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100일 전

오늘의 계획도 없는데 그날이라고 있을까

by 신거니

난 언제부터 퇴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까.


입사하고 이틀 후부터? 1년 전부터? 6개월 전부터? 아니면 입사도 하기 전에? 여기저기 알리고 다닌 건 올해 6월부터다. 나 연말에 퇴사할 거라고. 그조차도 막연하다. 아예 날짜를 정하자. 게으르고 겁 많은 나조차 행동할 수밖에 없게끔. 달력을 펼쳐 12월 17일 금요일에 크게 표시했다. 나, 이 날 나간다.


왜 하필 그날이냐고? 사실 단순한 이유다. 방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주간이다. 헬스장 회원권도 그쯤 만기가 되고, 회사경력도 3년이 된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모든 정황이 그날을 가리키고 있다. 마치 행성이 일렬로 줄을 서고 황도 12궁이 저마다의 위치에 자리한 날이랄까. 아, 너무 거창했다.


그리고 조그만 우연 하나 더, 오늘 백신 1차 접종이 있었다. 덕분에 이틀의 휴가를 얻었고 집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 100일을 기념하기엔 역시 혼자만의 시간이 딱이다. 세상 누구에게도 없는 나만의 기념일 아닌가. 냉장고에 있는 피칸파이에 초라도 꽂아야 하나 싶다.






지난 100일이 그랬듯 앞으로의 100일도 비슷하게 흘러가겠지.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비슷비슷한 나날에도 주목할 순간은 있었다. 브런치를 처음으로 시작한 것도 포함해서. 아무리 반복적으로 살아간들 변화는 있기 마련이고, 극적인 날을 맞이해도 결국 일상으로 돌아온다.


기념일은 항상 날 설레게 만든다. 연애할 때 부지런히 챙겼던 100일, 200일부터 생일, 크리스마스, 무슨 기념일, 저런 기념일까지. 기념일은 특정한 시간을 더 두텁게 채색한다. 하다못해 일요일도 달력에 빨갛게 칠해져있지 않은가.


기념일은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살펴보게 한다. 오늘을 기점으로 지난 100일과 앞으로의 100일,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을 생각하듯이. 사람이 어떤 날을 기념하는 건 이정표를 하나씩 세우고 싶어서다. 나와는 상관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내가 퇴사를 한다고 갑자기 하늘이 반으로 갈라지며 유황불이 쏟아지고 천사의 나팔소리가 들릴리는 없다. 정말 그런 일이 터져도 그건 아마 내 퇴사 때문은 아니겠지. 세상엔 나와 상관없는 일도 많이 벌어진다. 사실 대부분이 그렇다.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경우도 많다.






퇴사를 하고 나면 하루가 오롯이 나의 몫으로 남는다. 그 시간을 채워가야 한다. 회사생활이 아닌 다른 재료로. 처음 있는 일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내가 내 시간을 책임지다니. 하다못해 재수생이나 휴학생이라는 타이틀이라도 있었는데 말이지. 세상에 던져진 나는 어떻게 될까. 생각이 많아진다.


퇴사 이후에 뭘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정작 퇴사를 해도 알 수 없겠지. 나에게 계획은 다이어리에 빼곡히 그린 시간표가 아니다. 다만 하루하루 살아가며 실제로 이뤄가는 그 무언가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면 지금 하고, 지금 할 수 없는 일이면 나중에 한다. 내 관심사는 오직 '지금 내가 뭘 할 수 있지?'다. 단순하지만 효과가 좋다.


아무튼 100일 남았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