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비빌 언덕을 세운다는 것
존버
참으로 생명력이 강한 단어다. 수많은 유행어가 명멸하는 21세기 한국에서 그 자체로 존버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이 단어는 다음과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1) 삶은 원래 힘들다.
2) 그래서 버티는 수밖에 없다.
3) 그러다 보면 좋은 날이 '올 수도' 있다.
'존버'는 아득바득 살아가는 생명력과 삶에 대한 체념을 동시에 담아낸다. 결과를 짐작하기는 어려우니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건 버티는 길뿐. 팔뚝에 핏줄이 팽팽하게 서도록 동아줄을 붙들어야 한다. 그게 삶이다. 힘들어도, 슬퍼도 어쩔 수 없다.
어떤 환경이든 나름의 힘듦은 있기 마련이고 그 시련을 이겨내는 게 인생이다. 억세게 운이 좋지 않다면 말이다. 애초에 그 운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라도 노력과 존버 정신은 꼭 필요하다. 결과는 확률이지만 과정은 의지다.
다만 어디서 어떻게 버틸지 결정하는 건 나 자신이다. 단순히 썩은 동아줄 잡고 있어 봐야 얻는 게 없다식의 처세술이 아니다. 나의 버팀에는 이유와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는 그럴 시간이 되었다.
존버의 기나긴 터널 끝엔 뭐가 있을까. 수능만 치면, 취업만 하면, 결혼만 하면 뭔가 달라질 것처럼. 막연한 보상과 소소하지만 확실한 고통. 다음 단계로 넘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른 퀘스트가 주어진다. 인생이 과업의 연속인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싶다.
처음부터 '좋은 대학 합격해서 좋은 직장 들어가고 승진해서 집 사고 결혼해서 아이 낳고 그 아이들도 너처럼 길러내다가 노후 준비하고 인생의 마무리까지 장례식으로 깔끔하게'라고 하면 지레 겁을 먹어서 그랬던 건가? 하나씩 이뤄낼 때마다 업데이트되는 가족과 친척의 잔소리는 나를 순간순간 존버 하게 만드는 채찍질이다. 그래서 그다음은? 그다음은? 끝이 없다.
누군가는 이런 문화에 반기를 들며 포기 선언을 한다. 비혼주의가 대표적이다. 이해가 되면서도 슬프다. 사회적으로 결혼에 대한 압박이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다면 비혼주의를 굳이 선언할 이유도 없다. 인도에선 채식주의가 너무도 당연해 음식점마다 채식메뉴가 따로 표시되어 있다. 인도인은 굳이 자신을 비건이나 채식주의자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보통 일이 힘든 것보다 사람이 힘든 게 더 버티기 어렵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다만 그 일과 사람을 만들어가는 건 문화다. 그 문화 역시 사람이 만들지 않냐고? 정확히는 일부의 사람이 문화를 자아낸다. 회사라면 경영진일 수 있고, 가족이라면 가장일 수 있다. 침묵하는 다수는 존버 한다.
내가 짜지 않은 판에 나를 맞춘다. 그 틀이 넉넉하다면 문제 될 게 없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인정받고 마음껏 뛰어다닌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행운을 누리는 건 아니다. 작게는 하나의 조직부터 크게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박차고 나오지 않는다면 벗어날 수 없는 울타리가 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마라.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이런 조언이 일견 허망해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문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 문화가 아니라면 이뤄내기 힘드니까. 그 조직의 정점에 이르지 않는다면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정상에 오른 이들은 자기 마음대로 판을 꾸려나간다.
그럼 나만의 언덕을 세우고 그 위에 올라서는 건 어떨까? 그러면 '존버'도 조금 더 버틸만하지 않을까? 아직은 발칙한 상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하고 싶다. 회사에 앉아 한숨이 나올 때마다 격하게. 우선 버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