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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May 06. 2024

시절인연에 미련을 갖지 말자

결혼하니 보이는 것들

얼마 전 결혼을 했다. 지인은 따로 부르지 않았다. 가능한 한 식을 조그맣게 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도 있었지만, 실은 예전부터 그러고 싶었다. 누구는 초대하고, 누구는 초대하지 않고, 그렇다면 그 기준은 무엇이고 하는 복잡한 관계 계산을 하고 싶지 않아서다.


꼭 와야 했던 친구 한 명과, 괜찮다면 와도 되겠냐는 다른 친구 한 명만 참석했다. 하지만 여전히 '누구에게까지 이 결혼을 알릴 것인가'하는 문제가 남았다. 고민 끝에 간간히라도 연락하는 지인에게만 소식을 전했다.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직접 축하해주지 못해 아쉽다는 사람도 있었고, 담담하게 축의금만 건네는 사람도 있었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불교에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건 이루어지는 때가 있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인연에는 유효기간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인연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동료도, 혹은 최악의 숙적(?)도 마찬가지다.


결혼은 그 시절인연을 새삼 일깨우는, 또한 그저 명맥만 이어오던 인연의 끝을 상기시키는 분기점이 된다. 내게는 중요한 날을 최소한의 예의만으로라도 존중받고 싶던 기대가 살짝 무너지며 관계의 무상함을 느끼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걸 어찌 탓하겠는가. 그들에게는 더 중요한 사건과 관계와 일이 잔뜩 있었을 테니까.


다만 기억할 뿐이다. 내 안의 우선순위를 가만히 정리할 수 있게끔. 역시 누군가에게는 시절인연이었음을, 그렇게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살아왔음을, 그래서 미련 없이 시작과 끝을 받아들임을, 그저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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