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 무엇을 해야 하나요?"
직업 하면 흔히 떠오르는 질문이다. 참 행복한 고민이다. 좋아하는 일도 있고, 잘하는 일도 따로 있다니. 뭘 좋아하는지 모르고 딱히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이 대다수 아닐까? 좋아하는 일까지는 어떻게 찾았다 치자. 우연히 들은 원데이 클래스에서 내 진로를 발견했다든지 하는 식으로.
보다 현실적인 고민의 지점은 여기에 있다.
"좋아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중 무엇을 해야 하나요?"
할 수 있는 일. 관성에 의해 살다 보면 절로 얻어지는 그 무언가. 쉽다는 건 아니다.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와도 같다. 가만히 있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내달려야 한다. 내 전공, 내 학력, 내 수준에서 갈 수 있는 곳. 그게 지금의 이 회사였다. 좋아서도, 잘해서도 아닌 할 수 있어서. 그 대가는 생각보다 크다. 끊임없이 존재론적인 고민에 시달린다.
그러다 보면 자꾸 곁눈질을 하게 된다. 이것도 경험해보고, 저것도 경험해보고 자아의 지평을 넓혀간다. 그러다 좋아하는 일이 하나둘씩 그물에 걸린다. 일단 손에는 쥐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일이면 회사를 가야 하는데 이 일이 미치도록 재밌다. 나, 이 일 좋아하나 보다.
그럼 그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 하면 되는데, 그렇게 쉽지 않다. 주변에서도 만류한다. 부모님께 말해보자.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내일 당장 고양이 전문 포토그래퍼가 되겠다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부모님이 얼마나 될까? 멀고도 험한 길이다.
"꿈이 아니라 현실을 봐!"
이런 상황에서 대개 '현실'이라는 단어는 내 꿈을 꺾기 위한 낙인이 된다. '먹고사니즘'이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고 마냥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살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문제를 다르게 정의해보자. '현실 vs 꿈'의 대결구도가 아니라 '현실 = 꿈'이라는 등식으로. 오히려 꿈을 좇는 게 가장 현실적인 길이 되는 꿈같은 상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좋아하는 일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1. 좋아해야 지속할 수 있다.
본디 일이란 하나의 운명이었다. 과거에는 국가가 특정 직업을 강제했다. 백정은 백정의 일을, 양반은 양반의 일을 했다.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어쩔 수 없다.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다른 의미로 고민이나 불안이 없는 사회였을지도.
이제 일은 국가적 의무나 생존을 넘어선다. 자신의 취향, 의미, 즐거움, 행복을 일에서 찾기 시작한다. 그런 내적인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과감히 방향을 튼다. 당장 그러지 못하더라도 계속 다른 길을 탐색한다.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면서.
'평생직장'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속이며 수년간 버틸 수는 있겠지만 그동안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만다. 자기모순은 끊임없이 나를 공격한다. 버티기 어렵다. 좋아하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다.
2. 지속해야 탁월해진다.
책 <타이탄의 도구들>은 탁월함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1) 한 가지 분야에서 최고가 될 것.
2) 적어도 네 가지 분야에서 상위 25% 안에 들 것.
첫 번째 탁월함은 정상에 오른 자만이 누릴 수 있다. 뛰어난 재능과 행운, 부단한 노력이 더해져 최고의 작품을 내놓는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인사가 되어 모든 부와 명예를 독식한다. 분명 매력적이지만 극소수만이 맛볼 수 있는 과실이다.
두 번째 탁월함은 조금 다르다. 역시나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진 않다. 좋아하는 일을 찾고 꾸준히 지속한다면 말이다. 세계 최고의 사진사가 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고양이 사진을 찍으면서 에세이를 쓰고, 칵테일을 만들고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다면? 자신만의 탁월함을 얻을 수 있다.
열정은 하루아침에 불타오르는 불꽃이 아니라, 지속할 수 있는 인내심에 가깝다. 일을 계속 끌고 가야 결과물이 나온다. 엉성하게나마 뭔가를 만들어본 경험은 계속 쌓인다. 어떤 고지에 오를 때까지.
3. 탁월해야 살아남는다.
IMF 금융위기 이후 '노동의 유연화'라는 기치 아래 비정규직이 대량으로 양산된다. 직업을 선택할 때 안정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으로 지원자가 몰린다.
삼성에 취업하려고, 공무원이 되려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선택지를 극도로 좁힌다. 가장 확실한 길, 가장 단단한 길만이 인정받는다. 인공지능과 코로나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인공지능은 단순 반복 업무를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있다. 여전히 중요한 의사결정은 사람이 내린다. 하지만 의사결정을 할땐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코로나 사태는 이런 트렌드에 종지부를 찍었다. 대기업은 아예 공채를 폐지하고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인재를 수시채용으로 뽑는다. 수많은 대면 서비스직이 사라지고 각종 산업은 온라인으로 무대를 옮겼다.
잘하지 않으면, 아니 탁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남들과 경쟁하며 아귀다툼을 벌이라는 소리가 아니다. 이제 모두에게 필요한 건 토익 점수나 학위같이 정량화된 지표가 아닌 나다움이다. 나다움을 너무 추상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내가 남들과는 다르게 잘할 수 있는 일. 그게 일에서의 나다움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나만의 색깔을 더해보자. 앞으로는 그래야만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해라' 이건 배부른 소리가 아니다.
'시키는 대로 해라, 할 수 있는 일만 해라, 현실에 안주해라' 이게 진짜 배부른 소리다. 꿈이 아니라 현실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