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유는 돈이 아니다

돈의 주인이 되는 방법

by 신거니

경제적 자유가 화두다. 누구나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누워서 월 천만 원 이상을 버는 삶의 공식을 찾았다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공식을 알고 싶으면 자기 책을 사거나 1:1 코칭 서비스를 등록하라고 말한다.


금을 찾아 미국서부로 떠난 사람 중 돈을 번건 광부가 아니라, 이들에게 장비나 음식을 팔았던 상인이었다. 누군가는 투자금을 불려주겠다며 폰지사기를 치거나 주식 리딩방을 운영하기도 한다. 심지어 로또복권 번호를 알려주는 대가로 복비를 받는 점쟁이도 있다.


어느 시대나 경제적 자유, 부자라는 키워드는 성행했다. 그리고 그 기류에 편승하여 '돈 버는 법'으로 돈을 버는 이들도 항상 있어왔다. 그 자체가 문제 될 건 없다. 다만 경제적 자유라는 단어는 보통 매달, 혹은 매년 버는 돈의 액수로 서술된다. 한 달에 얼마 정도를 벌면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천만 원? 이천만 원? 일억 원? 아니면 단순히 많을수록 좋은가? 기준이 없다.


거창할 필요는 없다. 다만 사기꾼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만의 경제적 기준이 필요하다. 그래야 행동이 나오고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다. 자유란 책임을 동반한다. 주인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건 강하게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의 무게를 견디기 때문이다. 돈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어야 한다.






1.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지 말자


"지금 당장 로또 복권에 당첨되어 10억 원을 받을 수 있다면 무얼 하시겠습니까?"


경제적 욕망에 관한 단골 질문이다. 내가 본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대답한다. '서울에 아파트를 사기에는 좀 모자라니까 우선 빚 갚고, 외제차 사고, 청담동 에르메스 매장에 가서 가방을 하나 사서 해외여행을 떠나겠다' 이렇게 일관된 답변이 나오는 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삶에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목표가 외제차, 혹은 에르메스 가방이라는 생각이 드는가?


난 이렇게 생각한다. 그만큼 욕망의 형태가 비슷하다. 브랜드는 다를지언정 외제차를 사거나 명품을 구입해야겠다는 욕망. 그게 모두의 욕망일 수 없다. 내가 그렇다. 차에도 별로 관심이 없고 명품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외제차나 명품을 원하는 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모두가 비슷한 욕망을 이야기한다면 이게 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되짚어봐야 한다는 말이다.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말을 통해 이런 현상을 설명한다. 자신의 욕망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이는 타인의 욕망을 끌어다 버킷리스트에 올린다. 그렇게 비슷비슷한 삶의 형태가 등장한다.


욕망이란 상상력이다. 지금의 나보다 더 큰 무언가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 상상력을 남에게 의탁하는 순간, 그 꿈은 한없이 초라해진다. 이뤄도 공허하다.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최소한 계속 속이는 건 불가능하다.


자면서 월 천만 원을 벌 수 있다는 구호는 그래서 공허하다. 천만 원이 아니라 천억 원이라도 해도 마찬가지다.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그건 그대의 욕망이지 나의 욕망이 아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주관적으로 욕망을 벼려내자.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걸 위해 얼마의 돈이 필요한가? 그 정도의 돈을 벌려면 무엇을 얼마나 해야 하는가? 오롯이 나의 욕망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거침없이 답할 수 있다면 경제적 자유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 것이다.



2. 돈이 아니라 시간을 벌자


돈은 그 자체로 도구일 뿐이다. 나의 시간과, 욕망과, 자유를 위한. 도구는 다른 가치로 치환되기 위해 존재한다. 이렇게 보면 돈을 쓰는 건 단순히 재화, 서비스와 교환하는 행위가 아니다. 한 가치가 다른 가치로 모습을 바꾸는 행위다.


돈을 왜 버는가? 가치를 얻기 위해서다. 가치란 돈을 버는 이유가 된다. 궁극적으로 돈과 교환할 수 있는. 내 노동과 투자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야 허무하지 않다. 돈을 위해 돈을 번 사람은 종국에 지독한 허무함에 빠진다. 내 고생의 결과가 '고작' 돈이어서.


돈이 벌어다 줄 수 있는 궁극의 가치가 있다면 그건 시간이 아닐까 싶다. 시간은 그 자체로 무한해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개별적인 인간은 시간의 스펙트럼 중 일부만을 취할 수 있다. 저마다의 수명과 상황에 따라. 시간의 미묘한 점은 언제 바닥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죽음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언제 죽을지는 모른다.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결과를 두고서 사람은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인다. 오늘 하루를 즐기자는 욜로(YOLO)족부터 미래를 위해 지독하게 아껴야 한다는 파이어(FIRE)족까지. 욜로족이든 파이어족이든 이들은 시간의 가치를 높이 산다. 이들이 돈을 버는 건 저마다의 방식으로 누릴 시간을 위해서다. 한마디로 시간을 번다.


흔히 자유롭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경제적 자유라는 단어는 이런 생각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자유는 추상적이다. 머릿속에 잠깐의 심상만을 남긴 채 날아가버린다. 현실에서 자유는 보통 시간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내 입맛대로 시간을 꾸려갈 수 있는 능력, 그게 자유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내는 시간, 마음에 드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 등.


돈을 시간으로 치환하는 사고방식은 지출을 바라보는 관점도 변화시킨다. 눈앞에 5만 원짜리 셔츠가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내가 5만 원을 벌기 위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 만약 10분이나 1분이라면 망설이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5만 원을 위해 반나절, 한나절을 일해야 한다면 조금 더 고민해야 한다. '이 셔츠에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라는 고민.



3. 아낌없이 투자하자


작년부터 이어진 주식 강세장에 힘입어 재테크 열풍이 다시금 불고 있다. 이제 투자하지 않으면 뭔가 뒤쳐지는 기분마저 든다. 그런 분위기에 휩쓸릴 필요는 없다. 다만 어떤 형태로든 내 돈이 투자되지 않는다면 경제적 자유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여기서의 투자는 꼭 주식투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투자의 대상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여러 조합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이슈를 꼽자면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다. 인간적으로 한 단계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투자.


돈을 펑펑 낭비한다면 곤란하지만 마냥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도 답은 아니다. 경제적 자유를 원한다면 현금흐름을 만들어야 하고 자신과 자산에 대한 투자만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투자해야 한다. 돈도, 시간도. 투자에서만큼은 쓰는 만큼 벌린다.






돈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조언 따위 무시해도 좋다. 돈에 대한 기준은 작게는 지출 결정부터 크게는 경제관념이나 철학으로 이어진다. 돈 없이는 살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다. 도구에 불과한 돈에 끌려다니지 않는 주인이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