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인간끼리 평화롭게 붙어사는 법
희미하게 남은 주례 말씀 중에 떠오르는 유일한 한 마디는 '결혼생활이란 부부의 2인3각 경기'라는 것이다. (결혼식 때 사회적 에너지를 긁어모아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희망 편: 합심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검은 머리가 탈색될 때까지 오붓하게 살아간다. (으쌰으쌰)
절망 편: 아오, 내 발 좀 걸고넘어지지 마! (우당탕탕)
난 하루에 두세 번은 '너 T야?' 소리를 들을 만큼 로봇 같은 인간이다. (혹은 인간 같은 로봇이다. 어느 쪽이 나으려나?) 아내는 그런 인간-로봇의 마음을 읽어내려 애쓰는 감정(F)형이다. 언뜻 들으면 파국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기 좋은 환경이지만, 의외로 주변 커플을 보면 둘의 성격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는 호구조사의 필수 문항이 되어버린 MBTI 관점에서 말하자면 알파벳이 서로 반대인 사례가 많았다.
역시 사람은 자신과 다른 이에게 끌리는 것일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다름이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그래서 보험은 들었어?"라고 말한다면 F형 인간은 눈물을 한 바가지 쏟으며 사자후를 토할 것이기에. 역시 인생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물과 기름이 섞이기 위해서 계면활성제가 필요하듯, 두 이질적인 존재가 평화롭게 붙어있으려면 말이 통해야 한다. 대화는 사실상 관계의 알파이자 오메가가 아니겠는가. 대화가 잘 된다는 건 서로의 멱살을 잡고 싶은 순간에 부드럽게 문제를 풀어가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물론 노력해도 가끔 잡히긴 한다) 결국 결론이 나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건 태도다.
진정한 T형 인간이라면 상대의 감정까지도 변수에 넣고 '사고'할 수 있어야 하고, 진정한 F형 인간이라면 상대의 'T발놈' 모먼트에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만 상대를 대할 때 터져 나온다. 일종의 내로남불이랄까.
사실 이게 인간의 당연한 본성이다. 반성보다는 방어기제가 먼저 튀어나오고, 상대 입장보다는 내 입장을 먼저 고려하는 태도. 하지만 본성대로만 살아왔다면 인류는 아직 머리 위로 돌도끼를 휘둘러야 옳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성질머리대로만 하고 싶다면 독수공방을 함이 옳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도 한없이 속 좁고 치졸한 인간이기에 유치원생 급의 방어기제가 존재감을 나타내곤 한다. 어쩔 때에는 유치원 원아분들에게 미안할 정도다. 성숙한 인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잇값은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