 받을걸 기대하며 열심히 도장을 찍었다. 시간 여행이란 이런 것일까? 또한 1층에는 각종 피규어들과 대형 아이언맨, 헐크, 배트맨 등이 전시돼 있다. 부모님과 아이 모두 신나 했고 여기저기서 사진 찍기도 좋았다. 그렇게 호텔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나왔다.

기차를 타기까지 시간이 남아 식물원인 경주동궁원으로 향했다. 경주동궁원은 곤충, 새, 식물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아이들과 가기에도 좋은 곳이다. 곤충방에 들어가니 아이가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른다.

"엄마 일루 와봐, 할머니 일루 와봐" 신기한 게 많은가 보다.

이후 옆에 있는 식물원에 들어갔다. 식물원 입구에 중간중간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책자를 팔았다. 이것 역시 다 찍으면 마치고 나서 선물을 준다. 아이에게 책을 사주니 신나서 도장을 찍으러 다녔다. 부모님, 아이와 함께 사진도 찍고 도장도 찍으니 어느덧 기념품샵에 이르렀다.

이곳은 가격도 비싸지 않고 살만한 것들이 많았다. 나는 매일 저녁 막걸리를 드시는 아빠에게 막걸리술잔으로 쓰시라고 전통 신라토기 영배를 사드렸다.(이후 친정에 가니 이 잔에 기분 좋게 막걸리를 드시고 계셨다.)

그곳에서 신라금관 모양 책갈피도 사고 아이와 함께 꽃무늬 옥반지도 구입했다. 그렇게 경주 여행을 마무리했다.


부모님을 보며 '이제 10년이나 더 사실까? 언젠가 이별할 시간이 오겠지'라는 생각이 들며 눈물이 난다. 이번 여행은 정말 기쁨이 넘치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부모님이 아이를 봐주시니 그것도 좋았고. 아이도 나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더 좋단다. 엄마는 "하은이와 함께여서 더욱 즐거웠다"라고 하셨다. 내년에도 또 부모님과 여행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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